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한 남성 작가가 초저녁에 전화를 받는다. “오늘 밤에 커피 한 잔 주실 수 있나요?” 여성이다. 굉장한 여성, 독일 총리 메르켈이다. 이윽고 작가와 총리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총리가 묻고 작가는 답한다. 토의도 이뤄진다. 몇 시간이 몇 분처럼 지나간다. 작가의 행운인가, 메르켈의 행운인가? 후자다. 풍부하게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퇴근 후 해당 지식인을 찾아가는 메르켈의 행운은 독일의 기운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포항시장 이강덕의 행운은 선거준비 기간이 아주 짧았던 것이다. 석 달? 두 달? 십여 년을 준비해온 아무개가 감옥 가는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시장이 못 되었다는 뒷말도 남았다. 하기야 그 준비라는 것이 포항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공부하고 미래를 통찰하는 노력이 아니라, 공천권을 거머쥔 국회의원에게 줄을 대고 손을 비비면서 경선에 대비한 조직이나 꾸려 몰래 `물`을 대주는 노력이 거의 전부이니, 어쨌든 이강덕에겐 이래저래 행운이 찾아왔던 모양이다.

지금 이강덕은 그 행운을 포항의 기운으로 창조하고 있는가? 나는 그와 대담(본지 2014년 9월 15일자)하느라 처음 만났고, 지난 25일 밤11시를 지나 우연히 신경주역에서 재회했다.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청암상 시상식에 다녀오는 시장, 역시 거기 참석하고 고(故) 황대봉 회장 빈소에 국화 한 송이 놓으려 부랴부랴 KTX를 탔던 작가.

시장은 작가에게 교통편을 묻지 않았으나 내가 차를 얻어 타자고 했다. 자정을 넘기지 않고 포항성모병원에 닿으려는 내 조바심 탓이었다. 포항남부경찰서 입구를 지나 나를 내려줄 때까지 30분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박태준`을 화제로 삼는 가운데 그가 “박근혜 대통령 시기라서 포스코 경영진이 박정희 대통령의 포철 공로를 말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즉각 내 목구멍까지 답이 차올랐다.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박태준 없는 포스코에서 경영진이 박정희의 공적을 떠받들 수 있었겠나? 김대중 대통령 초기에 김종필과 박태준이 그 좌우를 지킨 때는 정부가 `박정희대통령기념관건립예산`도 편성했지만 두 사람이 김대중과 결별한 뒤로야 어떠했겠나? 이명박 대통령 시기에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각을 세우고 있는데 감히 그럴 수 있었겠나? 박태준이 포스코를 떠났던 1993년 이후 20년 만에 비로소 정상화됐고, 앞으로 변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박태준은 죽는 날까지 박정희를 잊지 못했다는 점인데, 이건 알고 있나?

하지만 나는 말들을 삼킨 대신에 내가 프리미엄조선에 연재하는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을 꺼냈다. `신뢰`라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작가로서의 신념을 들려주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나온, 내가 쓴 <박태준> 평전의 한 대목을 외었다.

“박정희는 박태준의 순수하고 뜨거운 애국적 사명감만은 범할 수 없는 처녀성처럼 옹호했다. 정치권력 방면으로 기웃거리지 않고 당겨도 단호히 뿌리치는 박태준의 기개를 높이 보았다. 여기엔 한 인간과 한 인간, 한 사내와 한 사내로서 오직 둘만이 온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서로의 빛깔과 향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박정희와 박태준의 독특한 인간관계는 박태준이 자신의 리더십과 사명감을 신명나게 발현할 수 있는 양호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이강덕은 `박정희와 박태준의 완전한 신뢰관계`의 구체적 사실들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나 선물한 <박태준> 평전과 요즘 연재하는 글을 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한 그가 “박태준 정신, 경영철학, 리더십 등을 포항에서 문화 인프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난번에도 들었음을 알려줬다.

이강덕은 시장이 되는 과정의 행운을 포항의 기운으로 창조할 책무가 있다. 그러자면 지금쯤 메르켈을 잘 봐야겠다. `박태준 구상`만 해도 그렇다. 기획자가 먼저 `박태준`을 풍부하게 공부해야 한다. 나에게 만나자고 전화할 필요는 없다. 내가 선물한 그 책에, 내가 연재하는 그 글에 다 나와 있다. 진정한 겸손의 진정한 소통이 그 창조를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