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크로아티아 ②

▲ 곳곳에 흩어져있는 조그맣고 아름다운 마을을 만나는 건 크로아티아 여행의 백미다.

전쟁과 테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다수 전쟁과 테러의 원인이 `종교와 인종의 다름`에 있었다는 것 역시 명백하다.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에 이어 유고슬라비아 연방도 몇 개의 나라로 분리·독립했다.

바로 그 즈음, 크로아티아는 혹독한 내전을 겪었다. 독립을 막으려는 세르비아계와의 전투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들 중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 그러나, 세상사 어떤 일도 자신의 뜻대로만 되는 건 없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피로 물들인 내전의 상처를 안고 사는 중년의 사내. 그와의 만남은 크로아티아 방문 첫날 이뤄졌다. 두브로브니크 국제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여자가 대우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운전해 데려간 민박집은 수백 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하는 도시 외곽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 붉은 기와지붕이 줄줄이 늘어서 장관을 이루는 올드타운과 관광객들이 수영과 일광욕을 즐기는 해변과는 다소 떨어진 거리였다. 여행자가 머물 숙소로 입지조건이 그다지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를 따라나서겠다는 관광객이 없었던 게 이해가 됐다.

그러나, 숙소의 조그만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두브로브니크의 풍경은 교통의 불편함을 상쇄해주고도 남았다. 여자가 시원한 레몬차를 내왔다. 여전히 푸른 눈동자에 웃음을 담은 채. 적당하게 새콤하고, 알맞게 달콤한 레몬차가 여행자의 피로를 녹여줬다.

▲ 두브로브니크의 언덕을 오르는 계단. 아름다운 주위 풍광 덕에 힘겹지만은 않다.
▲ 두브로브니크의 언덕을 오르는 계단. 아름다운 주위 풍광 덕에 힘겹지만은 않다.
향 가득한 홍차와 빛나는 바다… `엽서사진` 같은 두브로브니크

병원에서 야간 간호사로 일한다는 40대 초반 여자의 친절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메모지와 볼펜을 가져와서는 현지인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른바 `두브로브니크 맛집`과 근사한 향을 자랑하는 홍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해변에서 올드타운을 거쳐 숙소를 오가는 시내버스의 번호까지를 알려준 것이다. 그 성의와 친절이 따스했기에 감동스러웠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내일 새벽이 돼야 퇴근할 터이니, 숙소로 들어올 때 사용하라며 작은 열쇠를 건네주는 것으로 그녀의 `방문객 브리핑`이 끝났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요”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시원한 레몬차 3잔을 거푸 들이켜며 들은 설명만으로도 처음 방문한 도시가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때다. 그녀가 출근을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조용하던 건너편 방의 문이 열렸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남편인 듯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가벼운 눈인사만을 전했다.

사내 역시 친절한 미소를 보였지만, 얼굴 한 구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지닌 그림자 뒤편 지워지지 않은 깊은 상처를 기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확인하게 된 건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던 날 새벽이었다.

여자는 출근하고, 남자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후, 지갑과 디지털카메라만을 챙겨 두브로브니크 시내로 나갔다. 눈부신 햇살 아래 더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의 빛깔.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새빨간 지붕과 짙푸른 아드리아해. 누가 찍어도 세칭 `엽서사진`으로 손색이 없을 풍경이 도시 전체에 펼쳐지고 있었다.

작품에 가까운 옛 건축물들, 크로아티아인 미적감각 짐작케 해

때는 한여름. 한국과 마찬가지로 철부지 아이들은 윗도리를 벗고 두브로브니크 고성 인근 바닷가에서 저마다의 포즈로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13세기 축조된 성벽 아래 사파이어빛으로 출렁이는 아드리아 바다는 그 다이빙에 깜짝깜짝 놀라며 새하얀 포말을 제 가슴 깊숙한 곳에서 뿜어내기 바빴다.

백사장에선 병아리처럼 노오란 색깔의 머리칼을 가진 아기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엄마의 뒤를 쫓아다녔다. 동화책에서 보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올드타운으로 들어서자 단순히 주거시설이라기 보단 작품에 가까운 건축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로아티아인들의 미적 감각을 짐작할 수 있는 집들이었다. 예스럽고 미려했다.

이쯤 되니 앞서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사람들이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를 연발하는 게 절반은 이해가 됐다. 파도가 바로 눈앞까지 밀려드는 식당 야외좌석에 자리를 잡고 생선 바비큐와 맥주를 먹고 마셨다. 풍광과 분위기에 취해 맥주를 여러 병 마셨다. 거기에다 옆 테이블 사람들과 웃음을 주고받으며 마신 칵테일 두어 잔이 더해지니 이국의 꽃향기가 어디선가 밀려왔다.

아마도 취기 탓이었을 것이다. 동유럽 어느 전설처럼 아드리아해에 손발이 닿아 몸 전체가 새파란 보석으로 변한 사람의 환영을 본 것은.

청옥빛 파도가 심장까지 밀려들어와 울렁이는 밤. 푸른색 바다를 배경화면 삼아 붉은 빛을 토하며 사라진 태양이 곤한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풍광과 우울한 감상의 교차는 다음 날 새벽 기자가 겪게 될 일을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크로아티아의 속살 엿보려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그레브-플리트비체-스플리트-두브로브니크`의 경로를 선택해 남하하거나, 같은 도시를 역순으로 북상하며 크로아티아를 돌아본다.

휴가 기간이 비교적 짧은 이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 코스는 크로아티아의 핵심 관광지를 모두 돌아보는 비교적 합리적인 경로로 알려졌다. 그러나, 2~3주 이상의 여유로운 일정으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아래 방법을 통해 보다 달콤한 여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 유명 관광지 인근 소규모 해변 방문하기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들 중 하나다. 하지만, 거기엔 언제나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그 시끌벅적함을 피해 보다 조용한 곳에서 아드리아해를 즐기고 싶다면, 시내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 유명 해변 인근 조그만 바닷가를 산책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적 드문 바닷가의 조용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즐기는 여유로움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당연지사 음식 값과 음료수 가격도 도심보다 훨씬 저렴하다.

■ 배를 타고 평화로운 섬 찾아가기

아드리아 바다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섬들이 가득하다. 당일치기로 두브로브니크 인근 로크룸섬에 다녀오거나, 스플리트 근처 흐바르섬에서 2~3일 묵어보는 것은 더없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로크룸섬 나무그늘 아래 편안하게 누워있으면 공작새의 아름다운 깃털이 당신의 얼굴을 간질일 수도 있고, 저물녘 흐바르섬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번잡했던 마음속 잡념을 떨칠 수도 있다. 크로아티아 주위에 점점이 박힌 섬들은 유유자적과 안빈낙도가 무엇인가를 풍경으로 설명해준다.

■ 렌터카 혹은, 기차 이용하기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입국한 여행자라면 렌터카를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바닷가 해변도로를 달리다가 아름다운 풍광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차를 멈추고 순간순간 운치를 즐길 수 있는 렌터카 여행은 신혼부부들에게 인기다. 스플리트와 자그레브 구간을 기차로 달려보는 것 역시 크로아티아의 속살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방법이다.

서유럽이나 일본의 기차처럼 빠른 속도와 세련된 서비스를 기대하긴 힘들지만, 발칸반도에서 기차를 타보는 흔치 않은 경험이라 의미가 작지 않다. 게다가, 기차여행에선 마주 보는 좌석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자끼리 인종과 국적을 넘어서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 또한 여행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사진제공/류태규

국장席 기자/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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