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운하서 포항 미래를 묻다

포항은 현재 크나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철강산업 일변도의 경제구조 속에서 글로벌 철강경기 침체로 인한 어려움을 포항시민 누구나 몸소 느끼고 있다.

따라서 산업구조의 다변화를 통한 체질개선이 시급하지만 새로운 포항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청사진을 마련하는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포항시는 2006년부터 밑그림을 그려온 포항운하 통수식을 지난해 11월 2일 개최하고 친환경 해양생태관광단지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본지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철강도시의 모습을 탈피하고, 해양관광도시로 변화를 시도하는 포항의 첫걸음인 포항운하의 발전방향을 다뤄보는 해외 기획취재를 준비했다.

군사·경제·문화 중심지 역할 지역발전 큰 축 담당
신항 건설·수질악화로 송도해수욕장과 함께 쇠락
2006년 1천600억원 투입 물길복원 프로젝트 돌입

■ 글 싣는 순서

① 포항운하 발자취
② 포항운하의 현재
③ 국내 최초 경인운하
④ 경인운하 운영 현황
⑤ 프랑스 파리 생마르탱 운하
⑥ 프랑스 도시계획 전문가 진단
⑦ 포항운하의 문제점
⑧ 포항운하의 발전 방향

□ 천혜의 항구, 동빈내항

포항운하의 물길이 이어지는 동빈내항은 신라시대부터 천혜의 항구로 문물왕래의 주관문이었다. 내륙의 형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끝자락에 위치해 군사적·경제적·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일제강점기 포항 발전의 큰 축을 담당했고 1917년에는 지방항으로 지정된 이후 수산업 전진기지로 명성을 떨쳤다.

1930년대에는 당시 영일만 일대에서 잡힌 청어와 정어리의 최대 집산지로 매년 12월 중순부터 3월까지인 청어 성어기와 4~7월 정어리 성어기에는 수천 척의 어선이 동빈내항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동빈내항은 어업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청정지역으로, 다양한 산업이 분포돼 있었다.

초여름이면 동빈내항 인근 갈대숲으로 철새들이 날아들었으며 맑은 물줄기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채소 농사도 잘돼 부추, 얼갈이배추, 시금치가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특이한 방식의 염전도 유명했다. 바닷물을 태양에 말리는 서해안의 염전과는 달리 평평한 흙을 깔아 바닷물이 들어갔다 나가고 나서 그 흙을 짜서 큰 솥에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즉 포항의 동빈내항 인근은 수산업을 비롯해 농업, 염전업, 관광업 등으로 생계를 꾸리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 일제강점기 포항 동빈내항의 모습.
▲ 일제강점기 포항 동빈내항의 모습.

□ 포스코 그리고 동빈내항의 몰락

포항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동빈내항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근대어선들이 일본으로 환수돼 잠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1962년 6월 국제개항장으로 지정되고 이어 1967년 포항제철공업단지 기공식과 함께 실질적인 국제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빈내항만으로 포항제철로 들어오는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자 현재의 포항 신항이 건설돼 그 기능을 담당하면서 동빈내항은 어선이 정박하고 일반적인 공산품만을 공급하는 항으로 기능이 축소됐다. 포항제철로 인해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더구나 인근에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홍수 예방에 대한 방편으로 형산강 쪽의 물길 1.3㎞ 구간(현 포항운하 구간)을 막는 작업까지 진행돼 반쪽짜리 항으로 남게 됐다.

포항제철의 성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부작용은 컸다. 물길이 막힌 동빈내항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었고, 쓰레기로 몸살을 앓게 됐다. 물길이 막히기 전인 1960년대만 해도 청어와 정어리, 황어가 떼를 지어 몰려오던 푸른 바다의 모습은 사라지고 막힌 바닷물은 갈수록 검게만 변해간 것이다.

철강산업의 발전으로 잃어버린 환경은 그 상태가 심각했다. 실제 1991년 대구지방환경청이 조사한 결과 동빈내항의 수질은 총질소(TIN)와 총인(TIP)의 평균농도가 각각 2.418ppm과 0.036ppm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업용수 수준의 수질에도 못 미칠 정도로 수치다.

▲ 일제강점기 포항 동빈내항의 모습.
▲ 일제강점기 포항 동빈내항의 모습.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마련되지 못한 채 동빈내항은 방치됐다. 수질은 갈수록 악화돼 죽은 물고기가 물 위에 떠다니고 도시의 팽창으로 폐수배출량이 크게 늘면서 정화처리 과정도 없이 매일같이 동빈내항으로 더러운 물이 흘러들었다. 모기와 파리가 극성을 부렸고, 역한 냄새로 주민들은 구토 증상을 보이는 등 건강권까지 침해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근 송도해수욕장도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백사송림의 절경을 자랑하던 천혜의 명소였던 송도해수욕장은 한해 10만명 이상 인파가 몰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으나 동빈내항의 수질악화는 송도해수욕장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피부병을 앓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7년에는 개장도 못 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동빈내항과 송도해수욕장의 쇠퇴는 인근 도심의 슬럼화도 불러 일으켰다.

죽음의 땅으로 변하면서 송도 일대는 사람들이 떠나갔다. 송도해수욕장 앞 상가들은 자취를 감췄고 20년 이상된 노후 건축물이 주인도 없이 방치됐다. 특히 내부가로망이 협소하고 기반시설의 연계성이 부족해 시가지의 구조적 노후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주요 기관들도 외곽으로 이전하며 도심공동화 현상도 나타났다.

환경적인 문제가 주변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길이 막히며 나타난 문제점,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물길 복원밖에 없는 것이다.

▲ 현재의 동빈내항.
▲ 현재의 동빈내항.

□ 40여년만에 물길을 하나로

동빈내항의 물길 복원은 2006년 당시 박승호 포항시장이 취임하면서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동빈내항의 문제를 더는 내버려두기 어렵다고 판단한 박 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지역민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물길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주민들의 이주였다. 남구 송도동, 죽도동, 해도동 일원의 물길 복원 구간의 827가구, 2천200여 명의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오염된 수질의 개선과 낙후된 도심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포항시민의 염원 `물길 복원`에 해당 주민들도 동참의 뜻을 밝혔다.

이후 사업은 착착 진행됐다. 국비 322억원, 도비 24억원, 시비 154억원, 포스코 300억언, LH 800억원, 총 1천600억원의 대규모 사업비가 투입됐다. LH공사와 사업시행 세부협약을 체결하고 도시계획 시설사업 실시계획인가를 거쳐 2011년 5월 30일부터 철거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이 넘는 철거 끝에 2012년 5월 9일 드디어 물길 복원의 건설공사가 진행됐다.

기존의 막힌 1.3㎞의 물길을 뚫어 죽은 바다를 생명의 물길로 살리는 친환경프로젝트인 `포항운하`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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