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앞둔데다 최저임금도 7.3% 올라
장사 잘안돼 밤에 대리운전하는 사장 수두룩
전문가 “업종·지역별로 분류해 따로 책정을”

지난 16일 포항시 남구 상도동에서 식자재마트를 운영하는 심모(59)씨는 한 달 전 구직사이트에 올린 배송직원 채용정보를 긴급히 수정했다. 이날 최저임금위원회는 `2017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6천470원으로 인상키로 결정했다. 애초 1년 이상 장기고용을 생각했던 심씨는 6개월 채용으로 근무형태를 변경한 것이다. 그는 “올 연말까지만 직원을 부리고 내년부터는 직접 납품배송까지 해야 할 판”이라며 “최저임금은 해마다 오르는데 정작 내 수중에 남는 돈은 줄었다. 차라리 월급 받으며 일하는 게 훨씬 속 편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4개월째 지속된 노사 간 최저임금 공방전이 7.3%(440원) 인상으로 종지부를 찍으면서 지역 소상공인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 소상공인 폐업률 증가는 물론 지역 영세 상인들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내몰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소상공인 영업 생존율 50% 미만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3일 “소상공인들 25%가 최저임금보다 못한 수익을 내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저임금 보장을 위해 낮에는 사장, 밤에는 대리운전 등 `투잡`을 하는 소상공인들이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지역 영세 사업자들은 영업을 통해 얻는 수익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다고 하소연한다. 17일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경북도 내 활성화지역 임대시세 증가율은 전국 평균(1.2%)보다 높은 1.3%를 기록했다. 특히 음식이나 숙박, 서비스 업종 종사자는 경기침체로 매출수익은 저조한 반면 각종 세금이나 임대료 등 지출은 꾸준히 늘어 `따지고 보면 남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출 부담에 가게 문을 닫은 지역 소상공인도 늘었다. 지난달 경북지역 소상공인의 폐업률은 1%였지만, 구미(1.5%)와 영천(1.3%), 성주(1.2%), 포항(1.1%)은 평균 수치를 웃돌았다. 이 가운데 포항시 음식배달서비스 업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폐업률이 7.1% 상승해 가장 높았다. 분식 업종은 폐업률(1.9%)이 창업률(1.7%)보다 비중이 더 컸다.

소상공인진흥공단 전수현 포항센터장은 “소상공인의 3년 이상 영업 생존율이 50%도 채 되지 않는다. 김영란법 시행에 이어 최저임금 인상까지 소상공인들에게 악재가 겹치고 있다”면서 “최근 대구에서는 관공서 근처 식당들이 부동산 매물로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 침체 여파로 포항은 물론 인근 울산의 조선업 불황에 경주, 강동지역의 소상공인들까지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직원 구하기, 이젠 모셔 와야 해”

그동안 경영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 부담이 커지면 고용창출은 고사하고 기존의 일자리도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일손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직원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조사 결과 음식서비스 업종의 경우 채용 부족율이 지난해 상반기 8.9%로 2010년 상반기(3.9%)와 비교해 5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구직자 눈높이도 높아지면서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직원 구하기가 아니라 `모셔오기`라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 작은 횟집을 운영하는 A씨(북구 환여동)는 “서빙 직원을 구하면 다들 몇 개월 하다 힘들다고 그만 두는 일이 다반사”라며 “구직사이트에 채용정보를 올리면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하는 첫 마디가 `최저임금 적용해주냐`고 묻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아무리 실업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편한 일만 찾고 돈부터 따지는 구직자 자세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5인 이하 업소 절반 이상 위반

일부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업종별, 지역별로 분류해 책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상공인의 최저임금 준수율이 낮은 상황에서 지속적인 임금인상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포항지역에서는 임금책정 시 상권마다 통용되는 이른바 `암묵적 규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올해 최저임금이 6천원이라면 요식업, 서비스업 등 업계에 따라 `우리는 5천원을 주자`는 식으로 하는 것이 관행으로 통한다. 이 경우 소상공인 업체 10곳 중 1~2곳이 재직자 또는 퇴직자의 최저임금법 위반신고로 범법자가 되기도 한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조사결과 전체 최저임금법 위반건수 중 5인 이하 소규모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소의 비중은 지난 2013년 78%, 2014년 66%, 2015년 6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포항지청 이성훈 감독관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낙수효과도 있지만, 제도 준수율이 낮은 상황에서 결국 주요 지불주체인 생계형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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