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요즘 한국에는 `적`인 듯 느껴지나 적이 아니어야 하고 적이 아니기도 한 상대가 최소 둘이다. 북한과 일본이다. 한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으며 상황을 두루 살펴볼 때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북한은 우리 겨레로서 평화통일의 파트너이니 궁극에는 사이좋은 형제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어느 면으로 따지든 서로 좋게 지내야하는 이웃나라이니 적이 되어서도 안 되고 적으로 삼아서도 안된다.

그러나 `박근혜 외교`에게 평양 정권은 현실적으로 적과 다름없어 보이고 도쿄 정권은 정서적으로 적과 다름없어 보인다. `박근혜 외교`는 아마도 `원칙`이 제일 장점일 것이다. 특히 그것은 `개성공단 정상화 힘겨루기`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발리 APEC정상회의 때 아베를 외면한 것도 국민정서상 괜찮은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무릇 장점은 단점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고대 인도의 경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죽음의 신(神)이 “죽음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놓게 하고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던 그 가르침에 기댄다면, 인간의 성격에서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박근혜 외교`의 그 원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뛰어난 장점이라 해도 원칙이 지나치면 유연성과 상상력이 빈약해지기 마련이다. 유연성과 상상력이 빈약하면 `적`과의 외교에서 심각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덕담외교, 통상외교, 경협외교, 동맹(안보)외교 등은 모두 `적`이 아닌 `친구`와의 관계다. 그동안 `박근혜 외교`는 친구와의 관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집권 후반기를 앞둔 `박근혜 외교`는 장점이 단점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 14일 한국 외교장관과 주한 일본대사가 18개월 만에, 그나마 행사장에서 인사하는 사진이 일간지 머리를 장식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대화 예고로 들리기도 하고 `장점이 단점으로 미끄러질 경계지점`에 이르렀다는 경종으로 들리기도 했다. 재임 중 평양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났던(2000년) 미국 최초 여성 국무장관 매를린 올브라이트, 이 비범하고 대범한 여성은 이렇게 일갈했다. “평화란 친구가 아닌 적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외교란 적과 대화하는 일이다.” 지금쯤 `박근혜 외교`가 곰곰이 헤아려야 할 말이 아닐까?

중국 시진핑에게도 엿볼 것이 있다. 시진핑은 일본 아베와 늘 으르렁거린다. 전쟁불사도 외쳤다. 대문을 꽁꽁 잠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샛길로 나가는 뒷문을 열어뒀다. 비밀리 특사를 아베에게 보냈고, 베이징에서 직접 후쿠다 전 일본 총리와 만나 화해를 의논했고, 외교부장이 미얀마에서 일본 외무상과 만나게 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세월호 특별법`이 꼬였든 풀리든 드디어 `박근혜 외교`가 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적(평양 정권), 적이 아닌 적(도쿄 정권)과의 관계에서 `대화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뒷문의 샛길도 쓰며 대로(大路)로 나가야 한다. 국가이익, 국민행복이라는 대의(大義)가 `박근혜 외교`의 원칙에 유연성과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상대를 탓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국민의 귀에 `장점이 단점으로 미끄러진다는 경고음`으로 들릴 것이다.

다행히 무대는 마련된다. 장날로 말하면 한가위 대목장보다 더 큰 장터가 마련된다. 뉴욕의 유엔. 오는 23일부터 반기문 사무총장이 주관하는 `유엔기후정상회의`가 유엔에서 열린다. 193개 회원국 정상들이 여러 수행원들과 참석한다. 기후라는 주제를 초월한 대규모 정상회의와 외교 각축장인지 모른다.

아주 오랜만에 북한의 외무상(리수용)이 유엔에 등장한다. 아베 총리와 외무상이 부지런히 움직일 테고,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장관의 일정도 빡빡할 것이다. 부디 이번 기회는 `박근혜 외교`가 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적, 적이 아닌 적과의 대화를 시작하여 평화의 대로로 나가는 길목이 되기를, 나는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