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탐사
다시 형산강에서…
(15) 포항 300㎞ 너머 일본 이즈모

▲ 고대 제철 유적지인 스가야 다타라 마을 일대의 전경

동해바다 영일만에 닿은 형산강의 하구 인근에 살던 신라의 연오랑 세오녀가 건너간 일본땅은 한국과 독도 문제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시마네현의 이즈모시(出雲市)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난 2005년 `다케시마의 날`조례 제정 이후 10년째 경상북도는 교류 중단을 이어오고 있다. 이를 무릅쓴 두 지역의 민간교류 시도는 양국 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본지가 현지에서 확인한 이즈모는 연오랑세오녀의 가호(加護)가 있기라도 하듯 포항과 신화로 이어진 땅이었다.

일부선 `日건국 기원 관련인물 스사노오는 연오랑` 주장
김 채취 제조법 전한 신라인들 기려 매년 제사 지내기도

□ 더 가까워진 이즈모

대중교통이 비싸고 불편한 일본에서 이즈모시는 비행기로 히로시마에 도착해 다시 4~5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먼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나가 인천공항~일본 돗토리현 요나고공항 간 정기노선을 개설해 1시간이면 도착하고 자동차로 이즈모까지 1시간이 더 걸린다.

이즈모시의회의 초청으로 지난달 28일부터 2박3일간 시마네현 일부 도시를 둘러본 기자를 싣고 돌아오던 여객기가 동해를 가로질러 처음 도착한 한반도는 포항 상공이었다. 시속 700km의 항공기로 불과 2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300km의 거리. 일본의 향토사학자 니시코리 아키라(錦織明·66)씨가 중심이 돼 일본에서 먼저 오랫동안 시도되고 있는 통나무배를 이용한 바닷길로 3일이면 닿을 수 있다는 거리가 실감났다. 가까워진 물리적 거리만큼 민간 간 교류를 위한 마음의 간격도 가까워지고 있다.

28일 이즈모시청에서 공식 인터뷰한 나가오카 히데토(長岡秀人)시장은 “연오랑과 세오녀가 맺어준 포항과의 인연을 계승해 앞으로 민간은 물론 통상 교류의 시대를 열고 싶다”며 적극성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 곳곳에 신라의 흔적

인구 17만명의 이즈모는 `출운`(出雲)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시 브랜드를 `신화의 고향`으로 대내외에 홍보할 만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돋보이는 도시이다. `고지키`(古事記)에 등장하는 신화의 인물 오오쿠니누시와 스사노오는 이즈모를 무대로 하는 일본 건국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신화는 일본 천황의 뿌리이므로 국가 다음의 이야기라는 뉘앙스마저 이들에게서는 느껴질 정도이다. 한일의 일부 학자들은 스사노오가 연오랑이라는 설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신이 모셔진 신사인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는 일본에서 인연을 이어주는 영험함으로 유명한데 한국과의 얘기도 전해진다. 29일 기자를 안내한 이즈모시의회 타타노 의원에 따르면 이 신사의 신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동쪽의 한국 방향으로 모셔져 있어 신라 연원을 추측케 하고 있다. 특히 이 신사는 고대에 피라미드에 버금가는 거대한 규모로 지어져 이 일대에 고대문화가 융성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최근 경내 굴착 과정에서 거대한 목재기둥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근거를 더하고 있다. 난파한 신라인들이 자신들을 도와준 이즈모 어민들에게 김 제조법을 전하고 매년 이를 기려 이어지고 있는 제사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현지인의 안내로 29일 방문한 이즈모가와시모항(出雲河下港) 건너편의 어촌 마을은 일본 전국에서 김 명산지로 유명하다. 이곳 어민들은 1상자 당 30만원의 고가에 팔리는 김을 채취하는 첫날 김 제조법을 전수해준 신라사람들을 기리는 제사를 올린다.

□ 고대 제철 유적지에 핀 무궁화

이즈모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거리인 운난시는 일본의 대표적 친한파 정치가인 고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의 고향이며 현재 그의 가업인 고향마을 양조장 옆에는 기념관이 마련돼 있다.

29일 타타노·이이츠카 두 시의원의 안내로 방문한 이곳 기념관 인근에는 `철의 역사박물관`과 고대제철유적지인 스가야다타라(菅谷たたら)가 보존돼 있을 만큼 시마네현은 일본에서도 이름난 철기문화의 고장이다. 철의 역사박물관 관람에 앞서 상영된 다큐멘터리(이와나미영화사 제작)에는 이곳에서 살던, 일본 고대 다타라(제작공법의 한 종류) 장인이 생전에 직접 전통방식으로 재연한 제철과정을 담고 있었다. 내레이터는 대륙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 고대제철법 가운데 다타라 방식은 신라사람들이 직접 전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처 산속에 자리 잡은 스가야다타라 유적지는 녹슨 양철이나 우리의 너와와 비슷한 지붕을 얹은 집 20~30여채가 전부인 퇴락한 마을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운난시의회 시의원으로서 문화유적안내를 하는 호리에 신 촌장에 따르면 이곳에서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고는 하나 그리 눈에 띠는 유적이나 유물은 없었다.

하지만 유적관 입구의 바로 옆에는 뜻밖에도 반가운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호리에 촌장과 동행한 두 이즈모시의원에게 이름을 아는지 물어보았더니 역시 답은 오지 않았다.

언제 심어진지 알 길이 없는 나무에는 꽃이 한송이 피어 있었다. 무궁화였다.

기자의 설명에 놀라움이 역력한 이들은 꽃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강고쿠노 곳카 무구게`(かんこくの こっか ムクゲ, 한국의 국화 무궁화)라며. 그 순간 한국과 일본은, 경상북도와 시마네현은, 연오랑 세오녀와 스사노오는 남남도, 적도 아님을 느꼈다.

인터뷰 나가오카 히데토 이즈모시장

여자 축구선수 영입 등
민간교류부터 차근차근

이즈모시는 2005년 3월 경북도의 `시마네현 교류 중단`선언에도 불구하고 5~6년전까지는 연오랑세오녀 신화를 매개로 포항과 교류를 해왔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 체제 이후 양국 간 관계마저 악화되면서 공백기가 계속돼 왔다. 지난 1월과 8월 이즈모시의회와 상공회의소의 요청으로 포항 방문을 주선한 본지는 나가오카 히데토 이즈모<사진>시장을 현지 인터뷰해 도시 현황과 교류 방안 등을 들었다.

-이즈모시를 상징적으로 홍보하면.

△일본 고사기 등에 실린 신화가 상징하듯 이즈모에는 일본의 국가 생성의 원점이 있다. `신화의 나라``일본의 고향`이라는 자부심과 홍보는 이를 근거로 한다. 이즈모타이샤 등 수많은 문화유산과 신지코호수, 구니비키해안 등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매년 1천만명의 관광객을 찾는 저력이 있는 곳이다.

-산업 현황은.

△지난 2005년 구 이즈모시가 중심이 된 지자체 합병을 통해 인구 17만명의 시세를 바탕으로 제조품 출하액은 시마네현 전체의 40%, 농업 산출액과 상품 판매액은 20%를 차지하는 등 각종 산업이 골고루 발전해있다. 엔무스비공항(국내선), 가와시모 항구, 산인자동차도로 등 육해공 교통거점과 산인지역 일대 대표적인 고도의 의료기관과 쇼핑시설 등 기반을 갖추고 있다.

-포항과 구체적 교류 방안은.

△포항은 공항과 KTX 개통, 국제무역항 등 발전 가능성이 큰 도시이다. `DIOSA 이즈모 FC`와 추진 중인 포항 연고 여자축구선수 영입 등 민간교류를 시작으로 연오랑 세오녀 테마공원 내 이즈모 특산품 전시 등으로 확대하면 항만물류 및 통상교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 `다케시마 반감`에 시마네 주민들 당혹”
시마네현청 박혜정 교류원이 전하는 현지민심

“시마네현 사람들은 한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강력하게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반발할지 몰랐는지 당황해 하고 있습니다.”

본지의 이번 이즈모 취재 기간 동안 통역을 맡은 시마네현청 박혜정 국제교류원은 2005년 조례 제정 당시 현지의 강력한 반발 움직임이 최근까지 이어져 당시 결정을 후회하는 여론이 높다고 전했다.

해마다 3월 조례 선포일을 전후한 극우 시위 참가자들도 주로 오사카 등 간사이지방에서 넘어올 뿐 현지인들은 무관심하다고 한다. 현지에서 조례 선포 당시 `뜬금 없다`는 반응이 많았으며 정부에 의한 모종의 개입이 있었다는 일부의 분석도 전했다.

그는 일본의 극우에 대한 반감과 우려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맡은 주요 업무가 각 학교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일인데 엉뚱하게 우익들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신상털기와 악플, 협박메일은 자주 이메일을 바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일본 외무성의 시험에 채용된 후 올해 3월 첫 `다케시마의 날`시위 기간에는 동료들의 권유로 휴가를 내고 비우기도 했다.

박혜정 교류원은 하지만 일본 정부의 노련한 해외 교류정책을 언급했다. 일례로 해마다 국토교통성이 전국 지자체를 돌며 시설물의 한국·중국·영어 병기 실태를 평가한다. 또 자신처럼 한국, 중국,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교류원을 채용해 각 현청 등에 배치하고 있다. 그는 거듭된 사진 게재 요청에는 우익들의 악용을 우려해 끝내 사양했다.

/일본 이즈모시에서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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