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도서관 선진화 방안

▲ 포항 북구의 랜드마크로 자리한 포은중앙도서관 전경.
▲ 포항 북구의 랜드마크로 자리한 포은중앙도서관 전경.

“저 안에 제대로 된 콘텐츠만 채워진다면, 도서관의 외형은 한국 아니, 세계 어디다 내놔도 빠지지 않겠는 걸.”

지난달 포항을 찾은 소설가 조용호(55)씨가 포은중앙도서관을 보며 한 말이다. 조 씨는 남미·아프리카 문학기행서인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을 필두로,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떠다니네` 기행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등을 쓴 작가. 소년시절부터 중년에 이른 오늘까지 수십 년을 책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니 도서관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글 싣는 순서

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
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
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
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포은중앙도서관 만화자료실.
▲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포은중앙도서관 만화자료실.

포은·대잠도서관 필두 포항시립도서관 총 45개 보유
포항문화원·어린이영어도서관 등 특화 도서관도 인기
지역별 특색있는 프로그램·이벤트 기획 `주민에 더 가까이`

포은, 개관 1년차…보유 장서수 적고 휴식공간·열람석 부족
서적 상호대차서비스 가능해도 4~5일 시간 소요 개선 시급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내실 다져야

조 작가의 말처럼 포항시 북구 삼호로에 위치한 포은중앙도서관의 `하드웨어`는 곱고 아름답다. 출렁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며 `지혜를 싣고 항해하는 날렵한 선박`처럼 느껴지고, 달리 보면 지식을 관장하는 신화 속 `거대한 동물의 알`처럼도 보인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이 도서관은 포항 북부의 새로운 랜드마크 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지하1층·지상6층으로 지어진 건물에는 683석의 열람석과 7개의 강의실이 갖춰져 있으며, 만화자료실과 디지털자료실에는 8천 권에 육박하는 만화책과 2천500여 점이 넘는 극영화·다큐멘터리 DVD가 구비돼 있어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 포은중앙도서관 앞엔 인간과 책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조각이 서있다.
▲ 포은중앙도서관 앞엔 인간과 책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조각이 서있다.

하지만, 개관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터라 보유 장서수가 아직은 다소 적고, 휴식공간의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학원 강사로 일하며 중·고교생들을 자주 만나는 A씨(31)는 “열람석을 줄이는 것이 현대 도서관의 추세인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학생들과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오랜 시간 앉아서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을 원한다. 그런 요구도 도서관 관계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청 이전 등으로 인구가 줄고 있는 포항 북구에 젊은이들이 오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으니 A씨의 말에도 귀 기울일 필요성은 충분하다.

포은중앙도서관의 휴식공간 부족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역시 젊은층이다. 이들은 “저렴한 가격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과 책을 읽다가 친구들과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는 휴게실이 도서관 내에 설치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 포은중앙도서관의 내부.
▲ 포은중앙도서관의 내부.

장시간 도서관에 머물며 책과 영화를 보고, 각종 예술관련 행사까지를 즐기기 위해서는 가벼운 식사를 해결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하다.

오늘도 포은중앙도서관을 포함한 포항시 시립도서관 직원 32명은 쏟아지는 도서관 관련 각종 민원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일까를 고민하고 있다.

인구 50여만 명이 생활하는 포항시의 시립도서관 숫자는 읍·면·동에 자리한 `작은도서관` 38개소까지 포함해 모두 45개. 이중 포은중앙도서관과 시청 내에 위치한 대잠도서관이 메인도서관 격이다.

열람실만 갖춘 포항문화원과 어린이영어도서관 등은 이른바 `특화된 도서관`.

11만 권의 장서를 갖춘 포은중앙도서관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4천664명, 13만 권의 책이 사람들을 기다리는 대잠도서관엔 하루에 1천700여 명이 찾아온다.

포항 도서관 전체의 연평균 방문자 수는 약 125만7천여 명. 포항 전체 시립도서관의 장서를 모두 합하면 70만 권에 육박한다.

 

▲ 포은중앙도서관 4층 어문학자료실.
▲ 포은중앙도서관 4층 어문학자료실.

포항시 도서관이 갖춘 외양이 이 정도라면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얼마나 내실을 갖춰가고 있을까. 현대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벗어나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 이는 비단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 추세다.

지난 6월 취재를 위해 찾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도서관은 그러한 흐름을 잘 보여줬다. 갤러리와 서점, 자연스레 형성된 외부의 공연장과 영화관은 도서관을 찾는 남녀노소의 다양한 예술욕구를 효과적으로 채워주고 있었다.

포항의 도서관들 역시 “책을 중심으로 도서관만이 진행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행사를 늘려간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포은중앙도서관과 대잠도서관은 물론 곳곳에 위치한 작은도서관에서도 특색 있는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기획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포항시립도서관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조미령 씨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올 한해 2억2천만 원의 예산도 배정됐다.

 

▲ 포은중앙도서관 6층에 위치한 휴식공간 둥지마루.
▲ 포은중앙도서관 6층에 위치한 휴식공간 둥지마루.

포항시에 산재한 도서관들은 개별적인 특성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포은중앙도서관이 만화와 예술관련 서적에 강세를 보인다면, 대잠도서관에는 시집과 소설집 등 문학서적이 많고, 영암도서관과 동해석곡도서관엔 사회과학 도서와 철학책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그런 이유로 각각의 도서관은 이를 염두에 두고 이벤트와 강연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나름의 효율성 제고인 셈이다.

포은중앙도서관, 영암도서관, 오천도서관에서 연 72회에 걸쳐 진행되는 `북 스타트`는 “어린이들이 책과 함께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유아 대상 프로그램으로 적지 않은 부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학년별 독서회`와 `방학독서교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방학 인문학 교실`과 성인들이 참여하는 각종 문화강좌와 `주부독서회` 등도 포항 도서관이 진행하는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들이다.

포항시 도서관에서 기획한 이벤트 중에선 큰 인기를 끈 것도 있었다. 지난 4월 열린 `창조만화페스티벌: 만화를 통한 문화축제`에는 만화가 이현세 씨가 초대됐고, 그의 높은 인기 덕분인지 3일간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3만2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도서관을 찾았다. 이외에도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한 후 이를 비교해가며 토론하는 `영화, 책 숲을 거닐다`도 도서관 방문자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하나다.

 

▲ 포은중앙도서관 3층 디지털자료실.
▲ 포은중앙도서관 3층 디지털자료실.

이처럼 외형과 내면 모두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포항의 도서관들이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기자는 도서관시스템의 선진화가 전국에서 가장 잘 이뤄져있다고 평가받는 서울시 관악구에서 4년 가까이 살았다. 관악구에선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에서 신청해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서 받아볼 수 있다.

포항 역시 `상호대차 서비스`를 통해 이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관악구가 책 신청에서부터 대출까지 이틀이 걸린다면, 포항의 경우는 4~5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또한, 24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포은중앙도서관의 규모에 어울리는 다양한 책을 갖춰나가는 것도 긴급한 과제다. `읽고 싶은 책이 없는 도서관`은 `공이 없는 축구장`과 다를 게 없다.

젊은 도서관 방문자들이 원하고 있는 스낵바와 소규모 카페테리아의 개설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결국 그들이 앞으로도 도서관을 찾을 주요 방문객인 동시에 `젊은 포항 도서관`을 만들어갈 주역이기 때문이다.

포은중앙도서관 6층에는 `둥지마루`라는 이름의 휴식공간이 있다. 거기서 바라보면 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배`를 닮은 포은중앙도서관에 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철학, 실용학문과 예술, 거기에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를 모두 싣고 `책 읽는 미래 포항`을 위해 닻을 올려야 할 때다.

글/홍성식 기자·사진/이용선 기자

    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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