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석수 신부·구미종합사회복지관
▲ 정석수 신부·구미종합사회복지관

“하느님의 연필, 그것이 바로 나이다. 하느님은 몽당연필로 좋아하는 것을 그리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한 도구일지라도, 그것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신다.”

마더 데레사 성녀가 생전에 자신을 두고 하느님의 몽당연필, 불완전한 자신을 통해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을 고백했다.

성녀 마더 데레사는 1910년 8월 26일 500년 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는 스코페(현재 마케도니아공화국의 수도)에서 아네스 곤히야 브악스히야로 태어났다. 아네스가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12살 때부터 인도로 가서 수녀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으나, 먼저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것은 본당신부로 부임한 프란조 잠브레코비치 신부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18세에 다시 수도생활을 생각하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선교사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성모승천 대축일에 `검은 산` 위에 있는 검은 성모성지를 방문했고, 스코페로 돌아오는 길에 수도생활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다. 그래서 인도에서 교육활동을 하는 로레토 수녀회에 지원을 했다. “제 진실한 갈망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로레토 수녀회에 들어가 언젠가 선교 수녀가 되어 모든 이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더블린에 있는 로레타회의 총장 수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총장 수녀의 허락을 받고 먼저 더블린에서 영어를 배우고 인도의 다르질링에 있는 수련소로 파견되었다. 다르질링에서 청원기를 마치고 수련자가 되어 동정 마리아와 리지외의 데레사 이름을 따서 마리아 데레사로 바꾸었다. 1937년 다르질링에서 청빈 정결 순명의 정신으로 종신서원을 했고, 5년 후 한 가지 서원을 개인적으로 더 하게 되는데, 이것은 일생 동안 행한 많은 일의 동기가 됐다. 즉 예수님께서 주시는 어떤 것도 거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20여 년 전, 홍콩에 있는 `사랑의 선교수녀회` 분원에서 미사를 봉헌한 적 있었다. 그 때, 십자가 아래 `목마르다`라고 쓰여 진 것을 보았다. 그 때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 말씀은 다르질링에서 피정을 하러 떠나는 데레사 수녀님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부르심 가운데 부르심이요 지금까지 잘 살아온 수녀회와 이별로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살도록 부르시는 초대이다. 피정 중에 `나를 거부하지 말라`는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고 기도하는 `사랑의 선교수녀회`를 구상했다. 그래서 사랑의 선교수녀회는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에다 애덕을 서원한다.

지금 가톨릭교회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일곱 가지의 육체적 자비 활동을 하도록 권고 하고 있다.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옷을 주는 것, 순례자들에게 잠잘 곳을 주는 것, 병자들을 찾아보는 것,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보는 것,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것 등이다. 이것은 이천년 대희년에 성녀로 선포된 파우스티나 수녀님의 영적 글에서 제시된 것을 적용한 실천사항이다. 자비의 특별 희년에 이러한 육체적 자비 활동으로 헌신한 데레사 수녀님을 성인으로 선포됨으로써 하느님의 몽당연필로 그려진 새로운 세상, 사랑의 활동을 새롭게 한다. 하느님은 아직도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