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광복71돌 맞아 美洲 한인 초기 이민사 기획 연재

▲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의 다뉴바시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경주 출신 하와이 초기 이민자 김경선의 묘비.

미국 중부캘리포니아, 이른바 `중가주 `다뉴바시의 한 공동묘지 한켠에 그는 쓸쓸한 시멘트 묘지 하나로 남아 있었다.

`SUN KING KIM`. 하지만 그의 이름은 김경선이다.


美 중가주 다뉴바서 김씨 묘지 확인
하와이 초기 이민자 7천500여명 달해
경북출신 세번째… 경주, 도내 최다
농도·항일의 경북 정체성 재조명을

처자식도 없이 독신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그는 `경`을 `킹`으로 잘못 들은 묘지관리소 직원의 손에 의해 그렇게 틀린 이름 한줄로 남았다.

1874년생인 김경선은 1934년 4월28일, 고국의 나이로 60세 되던 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경주 노동동 출신인 그는 조국이 일제에 의해 서서히 망해가던 1904년의 9월26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몽골리아(Mongolia)호를 타고 하와이에 입국한 농업 노동자였다.

계약 기간이 끝난 그의 인생유전은 미 본토의 중부 캘리포니아(중가주) 다뉴바에서 막을 내렸다. 김경선은 비슷한 신세의 한인 이민자들과 함께 과일농장에서 일당 1달러의 임노동자로 곤궁한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입의 10%를 내어놓은 무명의 해외독립운동 유공자였다. 다뉴바와 인근의 리들리시는 김경선을 비롯한 미주지역 초기 한인 이민 선조들의 역사가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현지에서도, 고국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본지는 오는 8월15일, 다가오는 광복절을 기념해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특집기획 `광복 71주년, 잊혀진 미주 한인 이민 1세를 찾아서`를 연재한다.

<관련 기사 12면> 앞서 지난 6월12일부터 17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리들리, 다뉴바 일대에서는 한인 교포들의 도움을 받으며 현지 취재가 진행됐다. 이를 통해 지난 1903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 농업 이민자들로 대표되는 미주 초기 이민사의 현장을 확인했다. 역사에서 잊혀져간 이들의 존재는 LA를 비롯한 미 남가주에 오늘날 75만여명의 규모로 성장한 재미 교포사회의 뿌리로서 해외 독립운동사의 한획을 긋고 있다.

이들의 아픈 역사에 대한 재조명은 지난 80년대 이후 진보 진영의 무장투쟁사에 촛점이 맞춰져온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의 편향성에 균형의 추가 될 수 있다. 또 오는 2020년에는 인구의 5.5%로 성장이 예고되는 국내 다문화사회에 대한 준비이기도 하다.

대구경북에 대한 시사점도 크다. 본지 취재 결과, 1903년부터 2년여간 7천500여명으로 추산되는 조선 8도의 하와이 초기 이민자 가운데 대구경북인은 3번째로 많았으며 그중에서도 경주 출신이 으뜸이었다.

`농도`(農道)와 `항일`(抗日)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경상북도가 미주지역 초기 이민사의 재조명 사업에 역점을 기울여야 하는 당위성은 충분하다.

김희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은 “경북은 전국에서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서 자긍심이 특히 높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기념관 확장사업이 마무리되면 경북인의 해외 이주 및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와 기념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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