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 창건 `화엄십찰` 중 최초 사찰
불연·귀부 등 역사 문화적 가치 커

▲ 신라 의상 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최초 사찰인 울진 불영사가 다양한 역사적 사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불영사 전경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인 불영사(佛影寺)가 우리나라 불교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실이 속속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 사찰은 당시 신라와 고구려간의 영토분쟁을 대비해 군사적(軍事的) 목적으로 창건된 것과,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는 불교 및 건축문화 등 다양한 역사적 사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찰을 비롯 의상대사가 주도한 화엄십찰(華嚴十刹)에 대해 현 시대에서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는 학계 요구도 있다.

불연, 조각 정교함 돋보이는 조선시대 最古 걸작
몸체·지붕 등 완벽 보존… 보물급으로 지정 필요
귀부를 건축물 하대석으로 활용한 부분도 독창적
연못 중심 반원형의 가람배치도 특이한 양식 꼽혀

경북 울진군 서면 불영사 길 48에 위치한 불영사(佛影寺).

이 사찰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원래 강원도 `월정사`에 소속된 절이었으나, 1963년 행정체계가 강원도에서 경북도로 이관되면서 불국사의 `말사`가 되었다.

651년(진덕왕 5) 해동화엄 초조(初祖) 의상(義湘)대사(625~702)가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天竺山)과 비슷해 `천축산`이라 하고, 전면의 큰 못에 있는 아홉 마리 용을 주문으로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서편에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그 그림자가 항상 못에 비친다 해 불영사(佛影寺)라 불렀다고 한다.

 

▲ 불연
▲ 불연

1397년(태조 6)에 화재로 타버린 것을 소운(小雲)이 중건하였는데, 그 후 다시 소실되어 1500년(연산군 6) 양성법사(養性法師)가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응진전(應眞殿)만은 피해를 면했다. 그 후 1609년(광해군 1) 진성법사(眞性法師)가 재건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승려들의 중수가 거듭되었다.

현재 당우로는 대웅보전·근락전·응진전·명부전·조사전·칠성각·관음전·영산전(靈山殿)·황화당(黃華堂)·설선당(說禪堂)·범종루·응향각(凝香閣)·칠령각(七靈閣) 등이 있고, 창건 당시의 유적인 무영탑(無影塔)과 돌거북 2기가 있다.

최근 불영사 측이 개최한 `불영사의 역사와 문화`란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불영사에 있는 불연(佛輦·부처님과 관련된 것을 모시는 가마)이 조선시대 유물로는 가장 완벽하게 보존됐다는 사실이다.

1670년대 에 제작된 불연은 나무 재질로 127.5X312X59.9cm 크기로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87호다.

이 불연은 두점의 불연 가운데 상태가 그나마 양호한 편으로서, 연(輦)을 드는 가마채와 배대, 몸체, 지붕의 세부분이 잘 남아 있다. 312cm에 이르는 긴 길이에 끼워진 4개의 가마채에는 그 끝부분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가 조각되었다.가마채 중앙에 단을 두어 그 위로 난간을 조각한 가마형의 몸체를 올리고, 위로 중앙부가 높게 솟은 지붕이 덮혀있다. 특히 이 불연에서 난간과 벽체의 나무를 연결하는 경첩의 역할을 한 십자형의 금속장식이 여러 군데 사용되어 눈에 띤다.

 

▲ 귀부
▲ 귀부

새롭게 발견된 사실은 이 불연의 받침대 밑에 주칠을 한 바탕 위에 황색으로 종선(縱線)을 일정한 구획으로 그은 후 그 안에 정연한 해서(諧書)로 조연기(造輦記)를 역시 황색으로 썼는데, 글씨체가 단정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이 불연 명문에서 파악되는 중요한 사실은 당시에 불연(佛輦)을 봉연(鳳輦)라 한 명칭한 점과 용도면에서 법회를 여는 때에 수많은 부처들이 올라앉아 궁전으로 내임(來臨)하고자 하는 기록된 내용이다.

또한, 이 불연에는 둥구런 명월과 같은 거울이 앞뒤로 걸려있고, 제작연도와 제작자를 총괄한 스님 이름, 울산에서 거주하는 신도들이 제작에 시주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불영사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울산지역에서 많은 불사에 참여한 것이 확인된다.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찰에 남아있는 불연이 대부분 조선 후기의 것인데, 이 불영사의 것은 현재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중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이 불연 제작과 관련된 과정과 시주자, 정확한 조성시기까지 기록되었을 뿐아니라 목조 조각의 섬세함과 금속제 장식 등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조선시대 불연의 걸작이고. `보물급`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운봉문(雲鳳文) 동경(銅鏡)은 지름 22.3cm,두께 4cm인데, 폭이 조금 넓은 외연이 둘러진 원형경으로 용도가 거울이 아닌 불연의 장식용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광명(光明)을 상징한다. 불영사는 또 불교 건축, 특히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 양식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찰이다.

불영사는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하기전 창건한 화엄십찰 중 최초 사찰이고 그의 나이 26세 때다. 나머지 사찰은 그가 당에서 귀국한 후 창건했다. 따라서 의상의 화엄십찰 창건 변화의 출발점이 불영사고, 가람배치를 통해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이 사찰의 가람배치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근거로 불영사는 초창 이후 고려시대까지 사역의 변화사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 사역도 중앙 연못을 중심으로 반원형 모양으로 전각이 배치되어 일반적인 사찰의 가람배치 형식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이러한 이유로 기존 학계에서는 불영사가 오랜 역사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화엄십찰의 입지는 모두 산지에 위치해 있으며, 당시 수도인 서라벌과 멀리 떨어진 지역을 이어주는 `중심교통로` 선상에 창건됐다.이러한 선상에서 볼 때 불영사는 신라와 고구려의 북쪽 경계지점인 강릉지역으로 이동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했던 장소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불영사 계곡 동쪽으로 펼쳐지는 태백산 영주 일대로 신라 북방 경계지역의 방어선상에 있는 사실은 불영사의 입지 선정이 우연의 결과가 아닌 신라의 동쪽 북방 경계 선상의 중요 지점으로 창건된 의미도 있다.

특히 조선 후기에 건립된 대웅보전 하단의 기단 하부에 있는 귀부(趺)는 국내에서 유사한 사례가 없는 독창적인 예이다.

한국에서 귀부를 가장 먼저 사용된 예는 경주 무열왕릉 귀부가 최초이고, 이후 서악동, 사천왕사 순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귀부는 `사적비` 또는 `고승`을 기리기 위해 탑비의 대좌로 제작됐지만,불영사 귀부는 건축물의 기단 `하대석`으로 활용된 부분이 연구과제다.

 

▲ 조선시대 수조각승인 상륜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응진전 삼세불.
▲ 조선시대 수조각승인 상륜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응진전 삼세불.

오세덕 박사(동국대 경주박물관)는 “사찰이 불에 취약한 목조건물이다 보니 불을 막기 위한 벽사의 의미로 귀부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영사내 대웅보전은 화려한 천장의 구성 이외에도 용과 봉황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대웅보전에서 나타나는 장엄한 요소는 1714년 제작된 통도사 대웅보전의 내부 장엄의 포대공과 화반,용두 등에서 동일한 표현법이 확인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불영사 내에 봉안되어 있는 응진전의 삼세불상 및 십육나한상이 1677년 수조각승(手彫刻僧) 상륜(尙倫)을 비롯 승호파(勝湖派) 조각승들이 조성한 사실이 밝혀졌다.또 명부전의 지장삼존상 및 시왕상은 같은 수조각승인 상륜과 승호파에 의해 1688년에 조성된 것이 확인됐다. 또한 발원문이나 조성기가 조사되지 않은 황화실의 관음보살상도 양식상 상륜에 의한 조성이었다고 추정된다.

동국대 송은석 교수는 “불영사 극락전의 삼존상은 원래 석가삼존상이며 1704년 단응·탁밀파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판단되었다.의상전의 의상대사상은 양식상 승호파의 유사성은 있지만, 상륜의 작풍과는 차이가 있어서 수조각승을 특정하지는 못하였고, 승호파와 연관성만 지적되었다”고 말했다.

`화엄십찰`이란 의상이 창건한 10개 사찰로,삼국유사에는 태백산 부석사,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남악산 화엄사 등의 6개만 기록되어 있으나, 최치원이 찬한 법장화상전에 원주 비마라사가 빠진 대신 서산 보원사,계룡산 갑사, 창담사, 화산사, 보광사, 미리사가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