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삼척·영덕·포항·감포 대왕암까지
⑽ 대게와 고래고기 별미, 구룡포 풍성한 바닷가

▲ 포항 구룡포 바닷가 동네
▲ 포항 구룡포 바닷가 동네

`구룡포`라는 지명에는 전설이 따른다.

신라 진흥왕 때, 장기 현감이 여러 마을을 돌아보고 다니는 중 폭풍우를 만났다. 그 비바람을 뚫고 용(龍) 열마리가 승천(하늘에 오름)하는 것을 보았는데, 현감 눈앞에서 용 한 마리가 애석하게 떨어져 죽었다. 열 마리 중 아홉 마리 용만이 승천했다 하며, 그때부터 이 바닷가 이름을 `구룡포(九龍浦)라 불러왔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 가운데, `용(龍)`자 이름을 지난 곳은 매우 드물다.

장길리 무인도 `보릿돌`
경치 아름답고 물고기 잘 잡혀

부위 다양한 고래고기 맛 일품

일본인 많이 살았던 동네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가꿔

구룡포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잘 잡힌다.

특히 구룡포 장길리에 있는 무인도(無人島) `보릿돌`은 경치가 아름답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작은 섬으로, 낚시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높이 10m의 희망등대도 세워져 있어 관광객의 발길도 잦다.

구룡포 앞바다는 고래가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 일찍이 일본인들이 살았던 구룡포 거리를 찾아온 일본 관광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 일찍이 일본인들이 살았던 구룡포 거리를 찾아온 일본 관광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구룡포 바닷가 바위에는 고래가 부딪혀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구룡포 바닷가에 고래고기 식당이 더러 보이는 까닭이다.

고래고기는 맛있고, 그 부위(部位)도 매우 다양하여 특히 술꾼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고래고기 매운탕의 맛도 구수하다. 점심 시간에는 여성들의 발길도 잇따른다.

▲ 구수한 고래고기 고추장찌개 한냄비.
▲ 구수한 고래고기 고추장찌개 한냄비.
3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모모식당`도 그 중 한 가게다. 밍크고래고기 전문점이다. 주인은 김언형씨. 구룡포 4리 956의 9번지, 본점의 전화번호는 054-276-2727. 부산점의 번호는 051-508-2146. 휴대폰으로도 연락된다. 016-508-2146, 010-9193-2727. 2와 7을 합치면 9가 된다. `구룡포`의 `구`를 상장히는 숫자이다. 아무튼 구룡포의 고래고기는 매력있는 영양음식이다. 
 

▲ 구룡포길 143번길에 있는 옛모습 그대로의 일본인 가옥들.
▲ 구룡포길 143번길에 있는 옛모습 그대로의 일본인 가옥들.

구룡포 143번길에는, `구룡포 근대역사관(近代歷史館)`도 있다. 일정(日政) 때 일본인들이 살던 동네를 고스란히 보존하여 보여주고 있는, 희한한 주거지대다. 우리나라를 통틀어 이런 동네는, 아마도 이곳 한 군데 뿐일 것이다.

일본은,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 36년간 한국을 강압통치했다. 당시 우리나라 방방곡곡 일본인이 지배하지 않은 고장은 없었지만, 포항 구룡포에는 특히 많은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 구룡포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위에 세워진 `구룡(九龍)` 동상.
▲ 구룡포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위에 세워진 `구룡(九龍)` 동상.

당시 구룡포 바다에서는 정어리가 많이 잡혔다. 일본인이 특히 즐겨먹는 생선이기도 하지만, 당시 일본군부(軍部)에서는 이 정어리를 짜서 만든 기름을 대량 거둬 군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석유나 휘발유 대신 쓴 것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탓으로 해외에서부터의 석유 유입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다에서는 생선을 잡아서 짠 기름, 산에서는 소나무 가지에 맺히는 송탄(松炭)을 짜서 거둬모은 기름으로 대용(代用)하곤 했던 것이다. 구룡포에 일본인이 많이 살게 된데는, 이 바닷가에서 정어리가 많이 잡힌 탓인지도 모르겠고, 구룡포항이 일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 구룡포 4리에 있는 밍크고래고기 전문점 `모모식당` 전경.
▲ 구룡포 4리에 있는 밍크고래고기 전문점 `모모식당` 전경.

이 일본인 마을을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가꾸어, 근대사의 진실을 오늘날의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

▲ 포항시 구룡포 근대역사관 박주연 관장
▲ 포항시 구룡포 근대역사관 박주연 관장
일찍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국영사관에 일하고 있던 여성 박주연씨다. 일제시대(日帝時代) 구룡포의 면모와 한·일관계사의 실상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 한다. 

미혼(未婚)이고 미인(美人)인 박씨는, 구룡포 143번길 일대의 가옥을 사들여, 당시의 일본인의 생활모습을 통해 한·일관계사의 진상을 일본인들을 불러 알려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다.

▲ 맛깔스러운 밍크고래고기 수육(오른쪽)과 고추장버무림(왼쪽).
▲ 맛깔스러운 밍크고래고기 수육(오른쪽)과 고추장버무림(왼쪽).
실제로 이 마을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의 자손들과, `일본인 마을`에 관심을 갖게된 일본인들이 요즘도 이곳을 적지않이 찾아온다고 한다. 

 일본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도, 서울 등 각자에서 자주 찾아온다.

“젊은 세대에게 강점기 때의 일을 일러주는 일은 아주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어떻게 강점기시대를 고통속에 살아왔는지, 또 일본사람들의 나쁜 점, 좋은 점에 대해서도 올바로 일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영희 교수
▲ 이영희 교수

열등우월의식(劣等優越意識)은 한국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있다. 이 콤플렉스를 동시에 넘어서는 노력이, 두 나라 국민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구룡포의 근대역사관 길을 걸어가며 새삼 생각했다.

/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디지털 희망칼라) 캘리그래피·제일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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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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