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가을여행 5選 ⑶영양

▲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문향(文鄕)의 고장 영양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문향(文鄕)의 고장 영양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수려한 자연 경관과 함께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영양은 요즘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일월산의 붉은 단풍만큼이나 빨간 영양고추를 햇볕에 말리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진 문향(文鄕)의 고장 영양은 사계절 모두 나름의 멋이 있지만 단풍이 산하를 물들이는 이맘때가 1년 중 가장 아름답다. 주말 가족과 함께 낙엽을 밟으며 문학으로의 기행을 떠나보는 것도 이 계절이 가장 어울린다. 가을햇살이 가득한 마당 위 멍석에 빨간 고추가 투명한 빛으로 꿈을 꾸는 곳, 제법 이름난 문인들이 태어나고 자란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 영양은 때 묻지 않은 소박함이 사랑스러운 그런 고장이다.


詩心 절로 묻어나는 계절
文鄕으로 가을 문학기행 가볼만


여행에는 여러가지 묘미가 있기 마련이다.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거운 여행이 있는가 하면 풍성한 먹거리로 입이 행복한 여행도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통해 입과 눈이 호사를 누리는 것도 좋겠지만 한층 성숙된 자아를 발견하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북 동북부에 자리 잡은 영양군엔 시인 오일도와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생가와 현대문학의 거장 이문열씨가 집필을 하는 작업실이 있어 이 세 곳만 들러 보는 것으로도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을 하기에 자격이 충분하다.

▲ 삶과 고독, 비애를 노래한 오일도 시인 동상과 시비.
▲ 삶과 고독, 비애를 노래한 오일도 시인 동상과 시비.
□오일도와 감천마을

오일도 시인(1901~1946 본명은 희병)의 생가를 찾으려면 영양읍 감천마을로 가면 된다. 감천마을은 낙안 오씨들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마을 입구 31번 국도변에는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생가 앞 하천 절벽에는 천연기념물 114호인 측백수림이 군락을 이루면서 자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애국시인 일도(一島) 오희병(吳熙秉·1901~1946)은 `노변의 애가` `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시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는 삶의 고독과 비애이다. 그는 호(일도)처럼 늘 자신을 외로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외로움과 비애의 정서는 모든 시에 배어 있다. 그는 작품활동 보다는 순수한 시 전문잡지인 `시원`을 창간해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한 시사적 의미를 지닌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감천마을은 허리춤에 오는 낮은 토담길이 정겨운 동네로 이 마을 안쪽에 조부 오시동이 고종1년(1864년)에 건축한 시인의 생가가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정침과 대문채가 ㅁ자형을 이루는 경북 북부지역 전형적인 양반집으로 대문채엔 `국운헌(菊雲軒)`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작은 시골동네를 휙 둘러보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토담 너머로 흘겨보는 시골집의 마당 풍경엔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서 놀던 기억의 편린을 읽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잘 익은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 위 온 몸을 맡기고 책을 읽는 시인의 동상 옆에 앉아 암울했던 시절 시인의 정신세계를 잠시 더듬다 보면 엄혹한 일제시대를 살면서도 고매한 정신과 올곧은 절개를 잃지 않은 시인의 대쪽 같은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 조지훈 생가와 전통가옥 등이 잘 보존돼 있는 주실마을에서 조지훈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 조지훈 생가와 전통가옥 등이 잘 보존돼 있는 주실마을에서 조지훈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조지훈과 주실마을

영양읍에서 일월산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간 주실마을은 조지훈 시인의 생가가 있는 한양 조씨 집성마을로 수많은 박사와 교수를 배출한 곳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며 마을 입구에는 `빛을 찾아가는 길`이라 새겨진 조지훈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 곳곳에는 종가인 옥천종택(玉川宗宅)과 조지훈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을 비롯한 많은 고가들이 여전히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등 전통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이곳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이자 국문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동탁(東卓·본명) 조지훈은 1968년 5월, 48세의 짧은 생을 마칠 때까지 일제 강점하 그리고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시대에 절반씩 살며 저항과 지조로 일관한 선비였다. 박두진·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인 그도 항일의 피를 이어받았다. 시인 신경림은 책 `시인을 찾아서`에서 조지훈에 대해 `멋과 지조의 시인`이라고 했다.

한양 조씨 집성촌인 주실마을 복판에 자리잡은 `호은종택`으로 불리는 조지훈의 생가를 찬찬히 둘러보면 시인이 멋과 지조의 시인이 된 연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주실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풍수적 특성을 갖고 있다. 야트막한 뒷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마을 앞 봄의 기운을 한껏 품고 있는 너른 들 사이로 시냇물이 흐른다.

마을 초입에 있는 `지훈문학관`은 그의 청년시절부터 일제식민정책을 통곡하며 절필한 사연, 광복 후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로 불리면 활동한 일대기가 잘 정리돼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시인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작은 계곡을 따라 오르도록 돼 있는 시공원에는 조지훈의 동상과 시 27편이 돌에 새겨져 있으며 교과서에 실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시 `승무`옆에는 춤을 추는 동상도 있다. 한들거리는 봄바람 속에서 그의 시를 하나하나 읽으며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시인의 꼿꼿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외에도 월록서당, 시인의 숲, 지훈시공원 등 볼거리도 즐비하다.

▲ 영양군이 개최한 세계유교음식페스티벌에서 이문열 작가가 특강을 하고 있다.
▲ 영양군이 개최한 세계유교음식페스티벌에서 이문열 작가가 특강을 하고 있다.

□이문열과 두들마을

영양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있는 현대문학의 거장 소설가 이문열도 영양인이다. 그가 태어난 석보면 원리리는 두들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이문열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 이원철이 홀로 월북한 후 어머니 조남현의 슬하에서 5남매가 안동 등지를 떠돌아다니며 어렵게 살았다. 초등학교 졸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정고시이며 이후 안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며 1970년에는 사법시험을 본다며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중퇴 했으나 여러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법시험에 실패한 뒤 1976년 결혼과 동시에 군에 입대했다. 그의 이런 생활이 기초가 돼 자전적 소설인 `젊은날의 초상`을 쓰게 된다. 특히 이곳 두들마을은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역정의 시절과 겹을 이루며 개인의 지적 모험을 소설로 표현한 거장 이문열의 마음의 고향이며 작품 `선택``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금시조`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가 살았던 옛집과 문학연구소인 광산문우(문학연구소)에는 젊은 학도와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자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등 자신의 집필 및 문학체험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들마을은 `언덕 위의 마을`이란 뜻의 순 우리말로 이름부터 정감이 넘친다. 강을 끼고 깎아지른 절벽이 마을을 떠받치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석계 이시명(李時明·1590~1674)이 1640년에 들어와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스스로 `석계`(石溪)라 했으며 그의 후손 재령 이씨의 집성촌이다. 석계고택(경북도 민속자료 제91호)과 석천서당(경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유우당(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85호), 주곡고택(경북도 민속자료 제114호) 등 30여 채의 고택이 있다.

특히 이곳 두들마을에는 `여중군자(女中君子)`로 불리는 장계향(1598~1680)의 삶을 재조명해 한국여성의 새로운 상을 세우기 위해 경북도의 3대 문화권 전략사업의 하나인 영양 음식디미방이 있는 곳으로 2017년까지 268억원이 투입되는 등 전시관람시설인 체험관과 문화체험관를 갖추고 전통음식 아카데미가 운영될 예정이다.

영양/장유수기자 jang777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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