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획 시리즈옛 포항역 개발과 구도심 활성화

▲ 1950년대 포항역 모습.

일제 강점기때 대구~포항 경동선 착공
해방 후 포항역서 청룡부대 월남파병도

1970년대 포항제철 건립으로 새 전환기
어촌에서 공업도시로 변신, 부흥기 맞아

2011년 KTX 포항직통노선 공사 착공
철도기념물 옛 포항역 축소 복원키로

글 싣는 순서

1. 영국 산업발전 견인차 `맨체스터 리버풀역`
2. 영국 과학·산업 역사 한눈에 `맨체스터 MOSI`
3. 시민의 발이 문화공간으로 `충남 보령문화의전당`
4. 포항역의 역사(歷史)와 KTX시대
5. 옛 포항역 부지가 지닌 가능성과 개발에 따른 기대효과

□ 첫 시작은 일제의 침략통로

우리나라 철도 역사(歷史)는 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33.2㎞)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서구열강과 일제로부터 수시로 위협을 받았던 조선은 철도개설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일제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철도는 침략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포항 철도의 시작도 일제 침략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대구와 포항을 연결하는 경동선(慶東線, 현 대구선)은 1916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지시로 철도회사인 조선중앙철도가 착공했다.

같은해 11월 1일 대구~하양 구간이 우선 개통됐고, 2년 후인 1918년 10월 31일 나머지 구간인 하양~포항간 109.1㎞가 개통되면서 포항역은 보통역으로서 업무를 시작했다.

경동선은 두 레일의 간격을 지칭하는 궤간이 762㎜로 표준궤인 1435㎜에 절반 가량에 불과한 협궤로 연결됐다.

협궤는 부설이 쉽고 비용이 저렴해 20세기 초반 식민지 지역의 철도 부설에 널리 이용됐다.

1919년 6월에는 포항에 주둔한 해군부대와 인접한 포항 학산역까지 노선이 준공되면서 군장병들의 이동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경동선이 개통한지 3년 만인 1921년 10월에는 부산~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구간 중 일부인 울산~포항 구간이 개통됐다.

이후 1935년 12월 16일 조선총독부가 경주~포항 구간을 인수한 뒤 이를 표준궤로 교체하는 광폭궤도 공사에 착수했으며 1945년 6월 10일 부산진~포항을 잇는 동해남부선 전구간이 표준궤로 운영됐다.

 

▲ 2015년 4월 폐쇄 직전의 포항역 모습.
▲ 2015년 4월 폐쇄 직전의 포항역 모습.

□ 월남전 파병과 포항제철소

해방을 맞으면서 포항역 철도의 활용성은 한동안 크게 줄었다.

해방 이전 일본이 아시아대륙 진출의 연결통로로 이용했지만 이후에는 인구 5만의 작은 어촌마을인 포항을 오가는 승객이나 화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여년간 암흑기를 겪은 포항역은 월남전 발발과 함께 역사적 장소로 거듭나게 된다.

1965년 10월 3일 해병대 여단규모 500여명으로 구성된 청룡부대의 출발을 시작으로 6년여 동안 수만명의 파월장병들이 이곳을 통해 베트남으로 향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생이별하는 슬픔을 뒤로하고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치는 장병들의 모습은 포항역을 애환이 담긴 장소로 만들었다.

포항제철소가 건립되기 시작하면서 도시발전이 시작된 1970년대 포항역은 부흥기를 맞았다.

어촌이 주요산업이었던 작은 도시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자재 및 제품운반을 전담할 운송수단의 필요성이 부각됐던 것이다. 이를 위해 1971년 4월 포항역과 포항철강공단 내 괴동역을 연결하는 괴동선(5.6㎞)이 개통됐다.

괴동선은 현재 화물전용 노선으로 바뀌어 여객수송이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개설초기에는 포항제철소 직원들의 통근열차도 함께 운행됐다.

하루 10여회 운행된 괴동선 통근열차는 자가용 문화가 발달되기 이전인 1990년대 초까지 포항시민들로부터 널리 이용됐다.

포항시사(市史)에 따르면 포항 철도가 전성기를 맞은 1990년 한 해 동안 768만여명의 승객이 포항역을 이용하기도 했다.

1992년 12월에는 포항과 서울을 잇는 새마을호가 최초로 운행됐고, 1997년 7월부터는 대구와 포항을 오가는 통근열차가 1일 6회로 운영되기도 했다.

□ KTX개통과 역사(驛舍)이전

고속철도망이 본격적으로 구축된 2000년대 들어 포항역은 쇠퇴기를 맞았다.

경부선을 중심으로 운행된 KTX는 새마을호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2010년 인근지역인 신경주역에 KTX가 들어온 이후 포항역의 존재는 희미해졌다.

포항과 서울을 오가는 시민들이 포항역에서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탑승하기보다는 신경주역에서 KTX를 탑승하는 것을 선호하면서 자연스레 포항역 이용객 숫자는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1년 6월 KTX포항 직통노선 연결공사를 착공하면서 포항역 역사(驛舍) 이전계획이 수립됐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포항시 북구 대흥동에서 100년 세월을 보낸 포항역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이인리에 마련키로 하고 2013년 9월부터 305억원을 투입해 신역사를 건립했다.

결국 2015년 4월 2일 KTX 포항노선이 개통되면서 포항시 북구 대흥동 옛 포항역은 영구폐쇄가 결정됐다.

같은해 9월 포항시는 도심 교통정체 해소방안으로 용흥동~대흥동간 왕복 4차선 횡단도로를 개설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이 노선이 옛 포항역 역사를 관통하도록 설계되면서 다소간의 논란이 발생했다.

도로 개설을 위해서는 옛 포항역의 철거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포항역은 지난 2013년 코레일로부터 철도기념물로 지정되며 역사(驛舍)가 지닌 역사(歷史)적가치를 인정받은 만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보존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포항시는 이같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구 포항역 역사를 축소복원키로 하고 건물철거가 진행되기 전 현장확인 및 실측을 통한 복원기초자료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3단 구조의 비대칭 박공지붕의 독특한 모양과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 목재기둥, 아날로그 기차시간표 등을 원본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축소복원 계획이 수립되면 축소복원된 역사(驛舍) 내에 전시될 예정이다.

 

▲ 2015년 4월 이전한 KTX포항역.
▲ 2015년 4월 이전한 KTX포항역.

□ KTX 누적이용객 300만시대 눈앞

개통한지 1년 3개월여가 지난 포항역은 어느덧 이용객 3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포항역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1년 3개월간 총 수송인원은 269만9천74명(KTX 217만6천145명, 무궁화호 52만2천929명).

이는 5천여명이 매일같이 포항역을 이용한 수치로, KTX는 교통오지라 불렸던 경북동해안권역의 오명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지역민들의 최고 이동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코레일에서 오는 8월 15일 예정된 수서발 KTX 개통에 맞춰 포항역 열차편수를 일일 왕복 2회 이상 증편하기로 검토할 만큼 수요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포항역은 평일 초저녁시간대는 물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전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포항시민과 인근 주민의 이용률이 높다.

하지만 주요교통수단으로서 입지를 다져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개통 당시부터 지적됐었던 고객 편의시설과 상업시설의 부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인근 역세권 개발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만성적인 포항역 주변 불법 주·정차 문제와 추가 진입로 설치 및 연계교통망 확충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이에 대해 포항역은 내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교통혼잡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해결할 것을 약속했다.

포항역 관계자는 “열차 승하차 시 역사 내부의 교통혼잡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며 “포항시 등 관계기관과 협조를 통해 이용객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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