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 작가·계간 문학지 `ASIA` 발행인

“일본은 현재 황혼이 아니라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개혁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득권으로 단단하게 굳은 바위를 뚫는 강력한 드릴 역할을 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이 당당한 목소리는 올해 1월23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행한 기조연설에 포함돼 있었다. 아베는 일본의 새로운 새벽을 열고 있는가, 일본의 더 어두운 황혼을 불러들이고 있는가?

아베가 `기득권의 바위를 뚫는 강력한 드릴`이 되겠다는 것은 일본 경제시스템을 확실히 개혁하겠으니 세계 자본가들은 주저 없이 일본에 투자하라는 유혹이었다. 실제로 전력시장 자유화, 지주회사 체제의 대규모 의료기관 설립, 민간 연구기관의 줄기세포 연구 지원, 농작물(쌀) 정책의 시장화,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협정(TPP) 및 유럽연합과의 경제동반자협정 적극 추진 등 경제개혁의 목록을 자랑스레 열거하기도 했다.

아베는 과거사 문제로 특히 동북아에서 망나니 같은 문제아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경제에 승부처를 두고 있다. 아베노믹스란 말이 귀에 익었을 정도다. 아베노믹스의 화살은 3개다. 대담한 양적완화정책, 기동적인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불러일으키는 성장정책을 가리킨다. 3개의 화살을 따로 쏘지 않고 한 묶음으로 쏘아댄다. 그것들이 일본 경제의 심장에 꽂힐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와 비관적 전망이 없진 않으나, 엔저 효과와 주가급등으로 정권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는 대승을 거두어 안정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한국이 아베노믹스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양적완화에 의한 엔저 지속이다. 철강산업만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철강업계가 치열한 생존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2012년 일본 4대 제철소인 신일본제철과 스미모토금속(제철소)이 통합한 신일철주금(NSSMC)이 출범했다. NSSMC는 2013년 경영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된다. 전년 대비 매출액이 1조2천억엔 증가하고, 영업이익이 3천100억엔(약 3조1천40억원) 증가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해온 포스코와의 수익성 격차가 사라지고 시가총액에서 포스코를 추월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엔저 효과였다. 물론, 같은 기간에 포스코는 국내적으로만 보아도 현대제철에게 전통의 고객들(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을 넘겨주고 있었다.

경제에 우선적으로 집중하는 아베의 전략은 실패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후계자로 총리직에 올랐으나 경제를 후순위로 여기며 애국주의적 교육에 치중한 결과 1년 만에 물러나야 했던 것이다.

한국과 중국 국민은 아베노믹스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다. 아베의 과거사 인식과 언행에 는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관심을 기울인다. 가령, 아베노믹스가 성공하여 아베 정권이 국내적 지지 기반 위에서 헌법 제9조를 개헌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확보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나 그때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최소한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조차 승계하지 않으면 아베는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아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 아베는 과거사 문제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반대의 길을 달려가는 것인가? 일본의 잘못된 우익세력이 지지해 주니까 야스쿠니신사 참배 같은 언행을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나는 아베의 이념적 정체성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판단한다. 침략의 과거사를 인정하면 아시아 근대화의 선구자로서 대동아공영을 추구했던 일본의 위대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아베는 확신하는 일본인이다. 경제적으로는 현실주의자지만 이념적으로는 원리주의자로 보인다.

모든 원리주의는 위험하다. 그것은 화해를 거부하고 평화를 파괴한다. 설령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의 새로운 새벽을 연다고 해도 일본 국민이 경제 효과에 취하여 아베의 그 원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일본은 황혼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