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2월 9일 오전 10시 15분 우리는 사람 좋아 보이는 운전기사 세르게이의 낡아빠진 승합차로 알혼 섬 최북단으로 방향을 잡는다. 영하 20도 내외의 냉기가 상큼하게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 정도 추위는 별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다. 승합차는 생각보다 강건하고 힘차게 작동한다. 바이칼의 두터운 얼음장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회청색 승합차.

얼음의 나라 바이칼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려고 세르게이는 곳곳에서 승합차를 세운다. 암벽 위쪽에서 종유석(鐘乳石)처럼 자라난 얼음 줄기들이 예리(銳利)한 창날처럼 즐비하고, 아래쪽에서는 깨지고 갈라진 얼음장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바이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이곳이 범상(凡常)한 장소가 아님을 천명(闡明)하듯 강렬하고 매섭다.

아, 그때! 시퍼런 하늘 저편을 홀로 나는 맹금류(猛禽類)의 거대한 날개가 시야에 들어온다. 어떤 생명도 부지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멸(死滅)의 시공에 저토록 아름답고 강력한 비행체가 생명으로 자라고 있음은 축복이다. 거칠 것 없는 한겨울 창공을 차고 오르는 괴조(怪鳥)의 날갯짓은 바이칼 얼음장 위에서 얼어붙은 온대(溫帶)의 나그네를 위축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윽히 멈춰서는 세르게이의 승합차. 그가 준비한 것은 바이칼 특산인 오물을 쌀과 함께 조리한 따끈한 점심이었다. 비릿한 맛 하나 없는 깔끔한 식사가 홍차와 곁들여지고, 약간의 보드카가 흥취를 돋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세상의 그림자가 절연된 바이칼 얼음장 위에서 소풍 나온 듯 담소(談笑)하며 부랴트족의 점심을 누리는 호사(豪奢)는 기막힌 것이었다.

앞서 걷던 일행 가운데 하나의 입에서 경탄(驚歎)이 흘러나온다. “물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얼음장이 서로 충돌(衝突)하여 둘 사이에 두 자 남짓 수로(水路)가 생겨 있었다. 그 사이로 과연 물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을 들이밀고 물을 마신다. 상큼하고 서늘한 바이칼의 얼음물이 식도(食道)를 타고 내장 (內臟) 깊숙하게 흘러내린다. 내장의 세포(細胞) 하나하나를 일깨우는 바이칼의 칼칼한 얼음물!

바이칼은 지구 최대의 민물호수다. 지구의 71%가 물이고, 29%가 육지라고 한다. 지구 물의 97%는 바닷물이고, 담수(淡水)는 고작 3%에 지나지 않는다. 그 3%의 물 가운데 20%의 물이 바이칼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시원(始源)을 바이칼에서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 방면에 문외한(門外漢)이어서 나는 바이칼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하되 태곳적 우리 조상들이 바이칼에서 존재와 이동을 시작했다면 나쁜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소감(所感)이다. 그것은 바이칼에 내재한 크고 너르고 넉넉하며, 거칠되 우아하고, 강력하되 부드러운 바이칼의 이중성에서 기원하리라 믿는다. 음양(陰陽)의 조화처럼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만물의 생성원리로 작용하는 대립(對立)과 항쟁(抗爭)의 기운이 한껏 느껴지는 한겨울의 바이칼!

오늘이 지나가면 바이칼과 작별해야 한다. 그러면 언제 다시 바이칼을 찾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청춘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노년의 시계추는 주저(躊躇)하지 않고 서둘러 나를 향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한 9박 10일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에 시작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 아닌가. “적절한 순간에 끝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명민(明敏)한 안톤 체호프는 `사랑에 관하여`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날 밤 우리 일행은 은성(殷盛)하고 화사(華奢)한 작별잔치를 벌였다. 보드카와 맥주와 압생트를 앞에 두고 크고 작은 웃음과 한탄과 노래와 춤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다시 오지 못할 동행의 시공(時空)과 관계를 떠올리며 서로의 미래를 축원(祝願)했다. 아주 많은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공유했던 그날들과 허다한 눈과 바람과 얼음장과 자작나무와 허허벌판과 을씨년스러운 정거장 풍경은 한사코 나의 손목을 잡아끌 것이다. `저 아늑하고 아련한 추억의 모퉁이로! 안녕, 바이칼이여! 한겨울 이르쿠츠크여! 그리고 올가와 아나스타샤의 러시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