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경북대 교수·인문대학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기에 꽃이 좋고 열매가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도 아니 그치기에 시내를 이뤄 바다에 이르나니.)

필자가 학창시절 즐겨 암송(暗誦)했던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제2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조선왕조 건국에 서린 역사적 연원(淵源)과 인과성(因果性)을 나무와 물에 빗댄 명편(名篇)이다. 이런 비유가 그저 당대에만 유의미했다면 우리의 기억 너머로 사라졌을 터.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것을 보면 비유에 담긴 함축과 의미가 시공(時空)을 초월하고 있음을 알겠다.

근자(近者)에 교육부장관이 대구 가톨릭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 대학 총장을 한껏 치켜세우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인즉 그 대학 총장이 앞장서서 대학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단행(斷行)했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구조조정 가운데 하나가 인문대학 폐교(閉校)였다는 점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4년제 대학에서 인문대학을 자발적으로 없애는 총장. 그것을 기특(奇特)하고 가상하게 여겨 머리 쓰다듬어주는 장관. 뭔가 거시기 하지 않은가?!

하기야 교육부장관이 취임하고 맨 처음 찾아간 대학이 중앙 대학교였으니 알아볼 징조다. 두산이란 재벌이 인수해 기업 입맛에 맞춰 대학에 칼부림을 한 첫 번째 쾌거(快擧)를 이룬 곳이 중앙 대학교 아니었는가! 돈벌이 될 만한 단과대학과 학과는 증설하고, 기초학문과 순수학문은 통폐합을 단행한 것이다. 여기 적용된 논리가 시장 친화형 기업 구조조정이다.

중앙 대학교는 교양필수 교과목으로 철학이나 역사, 문학 대신에 `회계학`을 강요하여 세간의 빈축(嚬蹙)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뚝심의 두산 아닌가?! 프로야구에서도 가장 끈적거리는 뒷심으로 호가 나있는 곳이 두산이니 유구무언(有口無言)이지만…

인문대학 문을 닫고, 인문대학 학과들을 마구잡이로 잘라내는 대학과 그것을 격려(激勵)하고 손뼉 치는 주무장관(主務長官)의 행태라니.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국정 4대 기조로 삼은 현 정권과 화합하는가. 인문대학을 없애고, 학과 문을 닫아걸고, 학생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문화융성을 위한 적절한 행동지침(行動指針)인가?!

더불어 기이(奇異)한 점은 현 정권이 인문학 대중화(大衆化)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모두에게 인문학으로 세례(洗禮)를 주려는 것처럼 나라 전체에 인문학 바람이 드세다. 크고 작은 인문학 관련기획 사업이 하루가 멀다않고 공지되고, 인문학 강연은 전국 방방곡곡 열리지 않는 곳이 없다. 조그만 시골 중등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좋은 일이다!

하되, 문제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인문학의 뿌리는 인문대학이다. 문학과 철학과 역사가 대학 안에서 교습되고 연구되어 대를 잇지 않는다면 인문학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인문대학이 고사(枯死)하고, 관련학과가 문을 닫으면 인문학이 말라죽는 것은 당연지사다.

현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인문학의 대대적인 보급과 교양수준 제고(提高)를 위해서라도 인문대학과 관련 학과들의 존속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철학과, 역사학과, 어문학과가 결석(缺席)하는 대학에서 어떻게 인간적이고 창의적(創意的)인 인재가 양성되겠는가!

인문학은 태곳적부터 경세제민(經世濟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목표로 한 유서 깊은 학문이다. 지난 세기 제2차 대전 이후 학문의 급속한 분화로 인한 인문학의 유체이탈과 `넘사벽`의 어려움으로 인해 궤멸(潰滅)을 길을 자초(自招)한 것이 인문학이다. 그런 인문학이 이제 대대적인 자기반성과 대안모색의 일환으로 저잣거리로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국민에게는 인문학을 장려하는 정책을, 현장에서는 인문대학을 죽이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자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모순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에서 화사(華奢)한 꽃이 피어나 달콤새콤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는다. 본말이 전도된 그릇된 대학정책은 이제 거둘 때도 됐다.

한밤중인데도 창밖에 벚꽃이 대낮처럼 환하다. 버찌도 물론 풍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