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17) 커피향과 인문학 - 경주 자리밭 마을의 신화

▲ 두바퀴로 문화탐방단이 실내탐방 프로그램인 `커피향과 인문학` 강좌에서 안성용 포항문화예술연구소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갑오년 새해 청마의 역동적 기운을 받은 지난 11일 오전 10시30분, 어느새 망고씩스 양덕점은 두바퀴로 회원들의 정담으로 가득하다. 따뜻한 커피 한잔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에 함께한 이들의 표정이 사뭇 밝다. “지금부터 인문학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안성용 포항예술문화연구소 소장님께서 사진학 강의를 해주시겠습니다. 주제는 `자리밭 마을의 신화`입니다.” 모성은 교수의 사회로 강의가 시작된다.

자리밭 마을 신화, 허물어져가는 농촌현실 보여줘
소박한 사진찍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성찰 근거

“경북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에 `자리밭`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12가구가 부락을 이루고 있으나 실제로는 7가구만 살고 있고 나머지는 빈집들입니다.

8년 전, 저는 이 마을에 첫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사진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저 또한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어엿한 자리밭 마을 주민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젠 처음 이 마을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의 서먹함도 제법 사라졌습니다. 마을 할아버지들의 술벗도 되어주고, 할머니들의 이야기 동무도 되면서 마을 사람들과 정이 들었습니다.

진솔된 표현의 다큐멘터리 사진

근자에는 노령화된 이 농촌 마을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느껴집니다. 마을 사람들이 농사짓는 일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신에 조상들 무덤 조성에는 정성을 다합니다. 그도 그럴 일입니다. 마을에 무덤은 늘어가고 산 사람은 줄어갑니다. `자리밭` 사람들은 조상이 부르면 언제든 떠날 채비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깝게 서 있는 탓인가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 풍광이 좋은 사진, 자신의 예쁜 모습을 찍어 집에 걸어 둡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패턴이 많이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합니다.

`자리밭 마을의 신화`는 허물어져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뼈를 발라내고 속살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피폐해지는 농촌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악에 받힌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삶의 쉼터가 여기라고, 마치 도연명의 무릉도원인 듯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 땅에 `자리밭` 마을이 있고, 이러한 삶이 있다는 것을 낮은 목소리로 넌지시 건넬 뿐입니다. 기교를 앞세운 과시적 사진 찍기로부터 한 걸음 빗겨난 참으로 소박한 사진 찍기입니다. 무욕의 사진 찍기입니다. 저의 삶이 이미 `자리밭` 마을 사람들의 삶과 동화되었기에 가능합니다.

이처럼, 사진가들이 눈이 번쩍 뜨이는 사건을 쫒는 대신에 도시 외곽이나 시골의 삶 속으로 눈을 돌린 시기는 1970년대부터입니다. 작가 에메트 고윈(Emmet Gown), 빌 오웬스(Bill Owens), 밀턴 로고빈(Milton Rogovin)의 사진 작업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소재는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된 관점은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주목 받지 못한 일상적 삶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지속적으로 관찰해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근거로 삼습니다. 저의 사진 작업도 그 틀 속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사진 기법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진솔된 표현 방법이며 가식이나 지나친 연출, 암실에서 억지로 만들어내어 조작된 것이 아닌 직설적인 표현 방법입니다.

여러분들이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을 할 때 여러분들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들을 순간순간 기록해 둔다는 자체가 다큐멘터리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사진의 매력은 쇼킹한 사건이나 프로파간다(propaganda,어떤 주의나 주장 등을 대중에게 널리 설명해 이해와 동의를 얻으려는 활동) 혹은 거대 담론의 생산을 유도하는 이미지보다는 `자리밭 마을의 신화`같은 삶의 소소한 모습 속에도 숨어 있습니다.

3가지 주제로 담은 마을 풍경

`자리밭 마을의 신화`는 3가지 포괄적인 주제를 담아냅니다. 첫 번째는 제가 찍은 대상들을 통해서 어떻게 스스로 `자리밭` 마을의 한 일원이 되어가는 지에 대한 포오즈를 느끼는 것입니다. 처음에 `나`는 멀리서 원경으로 마을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은 `이곳 사람들`과 `나` 사이에 놓인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는 관찰자로서의 풍경입니다.

제 사진 속에는 마을 풍경과 이곳 사람들이 함께 찍혀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람과 풍경이 하나로 보입니다. 마치 동고동락한 부부의 얼굴이 서로 닮아가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 `자리밭` 마을의 대숲이기도 하고, 돌담이기도 합니다. 또한 무덤이기도하고, 다랑논이기도 합니다.

이마의 깊게 팬 주름이나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등은 마치 마을 여기저기 보이는 덤불 같기도 합니다. 평생을 땅과 바람과 나무와 함께 살아 온 삶이 사진 속에서 녹아나 그대로 마을의 풍경이 됐습니다. 나의 망설임과 이방인의 눈으로 보는 관찰자(나)의 거리감에 비해 자리밭 풍경과 이미 동화된 이곳 사람들의 삶이 선명히 대비됩니다.

두 번째는 마을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소소한 사건을 찍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사진은 사건일 것도 없는 사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곳의 일상이고 생활 방식입니다. 아마 제일 큰 사건이라면 죽음을 찍은, 상여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입니다. 사건의 빈자리는 일상이 메웁니다. 바랑매고 이웃 나들이, 시부모 무덤 돌보기, 논일하다 잠시 멈추고 길에 서서 참 먹기 같은 일상적인 일들입니다. 그들의 일상이 사진가의 일상으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이제 카메라가 쉽게, 가까이서 삶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마을 사람 한분 한분에 대한 초상 사진 찍기입니다. 4×5 카메라로 아주 당당하게 정면에서 찍습니다. 그리고 롤지 크기로 인화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이분들의 존엄함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사진가 앞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사진가 역시 어색함도 주저함도 없이 이들의 얼굴 속으로 걸어갑니다. 이제 심리적 거리감이 소멸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 사진을 찍고 싶어 8년을 에둘러 왔는지 모릅니다. 풍상을 견딘 얼굴의 흔적을 깊은 애정을 실어 찍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은 이들이 이 땅에 살아왔던 사람들임을 증명합니다. 이 무명인들의 삶이 땅의 생명으로 이어져 왔음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이 땅의 `자리밭` 마을이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마을 전체가 전시장·갤러리

이곳에서 부대끼는 삶은 이런 것들입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영화를 본 일이 없다는 `마산 할머니`를 위해서 저는 처음으로 마을에 빔프로젝트를 설치하고, 영화 `동막골`을 상영했습니다.

또 11월11일은 도시 사람들에게 빼빼로를 먹는 날, 일명 `빼빼로데이`겠지만 이곳 `자리밭` 마을에서는 일 년에 딱 한번 장이 섭니다. 사실 장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냥 이곳에서 손수 만든 먹거리를 내놓고 가까운 이웃 마을의 지인들을 초대합니다. 이백 여명 남짓 모인 이곳은 일 년에 단 한번 활기가 넘치는 축제날입니다.

그동안 이 마을 어르신들을 찍은 사진을 대형으로 인화해서 문패 대신에 집집마다 담벼락에 걸어두고 손님을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전시장이 되고, 집집마다 갤러리입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모델이고 갤러리의 주인입니다. 그 날 하루만은 모두가 무명인이 아닌 때 빼고 광낸 문화인이 되는 날입니다. `자리밭` 마을 속에서 우려낸 사진이기에 형식과 내용이 겉돌지 않고 아귀가 빈틈없이 꼭 맞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밑바탕에는 사람 사랑하는 인간애가 강물처럼 흘러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차분차분한 1시간 남짓의 강의가 끝나자 양덕동 김희정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청강 소감을 말한다.“안성용 교수님의 사진 강의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진을 찍는 이유로 행복의 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기위한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안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사진의 중요한 역할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이 평범한 우리의 삶을 신화처럼 특별하게 담아주고 그 속에 사람 사는 향기도 있어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은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진이 있어 `자리밭 마을의 신화`는 또 계속될 것이다. 사진은 과거를 불러와 현재를 일으키고 현재를 담아 미래를 열어가는 힘이다.

◇ 대표집필:모성은 교수(한국지역경제연구원 원장)
◇ 초빙강사:안성용(포항예술문화연구소 소장)
◇ 강의집필:이나나(경북미술비평연구소 소장)
◇ 사진·영상:황종희(사진)·이재원(영상)
◇ 강의 장소:망고씩스 커피전문점(양덕점,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30분),
엔제리너스 커피전문점(이동점, 화요일 오전 10시30분)
◇ 주관:(사)문화와 시민

▲ 두바퀴로 문화탐방단이 실내탐방 프로그램인 `커피향과 인문학` 강좌에서 안성용 포항문화예술연구소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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