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대가야의 숨소리를 듣다
④ 수박이 익어간다, 고령의 초여름이 익어간다

▲ 최송기 씨가 자신이 재배한 수박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비닐하우스 속에서 조그맣게 피어난 노오란 꽃송이를 본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에델바이스처럼 애달픈 전설을 담고 있는 꽃도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빛깔이다.

바로 수박꽃. 이 수박꽃의 꽃말은 `크나큰 마음`이다. 한국에서 재배되는 과일 중 크기에서 수위를 다투는 큼지막한 수박에 썩 잘 어울리는 꽃말이 아닐 수 없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고대 이집트에서도 수박을 길러 먹었다니 우스개처럼 이야기하자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과일이라 할 수 있다.

원산지는 아프리카, 15세기께부터 한반도 재배
당도 뛰어나고 수분높은 `우곡 그린수박` 유명세
귀향 20년차 최송기씨에 새로운 길 열어준 효자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통치자였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새하얀 은쟁반에 담긴 새빨간 수박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한 조각 집어 드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르게 찾아온 초여름 더위가 어느 순간 잊힐 것이다.

수박이 고향인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시기는 15세기 중반을 전후해서였다. 한국의 경우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백성들이 수박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수박은 서기 1천500년 이전부터 한반도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준 달콤한 과일이었다.

시과(時瓜), 서과(西瓜), 수과(水瓜)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수박. 경북 고령군은 바로 이 수박으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고령군청 관계자는 “청정한 가야산과 낙동강 맑은 물이 길러내는 수박은 청량감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다”는 말로 고령의 특산물로 자리 잡은 `우곡 그린수박`을 자랑했다.

최송기(52) 씨는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다가 1996년 한국에 불어닥친 경제 불황의 여파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고향인 고령으로 돌아왔다. 귀향 20년차인 최 씨는 최근 우곡면 들판에서 올해 첫 수박 수확을 했다.

660㎡짜리 비닐하우스 17동을 이용해 아내와 수박농사를 짓는 그는 “농경지에는 지하수 시설이 잘 정비돼 있어 물 걱정은 없어요. 외려 올해는 비가 자주 내리는 통에 애를 먹었죠”라고 했다.

“거기다가 강한 바람도 불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모든 농사가 다 그렇지만, 수박농사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웃음을 보이는 최 씨. 옆에 있던 마을 주민 역시 “하느님과 동업하는 게 수박농사”라는 농담을 보탰다.

서울에서 사업으로 이루지 못한 성공을 수박농사로 절반쯤은 이뤘다는 최송기 씨는 “고향에서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준 수박이 내게는 효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재배해서 판매하는 `우곡 그린수박`은 전국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고령에서 생산된 수박의 거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소비된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한 번 맛을 보라”며 빨갛게 잘 익은 수박 한 조각을 기자에게 건네는 최 씨의 손길에서 넉넉한 시골의 인심이 묻어나온다.

“제가 어릴 때는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地·비닐이나 지붕 따위로 가리거나 덮지 않은 땅)에서 수박을 길렀어요. 원두막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한두 통씩 몰래 따먹던 수박 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요”라는 추억담을 들려준 최 씨. 과거를 떠올리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수박 수확현장에 자리를 함께 한 주민들도 “인정을 나누고 사는 건 옛날이 훨씬 좋았다”며, “요즘은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 수박을 서리하는 풍경도 전혀 볼 수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 아쉬운 표정에서 고령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었다.

 

▲ 정성으로 기른 수박을 수확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농민들.
▲ 정성으로 기른 수박을 수확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농민들.

배수성이 좋은 모래성분의 땅과 진흙성분이 많은 점질토가 고루 분포된 고령은 예로부터 “수박농사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수박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재배기술과 토양의 조건, 기후와 종자개발 등이다. 고령은 이중 토양의 조건과 재배기술이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령군이 수박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 재배지와 생산량은 매년 늘어났다. 1970년대 초반엔 우곡면에서 처음 시작한 비닐하우스 재배방식이 성공함에 따라 인근 성산면과 개진면에서도 같은 방식의 재배를 연이어 시작했고, 그때부터 `명품 고령 수박`의 역사가 시작됐다.

수박의 맛과 품질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진행된 수박 관련 이벤트(고령 수박 한마음축제)와 직판장 개설 등은 KBS를 포함한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는 고령 수박이 전국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토양과 재배기술이 타지역 비해 월등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큰 날씨도 한몫
무기질·비타민 등 다량함유 피로회복에 그만

수박은 과일 중에서도 특히 수분 함량이 높다. 9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진 수박은 무기질, 비타민, 아미노산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또한, 수박의 포도당과 과당은 인체에 흡수되는 속도도 빠르다.

`한국식품과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뇨제로서 부종에 효과가 있고, 신장염, 요도염, 방광염 등에 좋으며, 해열 작용도 하는” 과일이 바로 수박이다.

그렇다면 고령군 우곡면, 개진면, 성산면에서 생산되는 수박은 다른 지역에서 재배되는 수박과 어떤 차이점을 보일까.

“구릉성산지로 이루어진 고령은 온난하고 연중 일조량이 풍부하며, 내륙에 위치해 있어 일교차도 크다. 그렇기에 당도가 높고 식감이 뛰어난 수박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고령군 농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기에 “낙동강변에 형성된 충적평야의 비옥한 토질도 고령 수박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차츰 높아지는 기온에 불어오는 바람에서 초여름의 향기가 느껴지는 5월 중순. 식구들이 모이는 오늘 저녁엔 시원하고 달콤한 고령 수박 한 통을 가운데 놓고 수박꽃의 꽃말처럼 서로를 향한 `크나큰 마음`을 정겹게 나눠보면 어떨까.

 

▲ 향부자의 잔뿌리를 태우고 있는 고령군 농민들.
▲ 향부자의 잔뿌리를 태우고 있는 고령군 농민들.

부인병과 위장 장애에 좋은 향부자


잔뿌리는 불에 태워 없앤 뿌리줄기 말려서 사용
사질양토가 최적지… 전국 재배면적 70%나 차지

해마다 가을이면 고령군 들녘은 해질 무렵의 노을보다 더 붉게 타오른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불을 질렀냐고? 물론 아니다. 복통 등의 위장 장애와 월경불순 등 부인병에 효험을 보이는 작물이며, 요즘처럼 약이 흔치 않았던 시절엔 폐결핵에도 사용했던 향부자(香附子)를 수확하는 풍경이다.

사초목 사초과의 식물인 향부자는 수확한 덩이줄기의 잔뿌리는 불에 태우고 뿌리줄기를 햇볕에 잘 말려 앞서 언급한 증상에 약재로 사용한다.

고령 들판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은 바로 이 향부자의 가는 뿌리는 태우는 광경이다.

딸기, 수박, 감자 등과 함께 향부자는 고령 농가소득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효자 작물이다.

농업전문가들에 의하면 “고령의 사질양토는 모래땅을 좋아하는 여러해살이풀인 향부자가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한다.

현재 고령군에서는 20여 가구가 향부자 농사를 짓고 있다. 재배농가 수는 많지 않지만, 향부자가 뿌리를 내리고 커가는 땅은 24ha로 전국 재배면적의 70%에 해당되는 작지 않은 규모다. 해마다 거둬들이는 수확량도 150t에 육박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자란 고령군 다산면의 향부자는 품질이 좋고, 약효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오래 전부터 받아왔다. “다산 향부자를 한 번 이용해본 이들은 꼭 다시 찾게 된다”는 게 고령 농민들의 자랑거리다.

고령에서 향부자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재배지가 훨씬 넓었으나, 현재는 낙동강변 개발사업 등으로 노곡, 곽촌, 평리 지역이 재배를 포기한 탓에 경작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향후 고령군청은 향부자와 관련된 각종 현대식 가공시설을 구축하고, 재배·수확 과정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농가소득 확대에 도움을 줄 방침이다.

약재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향부자가 진통 작용과 자궁수축억제 작용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시퍼렌(cyperene), 시퍼놀(cyperol), 코부손(kobusone) 등의 지방산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800여 년 전에도 향부자는 귀한 약재였다. 중국 위나라의 왕이 사신을 보내 오나라에서 향부자를 구해왔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이런 사실을 알고 고령 향부자를 먹는다면 좀 더 좋은 약효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전병휴·홍성식기자

 

    전병휴·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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