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제도 가운데 교황제는 유일하게 2천년 가까이 유지돼 왔다. 교황은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자 교회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적지도자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각 언론에서는 한국서 100시간 동안 머물면서 100년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100년의 감동이 아니라 영원한 감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왜 우리들은 이처럼 감동할까? 답은 간단하다. 교황이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더라도, 이미 우리 가정을 지키고 있는 아버지들의 가슴속에는 교황과 같은 마음이 깊이 자리 잡고 왔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을 따름일 뿐, 우리에게 스스로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보낸 안타까움에 야위고 야윈 아버지들의 얼굴을 보아왔고, 비록 자신의 자식은 아닐지라도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는 우리들의 아버지를 보아 왔으며, 이제 맡은 바 일터에서 자식을 위해 헌신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버지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헛기침을 했을지언정 언제나 낮고 낮은 곳을 향하며 자식들을 위해 존재했던 사람이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였고 오늘의 아버지가 아니던가.

묘하게 이름마저도 같다. 교황의 일반적인 호칭이 파파(Papa)다. 스웨덴어로도 아버지는 파파(Pappa)고 이탈리아어로도 아버지는 파파(Papa)다. 유럽뿐만 아니라 이제 어느 곳이던 파파라면 아버지를 부르는 것으로 통용된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교황이 남긴 기도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교황은 한국의 고도성장에서 파생되는 그늘과 상처를 어루만졌다. 약자와 가난한자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를 강조한 것이다. 새로운 가난을 야기하는 경제모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새로운 경제모델을 거부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파생되는 패자들의 처참한 부작용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두가 한 몸이 되어 함께 나아가는 사회, 급기야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세계로까지 확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제를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믹은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 에서 유래한다.`가계 경영`이란 뜻을 담고 있는 이 단어는 주어진 여건 하에서 가족구성원이 희망을 가지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자체를 경제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가정을 생각해 본다면 아버지는 경제 지휘봉을 잡고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가정을 이끌어 간다. 아버지를 필두로 가족의 각 구성원들은 맡은 바 최선을 다한 수입으로 가정이 유지된다. 그 수입은 가계 예산이 되기도 하며 거기에 맞춰 살림을 꾸려간다. 예산보다 많이 쓰면 적자가 될 것이고 반대는 흑자가 되어 예금을 하면서 살아가는 여유 있는 상황을 맞게 된다. 아직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어린학생에게는 흑자든 적자든 미래를 위해 기꺼이 교육비를 지출한다. 미래를 위한 교육투자다. 벌어들이는 것도 좋지만 잘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족 구성원 중 누가 불의의 변을 당하거나 아프면 비용이 소요된다고 내 팽개치겠는가. 이들은 소위 가족구성원 중의 약자에 해당한다. 아버지를 포함해 가족 구성원은 필사적으로 도우고 보살펴 준다. 언젠가는 다시 건강하고 행복한 그리고 생산성 있는 가족 구성원이 될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정의 안전망이고 확대하면 사회안전망이 되는 것이다. 우리네 어버이들은 이처럼 경제와 경영의 달인으로 살아왔다.

이런 가정이 모여서 지역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고 결국 국가의 합이 지구촌이 되는 것이다. 지구촌의 약자를 배려하는 교황의 마음이나 어버이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많은 가능성은 열려있다. 교황이나 우리 아버지들은 이미 경제의 달인이요, 국가경영의 달인이다. 다만 거기에 정치만 왜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