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재영 시인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낭보가 전해졌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이상화 선수가 일곱 차례 1위를 하였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돔 스포르토바 빙상장에서 열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부상을 딛고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다.

야구,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의 이런 종목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 금, 은, 동의 순위를 정해 실력을 인정하지만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은 그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이따금 언론에 소개되는 고가의 전위적 예술품을 접할 때 특히 그렇다.

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의 이름과 작품은 많은 사람의 관심 밖에 있지만 언론을 통해 종종 소개되고 거론된다. 작품의 오브제를 실제 유골을 사용하였고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8천601개 붙였다. 그 중 큰 것은 50캐럿 이상이나 된다. 죽은 자와 산자의 허영심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이다. 그런데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면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가보다 한다. 하지만 값으로 이야기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시 그 작품을 만드는데 무려 220억원의 돈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통해 맘이 편안하고 위안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혐오스럽고, 때론 섬뜩할 정도다. 이 작품이 얼마에 팔렸냐하면 940억원에 팔린 것이다. 분명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했기에 그런 값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6년 전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쓰레기 같은 작품이라며 폐기처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예는 동서고금에서 숱하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파리를 여행할 때 찾아가는 유명한 건축물 에펠탑에 얽힌 이야기도 그렇다. 1889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과 다음해 치를 세계박람회 준비로 구스타프 에펠의 설계에 따라 300m 높이의 철골조 탑을 짓기로 하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다며 골목으로 다녔고, 화가 드가는 에펠탑의 철거를 주장했다. 현재 에펠탑은 파리의 랜드 마크로 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도대체 예술이란 것이 무엇일까? 예술 하는 사람 중에는 모파상 같은 고집도 필요할 것이다. 난 싫다. 반면에 독자 역시 그게 싫기 때문에 네 작품은 쓰레기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얼마 전 포항문예아카데미 16기 문집을 발간하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쓴 작품이지만 아직도 부족하여 더 공부해아 할 시라 생각하는데 쓰신 분이 시를 낭송하자 다른 수강생이 눈물을 흘렸다. 교정을 보며 그 시 때문에 친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만약 그에게 조금 어려운 시였다면 그런 감동을 주었을까?

일상의 사소한 글감이지만 그의 글은 그 사람에게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가 그에게 평생 좋은 시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품이란 것은 시대에 따라 항상 낯선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형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을 멋있게 향유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종종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해도 그것은 일반인의 일상에서 멀리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로 머물 뿐이다. 남과 다른 특별한 것을 중요시 하는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예술정신이라 하더라도 예술가는 소비자에게 왜 너는 내 예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없다.

어떤 면에서 자기 옆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큰 예술은 끌어안고 사랑할 사람이다. 예술은 스포츠 경기처럼 수치로 일등, 이등 나누기 힘들지만 독자는 늘 자기의 안목으로 등수도 매기고, 그것을 향유한다. 그렇기에 예술의 가치척도는 소비자의 눈에 있음을 부인 못할 것이다. 그 소비자는 현재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미래에서 걸어오는 사람임을 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