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을 가다
포항시 흥해읍 칠포리 마실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파도에 황금빛 꽃들이 몰려왔다 밀려가며 신생의 시간을 만든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정열과 믿음의 증표는 저 바다에 잠겨 고요하다. 스치고 간 여름날의 흔적이 모래 속에 잠겨 있다. 추억도 오래 묻혀 있으면 암각화로 남아 후세에 전해질까. 칠포 바다는 그저 말없이 낮은 숨결로 노래만 한다.

칠포 해수욕장 뒤편 곤륜산 자락에 들었다. 마땅한 주차장이 없어서 멸치 공장에 차를 부렸다. 조업한 멸치를 쪄서 말리는지 작업하느라 분주하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기피 업종엔 동남아 근로자가 있다. 우리나라도 1965년부터 1975년까지 언니, 오빠들이 간호사와 광산 근로자로 독일에 갔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그들도 작게는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이지만 크게는 자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다문화 시대에 맞게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었으면 좋겠다.

타임머신을 타고 3천 년 전, 칠포 마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항 흥해읍 칠포리 마실 암각화는 인근 7개 지역에 걸쳐 흩어져 있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 벽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을 새겨 그들의 생각이나 염원을 그린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제까지 발견된 암각화는 모두 물감을 사용하지 않은 새김 법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새김 법이란 흑요석이나 화강암, 석영 따위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돌이나 청동, 혹은 다른 견고한 도구를 사용하여 바위 표면을 쪼아내거나 파고, 갈고, 그어서 새기는 것을 일컫는다.

 

▲ 칠포리 암각화 우줌 바우.
▲ 칠포리 암각화 우줌 바우.

칠포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중요성이 입증되었다. 한 개의 문양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여자들이 볼 땐 실패 모양의 문양이 남자들의 눈엔 여체로 보이나 보다. 잠재해 있던 무의식이 드러나서 웃음이 나온다. 일행은 서로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펴며 행복해한다. 칠포 마실의 암각화는 방패나 실패 모양의 그림, 돌화살촉으로 보이는 세모 모양의 그림과 윷판, 별자리 등이 있다. 별자리 문양은 고대인들의 죽음과 탄생에 대한 관념을 반영하거나 무덤 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고인돌에는 유독 북두칠성 그림이 많다.

우리 민족은 하늘과 달과 북두칠성을 중시했다. 오행성의 수 5와 여기에 해와 달을 더한 수 7을 즐겨 사용했다. 옷을 재던 자에서도 5와 7이 번갈아 가며 눈금으로 사용된 걸 보면 몸에도 별을 두르고 싶었나 보다. 떡판에도 눈썹달 모양과 보름달, 별 모양이 새겨져 있다. 우리 민족은 별의 정기를 받아먹고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일곱 개의 별, 즉 칠성을 믿는 특이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북두칠성에서 세상으로 인간이 오고, 죽으면 다시 그 별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칠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고 복을 내리기도 하지만 목숨을 앗아가는 일도 한다.

고인돌 상석에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단군 이후 우리나라 역사상 북두칠성을 가장 숭상했던 나라는 고구려였다고 한다. 임금 스스로 자신을 북두칠성의 화신으로 생각하여 국강이라고 하였다고 하니 예사로이 넘길 별은 아니다. 조선 시대의 장례 풍습에서도 북두칠성 모양을 형상화한 칠성판을 볼 수 있다. 시신을 안치하는 칠성판이 그렇고 송장을 일곱 매듭으로 묶는 것 또한 칠성을 나타낸다고 한다.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민족만의 독특한 풍습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역시 북두칠성이 있는 자미원과 북두칠성을 호위하는 28수(宿) 별자리를 본떠 조경한 독창예술품이라고 한다.

북두칠성이 지닌 신비로운 전설은 다른 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라비아에 전해지는 전설이다. 아라비아에서는 국자 모양을 관으로 보는가 보다. 세 명의 딸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아버지는 어떤 남자에게 살해를 당했다. 세 딸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알고 있지만 무서운 남자여서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세 딸은 아버지 시신이 든 관을 끌고 범인의 집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원망만 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 장례식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범인도 우발적으로 살해는 했지만 차마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바로 북극성이다. 아라비아에서는 북극성을 살인의 별이라고 부른다.

노중평 선생은 어느 책에서 북두칠성은 항상 동북 간방에 떠서 서남 곤방으로 진다고 했다. “이 방위를 귀방(鬼方), 즉 귀신의 방위라고 한다.” 북두칠성이 이렇게 귀신의 길을 매일 한 번씩 지나간다는 것이다. “귀신의 길은 신명이 활동하는 길이다. 간방은 신명이 드러내놓고 활동을 하므로 표귀방(表鬼方)이라고 하고 곤방은 신명이 숨어서 활동하므로 이귀방(裏鬼方)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간방에 속해 있으므로 표귀방에 있다.” 북두칠성이 표귀방에서 떠서 이 귀방으로 지므로 한밤에 귀신이 나타났다가도 닭이 울면 사라진다고 하는 설화가 생겼나 보다.

흩어져 있는 암각화들을 보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줌바우는 꼭 봐야 하는데 좀체 찾을 수 없다. 그곳에 사는 주민에게 길을 물은 것이 잘못이었다. 자신의 마실에 그런 문화재는 없다고 하여 걸음을 돌렸다가 다시 와서 찾았다. 김유신의 누이 보희는 꿈에 선도산에서 오줌을 누었는데 서라벌이 다 잠겼다. 꿈 얘기를 들은 동생 문희는 그 꿈을 사서 문명왕후가 된다. 우리 일행도 깔깔거리며 오줌 누는 시늉을 했다. 왕비는 아니더라도 글 판에서 대어는 낚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 바우에서 오줌을 누면 칠포리가 잠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