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목요일 이른 아침. 포항 날씨는 태풍의 끝자락을 타듯 드센 바람이 잔뜩 찌푸린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일찍 숙소를 나선 나는 효자동 대중목욕탕으로 걸어갔다.
내가 옷장에 열쇠를 꽂았을 때, 목욕 후 옷을 입고 평상에 걸터앉은 두 노인이 `박태준`을 화제에 올렸다. 키 큰 노인이 보통 체구의 노인을 형님이라 불렀는데, 얼핏 던진 곁눈질에도 팔순을 바라볼 두 노인은 그러니까 `늙은 포철-맨`이었다.
“형님, 홋카이도 무로랑제철소 연수 시절이었는데요, 하루는 박태준 사장님이 와서 저녁에 우리 연수생들을 식당에 모았습니다.” 나는 얇은 잠바만 벗어 옷장 속에 걸어두고는 일부러 꾸물대고 있었다. 내놓고 엿듣기가 민망해서 잔꾀를 부린 것이었다.
키 큰 노인이 이야기를 이었다. “포철로 오기 전의 직장에서는 월급 6만원을 받았는데, 포철로 가면 해외연수 기회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옮겼더니, 포철에서는 월급이 4만5천원이대요. 25퍼센트나 줄었으니 마누라는 입이 튀어나왔지요.” 보통 체구의 노인이 한마디 끼어들었다. “그때 없던 살림에는 충격이 컸겠다.”
키 큰 노인이 쿡쿡 웃었다. “그날 저녁에 박 사장님이 술도 하자고 해서 제법 마셨는데, 건의가 있으면 하라고 해서, 내가 월급 얘기를 했어요.” “6만원 받았는데 4만5천원밖에 안 준다고?”“예에. 그랬더니, 북한에서 혼자 내려왔느냐고 물어요. 아니라고 했더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요. 울산 정자라고 했더니, 거기는 자기 외가라고 합디다. 그래서 모두가 웃었는데, 그 뒤에도 몇 사람이 이런저런 건의를 했어요. 박 사장님이 다 듣고 나서 자네, 자네, 하고 나를 포함해서 넷을 앞으로 불러내요.”
나는 천천히 양말 한 짝을 더 벗는 중이었다. “우리는 다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상의를 배꼽까지 들어 올려 보라고 해요. 영문도 모르고 긴장을 해서 그렇게 했더니, 모두 허리띠는 매고 있구나 하고는, 허리띠 칸을 최대한 줄여 보고 각자 몇 칸까지 줄여지는지를 말하라고 해요.” 보통 키의 노인은 듣고만 있고, 나는 양말 두 짝을 옷장 속에 넣었다.
“나는 네 칸, 내 옆에는 세 칸, 다른 둘은 두 칸을 줄였다고 발표처럼 했는데, 아, 그러자 그 양반이 아주 진지하게 이러는 겁니다. 우리는 자손들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가자.” 문득 나는 박태준 어록의 한마디를 떠올렸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자적으로 희생하는 세대다.` 평전 `박태준`을 쓴 작가로서 내 주인공은 빈말하지 않았다는 점도 새삼 아리게 확인했다.
“형님, 나는 그때 그 말씀과 그 장면을 평생 못 잊어요. 그거 참 가슴이 찡하더니만, 오래도 가네요.” 듣고만 있던 보통 키의 노인이 낮게 한탄을 했다. “그런데 이게 뭐고? 요새 회사를 보면 허파가 뒤집어진다.” 키 큰 노인이 발끈했다. “성진지오텍이다 뭐다, 무슨 수사가 뒷북만 친답니까?”“그러게. 포항 민심은 하나도 못 밝히면서 질질 끌어대며 회사 이미지만 자꾸 실추시키고.”
나는 속옷을 벗었다. 두 노인의 입에서 실명(實名)들이 튀어나왔다. 한때 권력을 쥐락펴락한다던 그 이름들을 육두문자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박 회장님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설 일이지. 어제 발표한 쇄신안들이 제발 잘돼야 할 건데.” 선배의 차분한 분노를 후배가 거칠게 받았다.“회사가 엉망이 되는 동안에는 새로 생기는 외주파트너사를 실세다 국회의원이다 뭐다 그 똘마니들이 여러 개 먹었다고 하잖아요? 회사의 빽이 돼준답시고 그 빨대에서 빼낸 돈으로 공천권 가진 것들한테 줄을 대고는 공천 받는다, 무얼 해먹는다, 분수도 모르고 설쳐댄 놈들도 있었잖아요? 그 난장판에 얼굴마담이나 해준 OB들도 없지 않았고요. 쇄신을 확실히 하자면 그런 빨대들도 솜씨 좋게 뽑아버려야지. 형님, 안 그래요?”
나는 발을 옮겼다. 발가벗은 몸으로는 차마 나를 소개하고 성함을 여쭐 수가 없었다. 한산한 목욕탕의 둥그런 열탕에는 혼자였다. 어느 순간에 `야속한 운명인가, 고운 순정 보람 없이`로 시작하는 노래 `백치 아다다` 2절을 쓸쓸히 부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