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과 양극화 해소 - 사회적 경제에 길을 묻는다

▲ 국내 건설업계의 불합리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6일 포항에서 창립총회를 앞두고 있는 `근로자 협동조합`의 황하성(오른쪽) 대표이사와 남중영 감사.
▲ 돼지 사육농 7명으로 시작해 6차 산업 육성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독일 `슈베비시 할 농업인협동조합`이 농장에서 운영하고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모습.

자본주의는 왜 도전받고 있는가? 잉여생산의 과잉에 따른 공황이 세계화되고 있기 때문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시장의 기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변명도 있듯이. 그러면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주식회사는 왜 사회적 염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 유력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불안한 고용, 비인간적인 해고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주의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기업의 싸이클이 주식회사는 30년, 협동조합은 100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실패 영역에서 `스스로 우물을 파는 자`들의 절실함과 동기가 대안적 경제를 개척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국내 사회적 경제는 실업극복과 신 고용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 속에서 이름 뿐인 협동조합이 난립함으로써 조만간 심각한 구조조정의 시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는 특히 국내에서 사회적 경제의 기반이 상대적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구경북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시민사회계 활력 약한 대구경북 사회적 경제도 아직 취약
일용직 실익보호 목적 포항 `근로자협동조합` 창립 앞둬
연고로 묶인 지역사회는 내부갈등 취약 구조, 염두 둬야

■ 글 싣는 순서

① 사회적 경제, 불신과 과신의 극복에서
② 제2·제3의 해피브릿지를 꿈꾼다(국내)
③ 조합이 일궈낸 6차산업의 천국(독일)
④ 소방서에서 탄생한 노숙인 셰프(영국)
⑤ 사회적 경제를 지역의 기회로

□사회적 경제에 취약한 대구경북

사회적 경제의 기업 유형은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전국적인 실태와 비교하면 대구경북은 이 부문에서 열세가 뚜렷하다. 경북은 올해 10월 31일 기준으로 각각 174개, 89개, 203개 등 총 466개이다. 대구는 2013년 12월 기준으로 107개, 73개, 111개(10월말) 등 291개.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협동조합 설립 현황은 서울 30.2%, 경기 13.7%, 광주 8.6%, 전북과 부산시 6.3%이며 대구는 6위, 경북 전남 울산은 7위로 나타났다. 사회적 기업의 숫자가 지역의 경제 활성화나 건전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 기업의 창업이라는 점에서 이 분야의 활성화는 지역 시민사회의 자생력이나 활력을 나타내는 한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대구경북이 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배경은 지역 특유의 보수성으로 인해 시민사회계의 활력이 타 지역에 비해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시민사회단체가 활성화된 서울과 호남이 강세를 보이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부문의 전문가들에게 대구는 전임 시장이 `협동조합의 설립 현황에 대해서는 보고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질 만큼 취약한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협동조합을 좌파와 동일시 하는 국내의 뿌리 깊은 편견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국내 건설업계의 불합리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6일 포항에서 창립총회를 앞두고 있는 `근로자 협동조합`의 황하성(오른쪽) 대표이사와 남중영 감사.

□포항 `근로자협동조합`에 거는 기대

이처럼 취약한 사회적 경제의 기반에도 불구하고 후발지역으로서 선행 사례를 면밀히 검토할 경우 대구경북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는 더 크다.

포항에서 오는 6일 창립총회를 여는 `근로자협동조합`에 대한 기대는 이 때문이다.

이 조합은 국내에 이미 `건설근로자협동조합`이 결성돼 있지만 고용 알선 기능에 중심이 맞춰져 조합원들의 실익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추진됐다. 지난 10월 조합원 5명으로 시작한 조합에는 최근 들어 300여명의 가입 신청이 몰릴 정도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중심인 이 조합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직업소개소의 알선수수료로 인해 불이익을 받고 있는 현실을 타개할 목적으로 결성됐다.

황하성 대표이사는 “통상 1개월에 10~15일 일 하는 건설건로자들은 고용의 불안은 물론 평소 일이 없을 때는 음주나 도박 등으로 허송세월함으로써 가정 파탄 등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공사 수주 및 공동 노동, 이익 공유에서 나아가 조합원의 기능 기부로 소외계층 집 고쳐 주기 등 사회봉사활동 의무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합은 건설 현장이 활성화되는 내년 3월 이후에는 본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조직을 키운 뒤 전국 조직을 갖춰나가 `제2의 새마을운동`을 구현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포항은 이미 포스코가 출자해 결성한 `포스코휴먼스`에 이어 지난해 포항운하 개통에 맞춰 유람선을 운영하는 `포항크루즈`등 사회적 기업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제주도는 항공사들의 독과점 가격에 따른 이동 불편이 심각하고 특히 피서철 등 성수기에는 관광객들에 밀려 표를 구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심각해지자 `제주하늘버스협동조합`을 결성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출자금이 부족하자 화물을 수시로 보내야 하는 감귤농민과 어민, 농협과 수협은 물론 재경 출향인들도 참여했다. 이로 인해 서울-제주 왕복 항공요금은 서울-부산 고속버스 요금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섣부른 환상은 여전히 경계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경우 내부에 갈등이 생길 경우 미치는 영향이 작은 지역사회 일수록 더 커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구성원의 익명성이 큰 대도시에 비해 협동조합의 해체 등 갈등이 생길 경우 각종 연고로 결속된 지역사회에 더 큰 영향이 미친다는 것이다.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본부장은 “전통적으로 `동업하면 망한다`는 고정관념이 협동조합의 위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된다”면서 “조합에 대한 장밋빛 희망이 최근 들어 확산되고 있지만 불화가 생길 경우 지역사회에 큰 해악을 미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돼지 사육농 7명으로 시작해 6차 산업 육성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독일 `슈베비시 할 농업인협동조합`이 농장에서 운영하고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모습.

김성오 협동조합창업지원센터 이사장

협동조합 태동 배경은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 때문
사전준비 철저해야 생존

-`협동조합 전도사`로 불릴 만큼 일찍 이 분야에 주목했는데.

△1980년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의 경험이 90년대 초부터 사회적 경제 운동에 참여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992년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번역 출간해 한국 대중에게 처음 소개했으며 지난 2012년에는 이 조합의 20년 간 변화와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종합해 `몬드라곤의 기적`을 발간했다.

-협동조합이 왜 생겨나는지를 요약하면.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 때문이다. 아무리 잘 작동하더라도 실업 등 `시장 실패의 영역`이 생긴다. 재정과 효율성이 약한 정부가 감당할 수 없으니 이 영역에 있는 `아쉽고 절실한`사람들이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경제는 이 영역에서 작동한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조합은 이런 절실함이 작동했다. 과거에는 서민들이 치료 받을 수 없었던 스위스에서 이제 1차 진료기관의 60%는 협동조합 병원이다.

-조합 설립·운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평가한다면.

△시장경제와 사회적 경제는 결국 경쟁원리에서는 같다. 결국 기업으로 살아남아야 하기에 준비기간을 비롯해 사업계획이 주식회사나 개인기업보다 2~3배 더 철저하고 보수적이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도 문제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당장 100개를 설립하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관료들과 만날 때 마다 `10개나 제대로 키워라`고 쓴소리를 하니 항상 언성이 높아진다. 정부의 자신감을 과신하면 안 된다. 관(官)이 의욕으로 뭉친 조합 구성원을 순한 양으로 키우면 자생력은 없어지고 망한다. 그러니 조합이 결성되자 마자 활동이 흐지부지해진다. 신생 조합의 작동률을 높일 방안은 향후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협동조합의 창업과 경영에서 각별히 조언할 사항은.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금융·보험업을 제외하고는 이제 조합원 5명으로도 요건만 맞으면 신고필증만으로 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 의결권이 투자에 비례하는 주식회사에 비해 조합의 1인1표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신설된 5천여개 조합 중 규약을 제정한 경우는 3~5%에 불과하다. 조합은 법인화된 다자 간 동업이므로 규약이 중요하다. 국내 조합 내부의 잦은 다툼은 이 때문이다. 몬드라곤 조합원은 이를 철저히 공부한다. 그래서 `규약을 어긴 자는 지는 자`란 말이 있을 정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한국언론

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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