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광 순 제2사회부

“맑은 물 굽이돌아 동네를 감싼 안동 하회마을. 5천년 숨결을 잇는 보람에 할아버지도 힘이 솟고….” 1980대 중반 하회마을을 소재로 한 TV광고 멘트다. 당시 탈을 쓴 사람들의 흥겨운 춤사위와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나룻배가 떠다니는 장면은 하회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하회마을 나룻배의 역사는 16세기 중반 서애 유성룡 선생이 이곳에 기거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84년 홍수로 배가 휩쓸려 떠내려가기 직전까지 주민들이 곡식을 모아 사공의 품값을 쳐 주던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이런저런 연유로 안동시는 2004년 마을 전통을 위해 나룻배를 복원했다. 수년 전만 해도 전통 그대로 모시적삼의 뱃사공이 원동기를 달지 않은 나룻배로 손님을 강 건너편 부용대로 천천히 실어 날랐다.

그러나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손님이 크게 늘어나고 이곳저곳 수익도 생기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배를 태우는 사업장의 경우 일부 주민이 허가도 없이 독점으로 나룻배에 엔진을 장착해 안전은 뒷전이고, 돈벌이에만 급급했다. 여기에 관할 관청인 하회마을관리사무소는 그저 팔짱만 끼고 있다. 민간법인에 대부분 위탁했다는 것이 이유다.

안동시는 이들이 안전장구 착용 없이 승선인원의 무려 3배 가까이 실어 나르는 등 관광객들의 생명을 위협하는데도 목선 운항을 그대로 유지시켜왔다. 책임소재 또한 이 부서, 저 부서 떠넘기기 바빴다.

사법 당국에 고발조차 못하는 관할 관청의 행정력은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이유는 수년전부터 하회마을에서 잇따라 발생한 엽기적 사건에서 비롯된다. 일부 주민들이 관할 관청에 수시로 난입해 낫이나 분뇨를 소지한 채 발가벗은 상태로 협박하거나 심지어 휘발유를 들고 난입한 사건들은 대부분의 공무원들과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공무원은 “일부 주민들이 시도 때도 없이 흉기나 휘발성 물질을 들고 난입하는 살벌한 분위기이지만 무조건 참견 말라는 선임들의 조언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행동이 수년간 반복됐지만 상·하위직 공무원 모두 침묵했다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들이 엄정하게 집행해야 할 공무를 스스로 포기한 이유가 뭘까. 민간법인에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을까.

이쯤되니 지역 시민단체에서는 해당 부서에 부적절한 상납 커넥션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웅성거린다.

최근 불거진 하회마을 목선의 안전 불감증과 민간 법인의 심각한 운영 시스템은 묵인과 방조로 점철된 공무원조직의 집단 이기주의, 그리고 관리감독 부재가 빚어낸 결과라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다.

한 공무원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를 경험하고도 “무슨 익사 사고도 발생하지도 않았는데…”라며 투덜댔다. 안전불감증에 젖은 공직사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안동/gskw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