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 시인

뉴질랜드의 도서관 사서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인 화이트는 그림책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림책은 어린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책입니다. 앞으로의 기나긴 독서 생활을 통해 읽게 될 책 가운데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그 아이가 그림책 속에서 찾아낸 즐거움의 양에 따라 평생 책을 좋아하게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됩니다. 때문에 그림책은 가장 아름다운 책이어야 합니다. 화가와 작가와 편집자, 제작자, 그리고 독자가 어우러져서 어떤 책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조각이나 영화처럼 그림책도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형식입니다”

그림책의 `그` 자도 몰랐던 작년 겨울, 구미에서 조의래 선생님의 그림책 강의를 들으며 큰 충격과 설렘을 느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전에 그림책을 알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세상에, 그림책이라니! 영유아들이나 보는 유치하고 조잡한 책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편견이고 오해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조의래 선생님의 강의를 계기로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괜찮다. 천만다행이다.

학교로 돌아와 추천 그림책을 한 권 한 권 읽었다. 아니, `읽었다`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즐겁게 만났다`가 어울린다. “그림책이란 언어 예술과 회화 예술의 조화물을,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물리적 형태로 형상화해낸 것입니다. 때문에 편집자와 제작자의 참여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림책은 문장, 그림, 편집, 제본, 이 네 가지 모두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없으면 어느 부분의 창작도 어렵습니다” 일본 아동도서출판의 명문 `우쿠인칸쇼텐`의 창업자이자 50년 이상 어린이책 계몽운동에 헌신한 세계적인 아동도서 전문가 `마쓰이 다다시`의 말이다. 언어 예술과 회화 예술의 아름다운 조화물이 바로 그림책이다.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보게 하면, 그림 때문에 오히려 어린이의 상상력이 묶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그리는 능력이 손상된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마쓰이 다다시는 “어린이의 자유로운 발상이나 풍부한 상상력은 그림책을 읽는 경험을 통해 더 자라고 발전합니다. 절대 묶이지 않습니다. 겉만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소수의 그림책이 위험할 뿐입니다. 그림책을 어린이에게 많이 보여주십시오”라고 반박한다.

사실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체험의 기회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하는 매체가 바로 그림책이다. 산만하던 아이도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자세를 고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림이 머릿속에 영상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림책의 그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림책을 통해 반복되어 쌓인 영상 경험이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큰 영향을 준다. 유아기에 양질의 좋은 그림책을 꾸준히 접하는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가 훗날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근에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부모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도리어 안 하는 만 못하다. 그림책 읽어주기의 목적은 그저 기쁨과 즐거움이어야 한다. 자녀와의 따뜻한 소통과 나눔의 장이어야 한다. “어디가 재미있었니? 어떻게 재미있었니?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들어? 줄거리가 어떻게 되지? 주인공이 왜 그랬지?…” 그림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어준 후 끊임없이 질문을 늘어놓는 부모가 종종 있는데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보자.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쓰고 발표하고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면 과연 그림책에 매료될 수 있을까?

모쪼록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행복과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림책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덤으로 즐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