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대가야의 숨소리를 듣다
② 지산동 고분과 대가야박물관

▲ 고령의 대표적 유적지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고령군 대가야읍 주산(主山)에 높이를 달리하며 솟아난 고분들. 5월 햇살 아래 부드러운 곡선을 드러낸 700여 기의 무덤은 보는 이를 나른하게 압도한다. `나른한 압도`란 반어(反語) 아니면 역설이다. 어법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지산동 고분군`을 설명하기엔 이만한 표현도 없을 듯하다.

취재를 위해 고령을 찾았던 날. 봄볕은 옛사람의 유택(幽宅) 곁에 누워 평화로운 낮잠에 빠져들고 싶을 정도로 나른했다. 능선을 따라 때론 촘촘하게, 때론 듬성듬성 자리한 수백 개의 무덤 속에 담긴 갖가지 개인적 사연을 상상하는 일은 기자의 능력 밖이기에 막막했다. `개인사의 총체`라 할 역사의 무게에 압도되는 순간이었다. 대가야읍을 병풍인양 감싸고 있는 주산의 남쪽. 고대왕국 대가야의 흥망과 부침을 보여주듯 웅장한 크기로 조성된 능묘(墓)들. 한국 최초로 발굴된 순장 왕릉인 지산동 44호 고분과 45호 고분. 그 일대엔 대가야의 왕과 귀족들이 세상사 시름을 잊고 꿈도 없는 잠에 빠져있다.

“이곳은 대가야 시대에 만들어진 최대의 고분군으로, 1600여 년 전 제작된 독특한 형태의 토기와 철기, 말갖춤(말을 부릴 때 쓰는 도구)을 비롯해 왕이 사용한 금관과 금귀고리 등 화려한 장신구가 출토된 지역”이라는 게 대가야박물관 정동락 학예담당관의 설명이다.

44·45호 고분은 한국최초 발굴 순장왕릉
돌덧널무덤까지 2만기 이상 무덤 존재

장기리 암각화 등은 암각화 연구의 효시
왕릉전시관·우륵박물관 등 테마별 구성
`대가야박물관` 고대왕국 역사문화 한눈에


□대가야 왕족의 공동묘지… 순장풍습 확인되기도

통상 `삼국시대`라 하면 고구려, 신라, 백제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산동 고분군의 규모와 미려한 출토 유물들은 대가야를 `또 하나의 고대왕국`으로 평가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2013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지산동 고분군이 등재된 것은 이러한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 전 고령군은 학술기관에 이 지역에 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700여 기의 고분 외에,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돌덧널무덤(돌로 네 벽을 쌓은 형태의 무덤)까지 포함하면 무려 2만 기가 넘는 선인들의 유택이 지산동 고분군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쉽게 이야기하면 왕과 귀족들이 영원한 안식처로 택한 대가야의 공동묘지였던 셈이다.

이에 관해 대가야박물관 손정미 학예사는 “지름 40m 이상의 고분이 1기, 30~40m 사이가 5기, 20~30m 사이가 13기 정도로 조사됐다. 규모가 큰 고분엔 왕과 왕족이 묻혀 있을 것이고, 다소 작은 봉분 아래에는 귀족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서기 400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대가야가 멸망한 562년까지 조성된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견되는 특징 중 하나는 `순장(殉葬·지배계급이 사망하면 그와 관련된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것)`이다.

정 학예담당관은 지산동 고분군 중 대가야의 순장 풍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44호 고분을 지목했다. “왕이 묻힌 가운데 돌방 주위로 창고로 보이는 돌방 2개가 확인되고, 주변에 32개의 순장 돌덧널이 배치돼 있다. 40여 명이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순장묘 중 가장 큰 규모에 해당된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야만에 가깝지만, 대가야 외에도 세계 각처에 존재했던 여러 고대국가가 순장의 풍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 대가야박물관 전경
▲ 대가야박물관 전경

□장기리 암각화와 고령향교 거쳐 대가야박물관으로

1971년 발견돼 `암각화(巖刻畵)`라는 단어를 한국에 알린 장기리 암각화는 고령군이 간직한 또 하나의 문화적 보물이다. 바위에 그림이나 도형을 새기거나 그린 암각화는 구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종교의식 등을 짐작하게 해주는 사료다.

“장기리 암각화를 필두로 안화리 암각화, 지산동 30호 고분 개석 암각화, 봉평리 암각화 등 고령군 4개 장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암각화는 문헌연구가 어려운 시대를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고령은 암각화의 고장”이라고 손 학예사가 부연했다.

고령은 대가야의 정치적 중심지인 동시에 유학 교육의 요람이기도 했다. 대가야읍의 연조리에 있는 고령향교가 이를 말해준다.

 

▲ 순장묘가 재현돼 있는 대가야왕릉전시관.
▲ 순장묘가 재현돼 있는 대가야왕릉전시관.

주산의 기세가 부드럽게 꺾이는 위치에 들어선 고

령향교. 그 자리는 애초에 왕실 건물이 있던 곳이었다. 이후 대가야가 사라지면서 왕궁 터였던 위치에 물산사라는 이름의 사찰을 지었다. 이는 망국의 한을 품고 살아가는 대가야 사람들을 염두에 둔 신라의 유화책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불교국가에 가까웠던 고려시대까지는 번성한 절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물산사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왕조는 물산사 자리에 향교를 지어 유학자들을 양성하게 했다. 고령향교는 끊임없이 출렁여 온 역사의 흐름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지산동 고분군과 장기리 암각화, 고령향교를 둘러봤다면 이제 대가야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길 차례다.

주산 기슭에 자리한 대가야박물관은 2000년 가을에 개관했다. 고대왕국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최대 규모의 순장묘 지산동 44호 고분을 재현한 `대가야왕릉전시관`과 `대가야역사관`, 악성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우륵박물관`으로 나눠 구성한 것이 이채롭다.

경남 사천시에서 2시간을 달려 박물관을 찾은 김정단(25·사회복지사) 씨와 신학범(34) 씨는 “1년에 한 번쯤 삼천포사회복지관 원생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 대가야인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획전시가 인상 깊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신 씨는 “주산 능선을 따라 들어선 고분 속 왕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웃었다.

이처럼 많은 역사적 유산과 양질의 문화 인프라를 가진 고령군. 가정의 달인 5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준비하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있다면 고령으로의 역사·문화 답사여행을 권한다.

▲ 김면 장군 유적지
▲ 김면 장군 유적지
문(文)과 예(藝)의 향기 스민 문화재들

지산동 고분군과 주산성, 장기리 암각화와 대가야 궁성지 외에도 고령에는 각종 문화재와 민속자료들이 산재해 있다. 이는 고령군이 문향(文鄕)인 동시에 예향(藝鄕)임을 말해주는 증거물이다.

보물과 사적을 포함한 국가지정 문화재 10여 개, 민속자료와 기념물을 망라한 경북도지정 문화재 11개 등 고령에서는 모두 30개의 사적과 문화재들을 만날 수 있다. 산책하듯 걸으며 역사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에 다름없다는 이야기. 그 중 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둘러볼 만한 것들을 소개한다.

지산리 당간지주·반룡사 다층석탑 등
30개의 사적과 문화재도 만날 수 있어

▲보물:고령읍 지산리에 자리한 `지산리 당간지주(보물 54호)`는 옛 절터에 세워진 커다란 석조물이다. 서로 마주보는 2개의 기둥으로, 미려한 조각이 새겨져 있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8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중기의 학자였던 오운의 종가에서 보관해온 `죽유 오운 종손가 문적(보물 1203호)`은 7종 122점의 고문서로 이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경제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보물 1725호로 지정된 `김종직 종가 고문서`와 `정종 적개공신 교서(보물 1835호)` 역시 대가야박물관에 보관돼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짐작케 해준다.

 

▲ 대가야박물관의 내부.
▲ 대가야박물관의 내부.

▲유형문화재: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세를 떨친 암행어사 박문수의 선조 묘 아래 설치된 `만남재`, 고령 박씨의 재산분배와 노비 관련 문서를 모아놓은 `고령 박씨 소윤공파 문적`도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문화재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된 반룡사의 다층석탑과 동종(銅鍾), 목조 비로자나삼존불상 역시 고령의 자랑하는 문화재다.

고령 개포동 석조 관음보살좌상도 빼놓을 수 없다.

▲민속자료와 기념물:영남학파의 조사(祖師)로 불리는 김종직의 종택에서는 제자 양성에 힘썼던 선비의 향기와 만날 수 있다.

인근 고을 학자들이 모여 학문적 토론을 벌이던 `벽송정`과 부드러운 표정의 둥글둥글한 형상이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대평리 석조 여래입상` 등도 교육·문화적 의미가 있는 볼거리.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대항한 김면 장군의 호국정신이 살아 숨 쉬는 유적도 고령 방문자라면 반드시 들러야할 곳이다.

그는 학자인 동시에 조선 제14대 왕 선조에 명에 의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전병휴·홍성식기자

    전병휴·홍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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