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ASIA` 발행인

생존의 기본조건은 폭력이다. 동물의 세계가 그렇다. `먹이`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먹이를 구하는 일, 이것은 반드시 타자(他者)에 대한 폭력을 수반한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다.

호랑이는 토끼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독수리는 들쥐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토끼는 하다못해 토끼풀이라도 뜯어먹어야 한다. 들쥐는 감자라도 갉아먹어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존하기 위해 짐승이라는 타자들에게 끊임없이 폭력을 가해야만 한다. 제아무리 채식주의자라도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라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책이 없다. 식물의 목숨이라도 앗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짐승과 인간은 다르다. 생존을 위한 폭력 행사에 있어서 짐승이 인간보다 훨씬 더 윤리적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짐승은 생존을 위한 본능의 수준에서 폭력을 멈출 줄 안다는 뜻이다. 가령,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나 호랑이를 보라. 일단 배를 채우고 나면, 즉 생존을 위한 폭력을 행사하고 나면, 바로 눈앞에 통통한 영양이 낮잠을 자고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래서 인간이 짐승들에게 대단히 그럴싸한 말을 선사했다. 먹이사슬의 법칙, 약육강식, 자연의 섭리 등이 그것이다. 철학자나 과학자, 문학인이나 종교인이 `생존의 기본조건은 절대적 폭력`이라는 말이 너무 끔찍하게 들리기 때문에 그러한 수사적(修辭的) 명명(命名)을 개발한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가? 일단 배를 채우고 나면 눈앞에 군침 돌게 만드는 먹잇감이 있어도 더 먹으려고 덤벼들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가 흔하다. 이 지점에서는 아주 엄격하게 육체적 생존과 경제적 생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육체적 생존을 위한 폭력 행사에 있어서는 인간도 `자연의 섭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재벌 총수라 해봤자 하루 세 끼밖에 더 먹겠느냐. 이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빌 게이츠도 하루 세 끼밖에는 못 먹을 것이다. 더 먹고 싶어도 위장병이나 체중초과의 각종 성인병이 염려되어 반드시 참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 생존이다. `경제`라는 고상한 말 대신에 그저 쉽게 `돈`이라고 하자. 돈에 대한 허기는 생존을 초월한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인간의 탐욕,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탐욕. 생존하고 또 생존할 수 있어도 더 챙겨야 하는 먹잇감, 이것이 인간의 돈이다.

물론 탐욕은 경제적 동력이다. 탐욕이 강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것이 탐욕의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탐욕은 사회적 질서와 안녕을 파괴한다. 그래서 숱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집행할 권력기관이 탄생했다. 법치주의란 말이 거창해 보여도 그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을 믿지 못하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이제는 가슴의 무덤으로 간직하면서, 그것은 생존 본능의 수준을 훨씬 초과한 우리의 폭력에 대한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밑바닥을 드러냈건만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그 탐욕의 먹이사슬은 어마어마한 폭력이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파괴한 것이다.

살생을 금기한 석가모니도 육체적 생존을 위한 운명적 폭력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야 했다. 곡식을 먹고 야채를 먹고 열매를 먹는 것도 `만유일체`의 눈으로 보면 폭력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쯤의 폭력은 윤회의 쳇바퀴를 돌리는 최소한의 에너지라고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는 부질없는 폭력들이 난무한다.

손톱 같은 이익에 대롱대롱 매달려 송사(訟事)를 남발한다. 크게 잘못된 일을 지적해줘도 자기 자존심만 내세워 사과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성을 내고, 뒤에서 험담한다. 재바른 손가락으로 사이버 공간을 욕설로 도배한다. 진정한 신뢰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의 그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기는커녕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선거판에는 여전히 돈과 거짓말이 위력을 발휘한다. 시대적 사명의식을 거론하면 `그게 돈 생기는 일이냐?`며 힐난하고…. 이런 것들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착각한 행동들이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는 폭력들이고, 이 폭력들이 뒤엉켜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