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휴<br /><br />대구경북부
▲ 전병휴 대구경북부

최근 개봉한 영화 `사도`는 불행했던 조선의 왕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왕과 왕자의 사이라도 그 사이에 신뢰가 없다면 관계가 합리적으로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언론인은 현대사회 `무관(無冠)의 왕`이라 불린다. 그렇기에 휘두르는 펜 끝에 누군가가 죄 없이 다치지 않는가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 객관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진리`까지 바뀔 수는 없다. 진리는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결국 언론과 언론인이 사회적 신뢰를 얻는 방법은 객관성을 기반으로 `진실(Truth)`과 `사실(Fact)`을 말하는 길뿐이다.

최근 고령군 다산면에 새롭게 조성될 아파트단지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지상(紙上)에서 오가고 있다.

언제나 그렇다. 지방자치단체에 새로운 사업이 시행될 때면 풍문처럼 여러 이야기들이 떠돈다. 특혜를 포함한 `봐주기 식의 편의 제공 의혹` 등등. 그러한 풍문이 사실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언론인의 책무다. 그 책무를 실천하는 동시에 `신축되는 건물(아파트)이 현재를 사는 지역민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라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언론인 역시 동시대 같은 공간을 사는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몇몇의 언론사들은 말한다. “고령 상곡지구 아파트의 시행사를 바꾼 것은 특혜”라고. 또한, “군(郡)이 가진 땅의 사용승낙 신청이 급속히 이뤄진 것은 이례적인 행위”라고. 물론, 군정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책무를 가진 이들로서 지적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담당 업무를 진행해 온 공무원은 “피폐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령에 적지 않은 세금을 낼 수 있는 업체를 택했다”라며 “열심히 하려는 열정에 흠집이 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면, 공무원의 주장과 의견 또한 들어 기사에 반영하는 것이 객관적인 태도 아닐까.

조선시대 왕의 가장 큰 책무는 억울한 백성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현대사회 `무관의 왕` 언론의 책무도 마찬가지다. 외부의 압박으로 쓸 기사를 쓰지 못하는 억울한 기자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오해받는 억울한 공무원 역시 없어야 한다. 고금(古今)을 불문하고 그게 공평하고 합리적인 세상이지 않을까.

고령/kr5853@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