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던 우리의 노래 문경아리랑
⑤ `아리랑축제` 통해 여행자들의 만남을

▲ 문경시는 아리랑을 세계 속에 알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를 위해 열린 `아리랑 세계화포럼`.
▲ 문경시는 아리랑을 세계 속에 알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를 위해 열린 `아리랑 세계화포럼`.

여행은 세상을 바꿔왔다. 떠돌던 수렵채취의 무리가 농사를 배운 것부터 그랬고,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물질을 접할 때도 그랬다. 고대 영웅들이 무리를 엮어서 세력을 규합하는 방식도 여행이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고대국가의 종교 또한 이역을 다녀온 고승들의 여행을 통해 변화하고 다듬어졌다.

고착된 문화가 변화의 기회를 맞을 때는 여행자의 힘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르코 폴로는 몽골제국 체류담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고, 앙투안 갈랑은 17세기에 중동을 여행하고 18세기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전했다. 유행 수준이 아니라 문화가 새로이 생겨나는 수준의 변화에 이들의 여행이 기여한 바는 엄청나다. 우리 땅에 나타난 여행객은 돌아가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이다.

전통문화 확산의 첫 단추는 `접촉`
스타일 변화 시도는 매력적 결과물로 나타나

 

▲ 한국 최초의 랩음악으로 이야기되는 `김삿갓`을 발표한 가수 홍서범(왼쪽)과 보사노바 뮤지션 나희경.
▲ 한국 최초의 랩음악으로 이야기되는 `김삿갓`을 발표한 가수 홍서범(왼쪽)과 보사노바 뮤지션 나희경.

□ 아리랑이 힙합에게 배워야 할 것들

이어령 교수는 한류가 IT로 전파된 최초의 문화라고 했다. 한류는 그럴지 모른다. 그럼 우리가 한류가 되기 전의 문화는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힙합은 인터넷 이전의 문화전파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홍서범이 `김삿갓`을 발표했을 때 그는 자신의 곡이 힙합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이라고만 했다. 한 사람이 한 번 시도해보는 정도의 의미로 김삿갓은 최초의 랩으로 기억된다. 김영대 씨가 쓴 `한국힙합`에 따르면, 힙합을 최초로 제대로 전파한 것은 현진영이다. 그때도 사람들은 힙합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러나 힙합문화의 씨앗은 뿌려진 셈이었다.

그의 안무와 곡풍을 대중은 지금도 기억한다. 문화는 이렇듯 이름 없이 전파되기도 한다. 힙합마니아들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PC통신이 등장한 뒤였다. AFKN이나 몇 장의 음반만으로 힙합장르의 규칙을 추론해낸 국내파와 이른바 `본토`를 다녀온 사람들이 논쟁해가며 `한국이 힙합을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현실로 만든다. 창작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음원을 서로 교환하면서 힙합에 대한 이들 자신의 안목과 곡의 수준이 높아진다.

가리온과 피타입, 버벌진트가 바로 이 `마니아` 소속이다. 선구적 연예인이 대중에게 일으킨 열풍이 씨앗을 심으면, 일부 마니아그룹이 그것으로 열심히 농사를 짓고, 훗날 모두가 한국 특유의 외래문화라는 소출을 얻는다는 사실을, 한국힙합은 가르쳐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마르코 폴로 한 사람에게 문화전파를 기대하지 않는 시대다. 인재 하나만으로도 안 되고, 회관 하나만으로도 안 된다. 인터넷 하나만 믿어서도 곤란하다. 모두가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 확산의 첫 단추는 접촉이다. 책이나 음반을 통해서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건 또는 직접 찾아가서건 전통 문화와의 만남이 있어야 확산시킬 수 있다. 확산은 전통의 자발적 전승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접촉이 확산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접촉자가 별다른 흥미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의도했든 아니든 전달력을 잃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반응이 갈리는 것과 같다. 홍보를 하지 못한 저예산 영화가 상영관을 늘리기 시작하는 것은 영화를 보고나온 관객들의 전파력 때문이다. 그 전파력이란 간단히 `이거 너도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아리랑이 근대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의 상징이 되는 과정 또한 이러하지 않았을까? `당신도 이것을 보았으면 좋겠다.`

보사노바 뮤지션으로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나희경은 1998년 `컴 뮤직 엔 엠피쓰리`라는 책을 통해서 보사노바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보사노바 리듬에 대한 소개와 샘플 시디까지 들어 있었다.

그때 들은 리듬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밟아보지 못한 땅에 이렇게 새롭고 매력적인 음악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래서 남미 쪽 음악을 찾아 듣게 됐다. 그러다 보사노바와 삼바를 제대로 알고 싶어서 2010년도에 브라질로 직접 찾아갔다. 거기서 반년 정도 생활하면서 본격적으로 보사노바 음악을 하게 되었다.

나희경의 브라질행은 접촉자로서 대상에 매력을 느끼고 그 때문에 공유하고픈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 경우다. 마음은 몸을 브라질까지 이끌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적인 앎이 있다. 나희경은 외국인으로서 브라질 전통음악을 오해할까 두려웠다고 한다. 외부인의 눈으로 본 전통문화에는 편견과 과장이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브라질을 찾아갔을 때, 보사노바 1세대는 거의 다 세상을 떠난 뒤였다. 다행히 호베르트 메네스칼, 오스바울드 몬테네그로를 만났다. 아직 살아있는 보사노바 1세대 아티스트였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짜 보사노바 음악을 알게 된다는 희열이 있었다.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보사노바가 하나의 전체로서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가서 활동한 덕분에 어떤 부분들이 그 전체를 이루는지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 아리랑 통신사는 오지 않는다

나희경에게 전통음악의 변형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중심부를 건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만 그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형식은 얼마든지 변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옷을 바꾸고 스타일을 바꾸더라도 다른 사람이 되진 않는다. 악기들은 전통적이지만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는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가 발견한 부분이란 심층과 표피의 관계였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문화접변 자체의 의의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문경에 통신사절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희경 씨의 경우대로라면 해외건 국내건 음악인과 어울릴 음악인이 필요하다. 바깥의 음악인들이 찾아올 만한 음악적 요소가 `문경아리랑`에 있다고 일단 전제한 뒤에 그렇다. 음악인들이 문경에 온다면, 그곳이 문경아리랑을 접하기 가장 좋은 곳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이 원하는 아리랑은 보는 아리랑이기도 하지만 듣는 아리랑이다. 음악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아리랑이다. 가능하다면, 자생적으로 아리랑을 음악적으로 영위하는 창작주체가 있어야 한다. 1세대 보사노바 가수들이 대부분 사라졌더라도 한 두 명의 음악인에 의해 전통음악이 거듭날 수 있음을 나희경 씨는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경우는 드물다. 문경에 오는 이들은 음악인들이 아닌 관광객이다. 문경새재는 연 40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국민관광지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한국인들이 꼭 가보고 싶은 관광지 1위`에 뽑히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문경세재의 뛰어난 자연환경과 각 명소들에 깃든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있었다.

문경시는 산업화와 근대화 물결 속에서 운 좋게 옛길을 지켜낸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영남대로`라 명명된 길이 어떻게 포장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흙길일 수 있었을까? 세계적으로도 이런 친환경적인 `대로`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교통의 요충지였다고 하는 문경새재가 이런 산 속의 길로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듣게 된 소리는 매우 흥미로웠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이란다. 박정희 대통령이 문경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할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문경새재의 옛길을 훼손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는 얘기다.

 

▲ 세상사의 빠른 변화에도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문경새재 과거 길
▲ 세상사의 빠른 변화에도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문경새재 과거 길

관광객들 흥미 이끌고 기억에 남길
흥미있는 퍼포먼스 곁들인 공연 필요

□ 관광객에게 `함께 즐길` 무언가를 제공해야

사람들이 문경에 무엇을 보러 오는지는 이로써 명확해진다. 문경을 찾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자연경관과 문화유적들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문경이 이러한 관광객을 그냥 관광객으로 돌려보내고 있는 듯하다. 잠재적인 전파자로 돌려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잠재적인 전파자가 될 수 있을까.

문경아리랑을 전파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문경에 오는 사람은 없다. 보사노바를 한국에 알리고 역으로 브라질에 아리랑을 소개하고 있는 나희경 씨 또한 그것을 의도하진 않았다.

“공유하고 확산시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움직여지진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음악 고유의 아름다움 때문에 움직여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요? 물론 사명감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음악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을 것이라고 봐요.”

나희경의 음악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나희경의 말에 비춰보건대 전통문화는 의도치 않게 확산된다.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온 여행기자 류진 씨는 `시샤`라는 수호신의 탈을 쓰고 마당극에서 일본의 민요를 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각 나라의 민요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고 공감할만한 부분도 극히 적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무형문화재를 공연으로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은 말로만 들었을 때엔 매우 뜻 깊은 일 같지만 많은 여행객들은 그런 인류학적 퍼포먼스에 관심이 크지 않다. 오히려 여행지에서 파는 기념품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파티문화가 익숙한 나라는 음악공연을 할 때 무대에 나가서 같이 즐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웬만한 민요 공연에서는 강강수월래 같은 퍼포먼스가 있죠. 다 같이 춤을 추거나 혹은 노래하는 사람 앞에 마련된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요.”

류진 씨의 말이다.

“노래만 하는 공연보다는 퍼포먼스가 함께 있는 공연, 판을 만들어 다 같이 함께 노는 공연이 흥미롭고 즐거운 편이죠. 기억에도 남고요. 그러다보면 한국에 돌아 와서도 여행지에서 익혔던 민요를 흥얼거리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처음 본 사람과 눈을 맞추고 같이 춤추고 그게 아니라면 같이 박수를 치고 몸을 들썩이며 함께 하는 공연은 인상적이다. 그 나라의 고유한 전통 악기,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특유의 리듬, 그 나라의 이국적인 의복 등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면 매우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를 향유하게 되고 기억에 남는다. 문경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일반 관광객들이 즐길만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이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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