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계간 문예지 `ASIA`발행인

염천 무더위에 북한 정권은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대는 재미에 빠진 듯하다. 그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평양의 누군가가 `6자회담? 좋아하네`라며 비웃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그럴 만도 하다. 미국과 중국이 마치 먼지를 덮어쓴 게임도구를 가끔 건드려보듯이 `6자회담 재개`를 `편리한 외교적 수사(修辭)`로 써먹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6자회담이 언제부터인가 있으나마나 `국제회담`으로 전락했다고 여긴다.

6자회담은 그 명칭에 명시된 목적부터가 틀려먹은 것이라는 내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 다자(多者)회담, 이것이 이른바 6자회담이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의 차관급이 실무대표로 참여한다. 1차 회의는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그때 한국은 출범 6개월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의욕에 충만해 있었다. 대통령 탄핵은 이듬해 봄날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상상력의 빈곤이었을까. 국제적 이해관계의 덫에 걸렸을까. 그래서 말문이 막혔던 것이었을까? 한국은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을 위한`이라는 목적을 명시한 명칭에 동의했다. 마지못해 동의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6자회담` 앞에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이라는 목적을 붙였어야 `옳은 것`이고 `좋은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럴 경우에는 북한과 미국만 마주앉아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보겠다는 북한의 전술에 말려드는 것 아니냐? 휴전협정에는 한국이 없고 러시아와 일본도 서명하지 않았으니 6자 중 3자는 그 회담 참여에 대한 자격미달이 아니냐? 이러한 반문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평화체제`의 하위개념과 하위수단의 목록들 중에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의 비핵화`도 사실은 남북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하위개념과 하위수단에 위치해야 합당한 것이다.

그런데 2007년 여름 베이징의 4차 6자회담이 공동성명에다 아예 까먹은 것 같았던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라는 말을 담았다. 제4항(평화체제 협상)에 `직접 당사자들은 한반도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하기로 했음`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한반도의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하기로 한다? 이것은 참으로 불쾌하고 졸렬하다.

왜 그럴까? 단적으로 말해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4자 모두가 한반도 분단체제 고착의 직접적 당사자들이요 역사적 책임자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분단의 근원은 누가 뭐래도 일본의 식민지지배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지구적 냉전체제가 한반도의 허리를 칼로 두부 베듯 자를 때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는 실질적 집행자였다. 중국은 6·25전쟁 참전으로 한반도의 `잔인한 재분단`을 결정했다.

그들 4자를 한자리에 모아둔 한국과 북한이 하나의 목소리로 한반도 분단에 대한 윤리적 시대적 책임의식을 촉구하지(북한은 중국에게 침묵하고)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이 드러낸 실력의 한계였다고 할지언정, 한국만이라도 시대적 진실과 역사적 상상력에 의존하여 그들 4자에게 책임의식을 자극하며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를 위한 6자회담`을 고집했어야 옳았다. 더구나 2003년 8월이면 김대중-김정일의 `6·15선언`이 서울 권력과 평양 권력 사이에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들을 어느 때보다 편하게 왕래시키고 있지 않았던가!

현실적으로도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은 남북관계의 이슈인 동시에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의 패권관계와 직결된 이슈다. 이것은 한국(또는 남북)이 시대적 진실이나 역사적 상상력과 더불어 핵 문제를 `평화체제`의 하위개념 및 하위수단에 위치시킬 전략의 중대한 근거다. “좋다. 핵을 다루자. 그러나 평화체제 밑에서 다루자” 이렇게 나갔어야 했다.

지금도 너무 늦진 않았다. 오래 흐지부지할 때가 새 기회다. 논리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한국과 우리 민족이 그들 4자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다. 언제까지 이것을 버려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