▲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지난 28일자로 한국 초유의 `김영란법`이 실행에 들어갔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패와 타락을 방지하고 극복하자는 취지다. 기술과 인지, 유희와 오락에서 한국은 선진국 반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과 예술, 기초과학과 교육, 교양과 민도(民度)는 여전히 아쉬운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런 한국의 전통적인 병폐가 물적 욕망에 기초한 부패다.

대중강연에서 종종 나는 한국사회의 걸림돌로 네 가지를 거론한다. 부패와 무능, 타락과 패거리주의다. 일부 파당과 패거리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독점하면서 보이는 부패와 무능과 타락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나라와 민족은 겉치레로만 작용하는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각자의 가문과 개인의 영달과 물질적 성공에 눈이 빨간 자들이다.

각종 불법과 무법, 탈법과 초법, 위법과 범법이 그들의 일상이 되었다. 근자에 인구에 회자되는 검사와 판사들의 행악질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초등학생도 아는 내용이다. 10억을 준다면 감옥에 가겠다는 고등학생이 47%, 중학생 33%, 초등학생이 16%에 이른다. 돈이라면 범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풍조가 만연해있는 한국사회!

이토록 타락하고 부패한 나라와 국민의 영혼을 부분적으로나마 정갈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김영란법의 취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연히 환영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한두 가지는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대저 이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람들은 평범한 민초들이 아니라, 가진 자들 무리다. 권력자들, 기업가들, 정치가들, 비리관련 공무원들이다.

김영란법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와 민족도 팔아먹을 태세가 되어 있는 자들을 최우선적으로 겨냥해야 한다. 법은 모름지기 크고 강하고 힘센 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무기로 작동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3-5-10만원 단위로 세분되는 허다한 경우의 수다.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 하는 자질구레한 가지치기!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한다. “그 정사(정치)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그 백성은 점점 더 순박해지고, 그 정사가 살피고 다시 살핀다면 백성들은 점점 더 일그러질 것이다.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58장)

가정에서 엄마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다보면 아이들은 겉보기에는 순종하지만 언제나 나쁜 궁리를 하기 마련이다. 외려 아이들의 자유와 자율을 보장해주면 아이들은 알아서 제 일을 스스로 챙겨나가는 법이다. 얼마짜리 밥과 선물과 경조사비를 써야 한다는 식의 법률적 통제로 한국인들을 옥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短見)으로 보인다.

부패와 타락과 무능과 패거리주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동의하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망(法網)은 언제나 `유전무죄 무전유죄`였으며 크고 강한 자들은 아예 그물에 걸리지도 않는다. `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왔을 때 직장에서 맨 먼저 잘려나간 이들은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김영란법이 이런 식의 재연(再演)이 아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법 앞의 평등을 주장하려면, 법에 저촉될 만한 일을 한 사람들부터 제대로 수사하여 벌주면 그만이다. 온갖 부패와 타락의 당사자들이 장관임용 후보자가 되어 청문회에 계속 얼굴 내미는 추악한 작태가 반복되는 현실 아닌가?! 범법자들만 골라서 후보자로 세우는 청와대의 능력도 비상(非常)하지만 그런 작태가 끝없이 용인되는 나라도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아주 좁은 그물코로 멸치 몇 마리 잡고 생색내는 법이 아니라 정말로 썩어 문드러진 부패공화국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김영란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