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같이 공부하는 도반이 중학생 아들방에 작품을 한 점 걸어주고 싶다고 했다. 논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면서 자식의 결점을 보완해 주려는 깊은 배려인 것 같았다. 작품의 내용은 `눌언민행`을 선택해 왔었다. 선택의 의미는 깊고 신중하고 소중했었다.

논어의 글귀가 평생 아들 생각의 본(本)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덩달아 기뻤다. 눌언은 말은 좀 더듬어도 괜찮고 민행 즉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는 표피적인 해석보다 숨어있는 그 깊이와 두께는 천근만근이고 말이나 글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관념적 사유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말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이다. 자공이 물었을 때 군자는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는 자”라고 정의했다. 거듭 군자는 자신의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누차 강조하셨다.

말은 안으로 농익어야 실하고 맛이 있다. 소가 되새김하듯 하여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낙처(處)를 잘 알아새겨야 다툼이 없고 경청할 줄 아는 힘은 참 귀하고 위대하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진실로 굳센 자만이 능히 하고 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대단히 굳센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한다”는 이항로 (李恒老) 선생의 글귀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침묵 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자께서도 “함께 말한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라고 하셨다. 할말은 하라. 그러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자상한 가르침이다.

내 자신도 말 때문에 부끄러운 일이 한 두 번 아니다. 속으로 말하고 실천못한 일도 수도 없거니와 더 황망한 일은 입으로 말하고도 옮기지 못한 일들이다. 아마 나의 지금의 무지와 삶은 말과 행동이 지워놓은 농사의 결과물인 것이다. 매스컴에서 늘 접하고 살지만 시시한 말장난과 억측스럽고 입에 발린 말과 담지 못할 말은 이제 좀 덜하면 좋겠다. 그들의 사악한 추론과 무책임한 행동을 쓸어버리고 싶은 참 속상하고 야박하고 기이한 세상이다.

공자는 이인편에서 “삼가면 실패하는 일이 드물다”라고 했다.

인간은 어떠한 일 앞에서 삼가고 신중하기 쉽지 않다. 알고 있으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묘한 기계적 장치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씩 말을 하기보다 들어주기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말은 실천행 일 때 힘이 있고 빛이 된다. 그리고 효력이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삶은 모든 것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달려있지, 몇 자 아는 지식에 있지 않다. 옻을 만지듯 드문드문거리는 잘익고 향기로운 말은 이 세상의 특별 구제약 일 것이다. 정의와 선을 위한 행동은 아름다운 실천행이다. 지혜 없는 행동은 안하는 편이 좋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새겨 볼 일이라. “옛 사람이 말을 앞세우지 않았던 것은 실천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