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

`푸틴의 식탁`에 당분간 유럽산 채소와 과일 그리고 미국산 닭고기가 사라질 전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개인과 법인에 제재를 가했거나 동참한 국가에서 생산된 농수산물과 유제품의 수입을 당분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조처는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과 관련해 러시아를 압박하자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바 식품전쟁의 선전포고와도 같은 농산물분쟁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번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미국과 유럽 사이의 농축산물 분쟁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유럽 사이에 있었던 육류 분쟁이다. 유럽은 틈만 나면 성장촉진제가 투여된 미국의 육류를 정상적인 육류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성장촉진제가 투여된 미국산 육류는 호르몬 투여가 엄격히 통제된 유럽산 육류와는 완전히 차별되므로 수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비교적 높은 유럽소비자들의 환경마인드를 들먹이며 미국을 압박해 갔다. 유럽의 농업은 규모면에서 우리나라의 농업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갖은 트집을 잡아가며 미국으로부터 농업 시장을 가능한 사수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들이 전략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유럽이 성장촉진제가 투여된 미국산 육류를 두고 완전히 엉뚱한 생트집을 부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고도의 협상 전략을 깔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과는 이미 FTA협상을 끝냈지만 앞으로도 많은 나라들과 협상을 벌여야 하는 우리들이다. 시장 개방 압력은 협상품목의 동류성(homogenous)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다. 물론 동류성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곧 협상의 능력으로 이어지는 전략의 문제로 연결된다. 유럽은 육류 시장을 개방했지만 육류가 아닌 것(성장촉진제가 투여됐음으로 정상적인 육류가 아니라는 논리)은 수입할 수 없다는 당연한 논리를 편다. 인체에 해가 되는 육류는 육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은 성장호르몬이 투여된 육류가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을 증명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연구 자료를 축척하고 있다. 물론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성장호르몬이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는 연구 자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해 간다.

그러니 싸움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로 합의를 보다가도 어느 날 심기가 불편하면 불쑥 내미는 유럽연합의 연속성 있는 협상 전략이다. 성장촉진제가 투여된 육류가 인체에 전혀 무해할 수는 없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도 내밀어 보인다. 성장촉진제가 투여된 미국산 육류를 육류로 보지 않겠다는 이 태도는 우리로서는 정말 부러운 오리발이다. 시장 개방에 있어서 시간도 벌 수 있고, 다른 협상에서 또 다른 양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도 직간접적으로 가세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정말로 얄미운 노릇이겠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쌀관세화가 결정되면서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쌀관세화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및 2004년 쌀협상 결과에 따른 것이다. 수출 강국에 속하는 우리나라이기에 상황에 따라 풀고 싶지 않은 시장도 어쩔 수 없이 풀어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른 소득보전이나 경쟁력 키우기는 어떤 나라이든 부닥치는 문제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다.

시장개방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제시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시장을 개방하면 국내 생산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생산자 소비자 모두의 후생이 증가했다는 사례가 적잖다는 것이다. 자유경쟁이 이뤄지는 만큼 그에 따른 경쟁력이 증대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농산물시장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기대하지는 쉽지 않다. 농가 피해대책과 함께 산업으로 키우는 대책이 당연히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개방화시대에 어쩔 수 없이 개방해야 할 시장일지라도 주고받아야 할 고도의 협상전략은 생략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