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람
필리핀 출신 황릴리벳 씨

▲ 포항지역 결혼이주여성의 대모로 불리는 황릴리벳 씨.

필리핀 출신 한국인으로서 포항지역 결혼이주여성의 올바른 한국사회 적응을 돕고 있는 이가 있어 화제다.

고민상담사 역할 `톡톡`
고국가족 아프거나 사망땐
회원들이 모은 돈으로 지원
지역 이주여성 대모로 불려

주인공은 10여년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인 남편과 결혼에 골인, 이제는 한국인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황릴리벳(45·여·포항시 남구 연일읍)씨.

필리핀에서 사업체를 운영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지난 2000년 국내유명기업인 S기업의 직원으로 입사해 한국땅을 처음 밟았다. 당시 서울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필리핀과는 너무도 다른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한국기업에서 2년간 근무한 뒤 퇴사한 그녀는 힘든 한국생활을 이어갈지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 것인지 여부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람이 바로 현재 남편인 황상철(53)씨.

“그때만해도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고, 부모님도 국제결혼은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고 해 남편을 결혼상대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과 만난 후 며칠 뒤 그녀가 급성맹장염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생각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입원소식을 접한 남편 황상철씨가 하고 있던 일을 모두 제쳐두고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의 곁을 지켜준 것.

황릴리벳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가족도 친구도 하나 없는 타국에서 몸이 아픈 것만큼 외롭고 힘든 순간이 없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다해 병간호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이 남자와 결혼하면 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 그녀는 남편이 살고 있는 포항으로 와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생활 8년만인 지난 2008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어엿한 한국인이 됐다.

특히 지난 2005년부터는 포항 죽도성당 내 다문화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회장을 맡아 결혼이주여성들의 대모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황씨는 “몇년 전 한 필리핀 여성이 고국에 있던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났음에도 비행기표를 살 돈이 없어 슬픔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며 결혼이주여성 모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며 “이제는 모임이 매우 활성화 돼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아프거나 사망했을 경우 회원들이 모은 돈으로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문화차이로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여성들의 고민상담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 이주한 여성들 중 대부분이 국제결혼소개소에서 처음 본 남성과 성급하게 결혼을 결정해 결혼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같은 선택은 어느 누구의 강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결혼이주여성 본인의 선택으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이뤄진 성급한 결정도 결국 자신이 한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음에는 한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 남편은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씨를 몸소 보여줬다”며 “이제는 당당한 한국인 `아줌마`로 남은 여생을 알차고 보람있게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