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농식품 강소기업을 찾아서
(2)죽장연

▲ 죽장연의 대표식품인 된장과 고추장, 간장. /죽장연 제공

함께 하는 시간이 길수록 닮아가기 마련이다. 부부가 세월 따라 서로를 닮아가듯, 사물도 그것을 만들고 곁에 오래둔 이를 닮는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사리에 위치한 `죽장연`의 정연태 대표는 전통장 만큼이나 부드럽고 넉넉한 첫 인상을 전했다. 오랜 기간 정성들여 만든 전통장처럼 정 대표의 호흡과 말(言)의 속도는 묵직하고 일정했다. 지난 10여년을 함께 하며 그가 전통장을 닮은 것인지, 전통장이 그를 따른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큰 일교차·청정지역서 재배한 콩 사용
1000일의 기다림과 지혜로 빚은 `전통장`
“지구촌 사람들에게 `진짜 장맛` 알리고 싶어”

죽장연의 전통장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나눔의 공(功)이 컸다. 죽장연의 모기업인 영일기업은 지난 1999년 죽장면 상사리마을과 1사1촌 자매결연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수확 철 일손 돕기부터 농기계 수리, 독거노인 의료봉사 등 각별히 마을을 챙긴 공(功)에 감동한 마을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당시 주민들은 농번기가 끝나는 10월말이면 가장 마지막으로 수확하는 작물인 콩으로 장을 담가 나눠먹었는데, 감사의 표시로 장을 선물한 것이다. 상사리마을의 특별한 장맛을 알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후 2005년부터 마을 주민 30여명이 모여 본격적으로 장을 담그기 시작해 2010년 11월에는 `죽장연`이란 이름으로 소비자들의 식탁을 찾아갔다.

`죽장연`의 `죽장`은 마을이름에서 땄다. 신라 말 무렵 고려로 복속되기를 거부한 귀족들이 숨어살았던 마을로 죽장(竹長), 즉 `곧은 절개`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연(然)`자를 더해 죽장연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옛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아 전통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모두 자연에서 구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덕분에 군더더기 없이 깊고 깔끔한 맛이 최고의 장점이다.

전통장을 만드는 과정은 우선 200일간 재배한 콩을 수확해 하루 보관 후 또 다시 24시간 불리는 작업을 거친다. 불린 콩은 무쇠가마솥에 참나무장작으로 삶고 뜸을 들여 메주로 만든다. 완성된 메주를 매달아 50일간 건조하고 20일간 발효과정을 밟는다. 간수 뺀 천일염에 넣어 50일간 장 가르기 시간도 필요하다. 장독대의 배치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일조량을 최우선으로 설계해 햇볕을 고루 잘 받게 하고자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나열해 보관한다. 최소 2년 이상 옹기에 익힌 다음에야 세상의 빛을 보는 것이 바로 죽장연의 전통장이다. 정성 담긴 각 과정에서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작용해 명품된장을 만드는 것이다.

정 대표는 “무려 1000일을 기다려 만든 장이다. 처음 3년간은 특별한 수익 없이 장이 완성되길 기다리면서 제대로 된 장맛이 나올까 싶어 걱정이 많았다. 빨리 만들려고 했다면 지금의 장맛을 절대 내지 못했다. 기다림 끝에 얻은 최상의 맛이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장맛의 비결은 죽장면이 지닌 특별한 기후조건 덕분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청정지역인데다 고랭지라는 지리적 특성상 일교차가 심하고 일명 `돌바람`이 많이 불어 콩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정 대표는 `장은 좀 거칠게 다뤄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면 장맛이 깊어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죽장연 전통장은 `빈티지`로 표시해 관리한다. 와인처럼 숙성정도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2년 묵은 된장과 3년 익힌 된장의 맛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연도별로 장맛의 특징도 뚜렷하다. 예를 들어, 2011년에 담근 장은 찌개보다는 국에 더 잘 어울리고 2012년 제품은 적갈색으로 색이 좀 더 진한데 찌개로 끓였을 때 더 풍미가 좋다. 각 요리마다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장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 정연태 죽장연 대표
▲ 정연태 죽장연 대표

정 대표는 “모든 음식의 맛은 장맛이 좌우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사용해 요리하더라도 공장에서 만든 장으로는 최고의 맛을 내기 어렵다. 국내·외 유명 셰프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자신들이 원하는 맛을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을 찾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최고의 장맛을 내는 것만큼이나 정 대표가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장맛을 알리는 일이다. 그는 사람들이 체험을 통해 향수(鄕愁)를 느끼고 느림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비전을 소개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게스트 하우스를 세우고 내년에는 죽장초등학교 상사분교에 된장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그는 “전통장은 지혜의 산물이다. 지금은 드문 풍경이지만, 예전엔 집에서 장을 담가 먹어 집집마다 장독대가 꼭 있었다. 이러한 전통문화유산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 `진짜` 장맛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