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발행인

포항시는 세금 3천만원의 포항소재문학상을 폐지해야 옳다. 공모를 주관해본 나는 벌써 3년 전 `폐지와 대안`을 포항시에 제의했다. 대안은 그 예산으로 한흑구문학상을 제정하자는 것. 포항시의 반응이 좋았으나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새 시장이 취임하고 새 의회가 구성될 지금이 다시 공론할 적기다. 왜 `폐지`해야 하는가?

포항사랑 선양과 포항스토리텔링 찾기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뛰어난 작품이 응모되지 않았다. 특히 단편소설에는 여태껏 하나도 없었다. 수준 낮은 응모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나마 수준을 좀 갖춘 것들은 대체로 `상금 사냥꾼` 냄새를 물씬 풍겼다.

상금도 터무니없이 많아졌다. 어떤 문학인의 한심한 아이디어였을까? 지난해 제5회에는 갑자기 `대상 1천만원`이 생겼다. 시, 단편소설, 수필에 각각 최우수작, 우수작들을 뽑고 그들 중 최고에게 대상을 준다는 것. 신인 공모에서 시나 수필이 아무리 뛰어나도 한 편에 1천만원을 줄 수는 없다. 단편소설 말인가? 한국 최고 권위 신춘문예의 단편소설 당선작이 상금 700만원이다. 포항소재문학상에 뽑힌 단편소설에는 신춘문예의 예심 통과조차 어려워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동네잔치`니까 잣대를 낮췄던 것인데, 대상 1천만원이라? 헛된 허영이고 낭비다.

그것은 매우 부끄러운 소동도 일으켰다. 소설에서 대상을 줘야 하고, 첫 대상이니 꼭 줘야만 계속 예산을 받게 된다는 강박증에 눌렸는지 몰라도, 심사위원들(포항에 사는 시인들, 아동문학가, 수필가로 구성)이 소설 부문의 입상 후보작들 중 하나를 놓고 대상으로 뽑자는 데 성급히 합의하고, 그들이 잘 아는 응모자에게 성급히 통지하고 말았다. 나는 한 걸음 늦게 심사위원 자격을 받았다. 기대를 걸고 `1천만원짜리`라는 소설을 정독했다. 정신이 아찔했다. 아직 좋은 소설이 되지 못한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 재심회의가 열렸다. 통지가 번복됐다.

주관측의 잘못에 크게 상처를 입은 응모자가 조용히 있었겠는가? 어떤 인터넷 카페가 달포쯤 지저분하게 와글와글했다. 회장이 `책임 사퇴서`까지 냈으나 잘못한 심사위원들은 끝내 진상조차 밝히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이었다. 일일이 못된 버릇을 고쳐주자면 오늘이라도 `허위사실 유포의 명예훼손 피고소인`으로 대접할 수 있지만, 나는 `동네의 작은 일이어도 작가로서 문학의 명예를 지켰으니`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덮어둘 따름이다.

3년 전에 내가 포항문협 회장으로서 포항시에 `폐지와 대안`을 제의했을 때는 포항문협이 엄정한 관리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점도 깨닫고 있었다. 제5회의 번복 통지는 그것을 명백히 드러냈다. 광범한 홍보에도 포항문협은 적임자가 아니다. 지역언론사가 주관해야 옳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선은 폐지 및 한흑구문학상 제정이다.

한흑구가 누구인가? 포항 최초 근대적 지식인, 전국적 문학인이었다. 1920년대 미국 유학을 거쳐 1930년대 제일 왕성한 영문학 번역가였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시, 소설, 평론, 수필을 썼다. 단 한 줄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았다. 신간회 활동으로 항일의 옥고를 겪었다. 문학인 한흑구의 선구적 지성과 활약을 기리기 위한 문학상이 마땅히 포항에 있어야 한다.

예산이 문제다. 포항소재문학상을 폐지하고 그 예산으로 운영하면 된다. 포항에는 한흑구를 존중하는 기업인들도 있다. 포항시가 기본예산을 확보해주면 해마다 기금을 보태겠다는 기업인이 나에게 연락도 해왔다. 그러나 한흑구문학상은 지역언론사가 주관해야 옳다. 울산의 `오영수문학상`이 좋은 본보기다.

문학단체가 진정한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작가가 뛰어난 작품을 쓰지 않으면 아무리 문학단체가 여럿이고 회원들이 넘쳐나도 진정한 문학은 없다. 새 시장, 새 의회가 바르게 문학을 응원하고 싶다면, 포항소재문학상 예산으로 한흑구문학상을 제정해야 옳다. 이것은 쉬운 일이다. 진짜 문제는 새 권력에 줄을 대서 마치 이권사업 하듯이 반대할 목소리들이다. 낡아빠진 그 `비정상`은 품위 갖춘 공론으로 혁파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