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 지음 문학동네 펴냄, 616쪽

중국 내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폭발력 있는 작가, 쟁의가 가장 많은 작가로 손꼽히는 옌롄커. 그의 국내외 수상 경력과 여러 나라 대학이나 학회에서의 화려한 문학강연 활동을 보면 이제 그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계적 작가임에 틀림없다. 1996년 중편 `황금동`으로 제1회 루쉰문학상 수상, 1997년 `연월일`로 제2회 루쉰문학상 수상, 2005년 `레닌의 키스`로 제3회 라오서문학상 수상 등 자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쓴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2012년 `딩씨 마을의 꿈`으로 타이완 `독서인상` 수상, 전지구 화어 10대 양서 선정, 영국 `맨아시아문학상` 최종후보, `파이낸셜 타임즈` `올해의 책` 선정과 더불어 `사서`로 프랑스 `페미나문학상` 최종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옌롄커의 장편 `풍아송`(문학동네)은 출간 당시 “베이징 대학을 겨냥했다”는 비판과 더불어 대대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중국 당대 문학에서 최초로 지식인의 부조리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또 한번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라는 화제를 불러모았다. 한국어판에는 저자가 직접 보내온 `한국어판 서문`과 말미에 부록으로 실은 `저자 후기` 세 편이 실려 있어 이 작품의 창작 과정과 출간에 대한 저자의 변을 맛볼 수 있다.

옌롄커는 “현실은 상상보다 더 부조리하다. 글을 쓴다는 건 인생에 대한 도둑질, 죽음이 엄습한 곳에서 생명을 도둑질하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이 책의 제목 `풍아송`은 원래 `시경`에 나오는 내용별 분류 체제를 가리킨다. 즉 `풍(風)`은 남녀의 애정을 주로 다룬 여러 제후국의 민요·민가이며,`아(雅)`는 조정의 의식에서 주로 불린 시가이고, `송(頌)`은 선조의 덕을 기리는 종묘 제의용 악시다. 옌롄커는 이 체제를 차용해 자신의 소설 형식을 변주했다. 이 소설은 돌림노래처럼 이 세 개의 악장이 돌아가며 반복된다. `시경`의 각 시에서 빌린 제목의 낱낱의 장들은 밀도감 있는 심리 묘사와 빠른 이야기 전개로 한 편의 완결된 시적 정경을 만들어낸다.

이 소설의 내용적 측면에서 보자면, 주인공 양커 교수의 행보는 아주 문제적이다. 바러우산맥의 시골 출신인 그는 현재 입신양명해 베이징 유명 대학의 교수이자 `시경`을 연구한 권위자다. 5년 간 공들여 쓴 50만 자 분량의 연구서를 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침실에는 자신의 아내이자 동료 교수 자오루핑이 훗날 총장으로 취임할 리광즈와 뒹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모래폭풍에 휩쓸려 쓰러져가는 대학건물을 지키려던 대학생들과 우연한 계기로 함께하다 정치적 교수사회의 표적이 돼 뜻밖에도 정신병원 환자로 둔갑된다. 대학 내에서 배척되던 그의 강연 기회는 황당하게도 정신병원 환자들과 홍등가로 변모한 고향 천당 거리의 여자들에게 베풀어진다. 또한 공자가 채록에서 빠뜨리거나 삭제된 사라진 시편을 찾으려는 그의 학문적 이상은 고향 바러우산맥에서 자신만을 사랑했고 그 사랑의 체념으로 죽어간 링쩐이라는 여인과 그녀의 딸 샤오민에 대한 일그러진 사랑의 양태로 변모한다. 그는 과연 자신의 붕괴된 학문적 이상을, 누락되어 사라진 시들을, 황폐해진 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 소설가 옌롄커

지식인으로 자부하는 이들 앞에서 양커 교수는 매번 숱한 유혹과 갈등의 시험대에 오른다. 그의 선택과 행동이 곧 지신인의 실천이자 정신의 지표인 셈이다. 그가 부딪히는 심판의 문들 앞에서 해나가는 그의 선택이 이 서사를 이끄는 동력이다. 그러나 그가 “마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산 전체를 정복하려는 것처럼” 이들에게 오히려 무릎을 꿇는 행동은 지식인으로서의 무기력과 나약함을 반증한다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단속이자 타인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기도와 같다. 이 주객이 전도된 자세란 얼마나 부조리한가. 자오루핑과 리광즈의 불손한 결탁 아래 펼쳐지는 교수사회의 횡포로부터 도망한 고향도 이미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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