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햇살이 부시도록 눈을 찔러오는 화사(華奢)한 봄날이다. 자연의 이법(理法)이라지만, 봄의 신비(神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자 불립문자(不立文字)다. 저 숱한 생명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이처럼 불시에 인간세상을 급습(急襲)한단 말인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어처구니없는 인간중심 서사(敍事)도 있기는 하다. 그러하되 사람으로 살아있음을 황홀하게 여기는 빛나는 시절이 주변에 차고 넘치는 계절이다.

그런데 형언(形言)하지 못할 이 봄날을 슬픔과 절망과 한숨과 분노(憤怒)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대참사` 유가족들이다.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의 부모들은 특히 그러할 것이다. 애지중지(愛之重之) 길러온 17년 세월을 단숨에 무화(無化)시켜버린 참사의 기억은 그이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깊은 굴곡(屈曲)을 남겼을 터. 새삼 더 보탤 말조차 없다. 그저 황망(慌忙)하고 다시 황망할 따름이다.

1년 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沈沒)했다. 사망자 295명과 실종자 9명의 대참사로 기록된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세월이 흘렀다. 지난 1년 동안 `세월호 대참사`를 두고 참으로 많은 말과 사건과 충돌(衝突)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한반도라는 공간과 21세기 초(初)라는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가기에 발생했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인과율(因果律)에 의지해야 하는 숙명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체로 장사하는 사람들이”이라는 식으로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는 극한적(極限的)인 말이 횡행(橫行)했다. 광화문 단식농성장 부근에서 폭식(暴食)함으로써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야만의 행태도 나왔다. “교통사고 난 거니까 보상해주면 그만”이라고 폭언하는 고위층 인사도 속출(續出)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자식을 기르는 부모이자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疑懼心)이 찾아왔다.

300명 넘는 사람들이 무고(無告)하게 수장(水葬)됐는데, 이 나라에서 변한 것이 있는지 돌이켜본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고로 상당한 인명(人命)이 불귀(不歸)의 객이 되었다. 정말로 변한 게 있는가! 작년 2월 하순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이 일어나 나라 전체가 술렁인 적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 모녀는 한 달 남짓 지나자 시나브로 잊혀졌다. 죽은 사람들만 안타깝고 구슬픈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대참사`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본원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는 전쟁수행 같은 초법적인 권한까지 가진 막강한 공권력(公權力)을 바탕으로 한다. 개인과 국가가 충돌하면 개인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日淺)하고 공권력이 막강한 나라에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 둘 외면(外面)하고 손사래 치기 시작한다. `그만 하자`는 것이다. 이제 잊자고 말한다. 그만하면 충분(充分)하다고 말한다. 정녕 그러한가!

그렇게 고개 흔들고 욕지거리까지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만일 당신의 생때같은 자식이 느닷없이 죽어나가도, 그만 하자고 할 것인가! 온 국민의 눈앞에서 생중계(生中繼)되는 텔레비전 속에서 당신 아이가 죽었는데도 그만 잊자고 말할 것인가! 왜 죽었는지, 어째서 정부(政府)는 단 하나의 생명(生命)도 구하지 못했는지, 원인도 알지 못하는데 그만 덮자고 할 것인가!

사건발생과 진척양상 및 귀결(歸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낱낱이 밝혀져야 `세월호 대참사`는 덮을 수 있다. 그래야 원통한 영혼(靈魂)도 없고, 유가족도 가정과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총체적 (總體的) 진실이 전부 밝혀져야 비로소 우리도 안도(安堵)의 한숨을 내쉬면서 각자 경험하고 있는 만큼의 미안함과 죄의식(罪意識)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세월호 대참사` 해결(解決)은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