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설화가 스며 있는 섶들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빠알간 옷으로 단장한 고추가 가을 낮잠을 즐기고 있다. 넓은 주차장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은 느티나무 밑에 앉아 아들, 딸 자랑을 하다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얘기로 가을 볕에 얼굴 타는 줄도 모른다. “송일국 아 왜 그……누구제? 차만 보면 날리지기는 아. 있자나 밍국인가?” “아이다, 니가 말하는 아는 만센기라” 서로가 좋아하는 애들 얘기에 웃음꽃이 핀다. “고곳들 나올 시간되면, 요 안잤다가도 텔레비 볼라고 얼릉 들어가지요.”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얘기 같다. 숫기 없는 코스모스는 끼어들지 못하고 연신 고개만 끄덕인다. 들깨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 온다. 뉘 집에서 타작을 하는가 보다. “부산성 가려는데 여기서 얼마나 가야 하나요.” “요길로 쪽 올라가면 되요.” “차는 올라갈 수 없나요.” “차 가지고 유학사 절 아패다 대노고 걸어가요”

차마 `여근곡`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부산성 방향을 물었다. 어차피 가는 방향은 같기에. 아주머니의 말대로 `요길`로 쪽 올라가 본다. 여근곡 가는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이다. 앞에서 차라도 올까봐 간이 졸아 들었다.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다가 혼이 날 뻔 했다. 막상 올라가니 주차할 곳도 없다. 출입금지 팻말을 무시하고 유학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절 마당은 텅 비어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등산객이 없다. 혼자 산을 오르기도 뭣해서 절 앞에서 서성거렸다. 마침 부부가 오기에 얼른 따라 붙었다.

경주시 서면 신평 2리 마실은 `섶들`, `숨들`로 불렸었다. 아마도 `여근곡`이 있는 마실이라 그렇게 불렸지 싶다. 백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조된 부산성에 올랐다. “간 봄을 그리워함에/ 모든 것이 서러워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이 주름살을 지으려고 하는구나/ 눈 깜박할 사이에/ 만나 뵈올 기회를 지으리이다./ 낭이여, 그리운 마음의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인들 있으리이까.” 죽어서나마 죽지랑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득오의 탄식이 새어 나오는 듯하다. 선덕여왕 최후의 장면과 동이의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척살되었던 촬영 장소인 마당바위다. 아래로 넓게 펼쳐진 고랭지 채소밭이 보인다. 허무의 바다 같다.

오봉산에 볼록 솟아 있는 작은 봉우리가 여근곡이다. 전체 모양을 둥글게 싼 부분은 소나무 숲으로 덮여 있고, 그 안쪽은 관목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빽빽한 관목 숲 가운데 샘이 있다. 이 샘은 지금 마실 상수도의 수원지이다. 이 샘을 작대기로 쑤시고 휘저으면 동네 처녀들이 바람난다고 믿었다. 타동네 총각들이 이 동네 처녀들의 바람기를 부추기기 위해 몰래 이 골짜기에 들어와 작대기로 휘저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진다. 마실 사람들은 이 곳을 성역으로 생각하고 나무를 베거나 오물을 버릴 수 없고 잡인의 출입도 금했다.

 

▲ 볼록 솟아 있는 작은 봉우리가 여근을 닮았다 하여 여근곡이라 한다.
▲ 볼록 솟아 있는 작은 봉우리가 여근을 닮았다 하여 여근곡이라 한다.

백제군이 여근곡 인근인 건천 땅에만 오면 이상하게도 힘을 쓰지 못한 것과 한국전쟁 때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인민군이 경주를 점령하지 못한 것은 여근곡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이 근처 산에 큰 불이 난 적도 있었는데 여근곡만 불길을 피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여근 모양의 지형을 명당이거나 흉한 자리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산세가 사람이 다리를 벌린 모습이면 흉한 곳이며, 정숙하게 오므린 모습이면 명당이라고 한다. 흉한 산세 아래에는 여자들이 바람기가 거세지고 남자들은 양기가 위축된다고 믿었다. 지금은 마실 앞 여근곡이 바로 보이는 곳에 국도, 철도, 고속도로가 나있다. 조선조에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재수가 없다고 하여 이 근처를 지날 때는 고개를 돌리고 지나갔다. 새로 부임하는 관리들이나 싸움터에 나가는 장수들도 일부러 멀리 안강 쪽으로 돌아 경주나 그 밖의 임지나 전쟁터로 갔다고 한다.

이 마실 주민들은 `여근곡` 반대쪽에 마주보는 산을 `남성 산`으로 설정하고 남근을 세웠다. 지나가던 소금 장수가 그 모습을 보고는 호통을 치며 막대기로 그 돌출한 부분을 내리쳤다. 너무 세게 쳐서 돌출 부분이 잘린 채 앞산에 주저앉고 말았다고 하는 전설이 흐른다. 현재 철도와 고속도로 중간에 길게 누운 언덕이 그때 잘린 남근이라고 한다.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機三事)중 하나인 `여근곡` 설화다. 선덕여왕 5년 때의 일이다. 영묘사 옥문지에 한겨울에도 개구리들이 사나흘 시끄럽게 울어대는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흉조라 여겨 왕에게 아뢰니, 왕은 알천과 필탄에게 병사를 이끌고 서쪽 외곽의 여근곡에 적군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곳에는 여왕이 일러준 대로 백제 군사 500여명이 숨어 있었고, 모두 소탕하게 되었다.

신기하게 생각한 신하들이 여왕께 여쭙게 되었는데, 여왕이 대답하기를 “개구리가 성난 모습으로 울어대는 것은 병사의 형상이고, 옥문지 근처에서 울어댔으니, 옥문은 여자의 음부를 말하는 것으로 `여근곡`을 가리킨다.

여자는 음(陰)이니 숨어 있는 것을 말하며 음은 그 색깔이 백색이고 백색은 서방이므로 군사는 서쪽에 있음을 알 수가 있었오.” 선덕여왕의 지혜에 모두 감탄하였다고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선덕여왕은 지형과 지세를 살펴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던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등이 흥건히 젖었다. 오랜만에 올라본 산행이라 그러하리라. 가을 서정을 담을 가슴이 하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남자의 가슴도 가을엔 애연해 지는가. 아라리는 너 탓도 내 탓도 아닌 가을바람 탓이로다. 달리고 달렸던 삶이 자연 앞에 무의미해진다. 고개 숙인 벼 이삭의 목덜미를 쓸어준다. 가을 들녘에서 바라보는 황혼은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