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선애<br /><br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작자와 창작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배좌수의 딸 장화가 정혼을 하게 되자, 혼수를 많이 준비하려는 남편의 의도에 불만을 품은 재취가 자신의 재산 몫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 흉계를 꾸며 장화를 죽인다. 동생인 홍련의 꿈에 죽은 장화가 현몽하여 홍련은 장화가 원사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그 뒤 부사로 부임했던 정동우(鄭東佑)가 장화와 홍련이 겪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었다는 잘 알려진 서사이다.

서사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장화와 홍련의 계모, 즉 배좌수의 재취이다. 장화와 홍련이 죽고 없는 시점에서, 진실을 말하든지 거짓을 말하든지는 순전히 그녀의 마음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 증언을 선택한다. 장화는 낙태하여 투신자살하였고, 홍련은 행실이 부정하더니 야음을 틈타 가출하고 종무소식이라고 하며, 장화의 낙태물을 증거물로 제시하자 그녀는 풀려난다. CCTV도 없는 상황에서 범죄자의 진술을 토대로 죄의 유무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서사는 장화와 홍련이 꿈이라는 장치를 활용해서 자신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

며칠 전 이태원 살인사건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용의자로 재판을 받고 있는 패터슨과 증인으로 출석한 에드워드 리는 서로 상대방이 범인임을 주장하고 있으니 진실 게임을 보는 것처럼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이 발생했던 1997년 당시에는 CCTV도 상용화되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범인의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시 현장에서 살해당한 조중필씨의 어머니는 이제 72세가 되었고, 서로에게 죄를 떠넘기는 패터슨과 리의 행동을 보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싶고, 마주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데 그런 걸 못해서 너무 속이 상하다”며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사님들 그냥 우리 죽은 아들 한이라도 풀게 범인을 꼭 밝혀 달라. 중필이 잃고 범인이 밝혀지는 걸 18년 동안 빌었다. 하나님이 계시고 부처님이 계셔서 소원을 들어주셨는지 여기까지 왔다. 꼭 범인을 밝혀주셔서 중필이 한도 풀고 저희 가족 한도 풀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원한에 사무친 한 어머니의 회한어린 소망임을 알 수 있다. 거짓 없는 사실이라는 뜻을 지닌 진실이 게임을 할 때 일부러 감추거나 밝히는 시합(試合)을 일컫는 말이 된다. 장화홍련전에 등장하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부사 정동우 이외에도 우리 고전에는 여러 인물들이 있다. 조선시대 조광원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가 천추사로 연경에 가다가 밤에 서관의 한 큰 고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기생의 원혼을 만나서 사연을 듣고 해결해 준 인물이다. 기생이 어느 해 몇 월 며칠 어떤 사신을 모시고 있다가 소변을 보려고 나가는데 관노 아무개가 기둥 아래 누워 있다가 달빛에 비친 그녀를 보고는 겁탈하려 했다. 그녀가 죽기를 각오하고 범인을 따르지 않자 그녀의 옷을 찢어 입을 막고, 그녀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한 후 정원의 큰 바위 곁으로 끌고 가서 돌로 압사시켰다는 정보를 준다. 조광원 또한 지혜롭게 범인을 잡아 벌을 줌으로써 기생의 원한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어사 박문수도 그런 인물 중의 한 명이다. 조선 팔도를 떠돌아다니며 그가 지닌 특유의 기지와 혜안으로 여러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준 인물로 유명하다. 원한은 원통하고 한스러운 생각이다. 사건 속 어디엔가 진실은 반드시 있기 때문에 진실 게임의 끝은 원한의 해소에 이르리라 믿는다. 이태원 사건의 진범이 빠른 시일 안에 가려져 그 어머니의 나머지 생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