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명 시인

바쇼(芭蕉)는 17세기 일본에서 하이쿠를 쓴 시인이다. 하이쿠는 17글자의 짧은 시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이다. 우리나라에는 `하이쿠의 시학`이란 논문집을 낸 이어령 박사 등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깊이 연구되고 알려져 있는 편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최근 역사 교과서 왜곡 기술문제나 독도영유권주장 등으로 한일 간의 이해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일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문학으로부터 그들의 문화적 정신적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학 중에서도 하이쿠는 일본인이 만들고 아직도 향유하는 독특한 문학으로 일본인의 축소지향성을 그대로 드러내어주는 시가이다. 하이쿠를 말하면서 바쇼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 이전에 언어적 유희에 머무른 수준이었다면 그가 고행과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깊은 생각 또는 깨달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점 때문이다. 바쇼로부터 하이쿠는 오늘날 세계에 일본이 자랑하는 3대 문화 유산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주저 없이 소개할 만한 것은 `오쿠노호소미찌(奧の 細道)`라는 기행문이다. 바쇼는 그의 나이 46세 때 일본의 동북부지방 2천수백km를 151일간에 걸쳐 도보로 여행한다.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간략한 산문과 하이쿠를 섞어서 남긴 글이다.

이 기행문을 읽다보면 하이쿠가 결코 실내나 정원에서 가만히 앉아 만들어진 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사실 하이쿠는 여러 사람이 주고받으면서 36구 100구 심지어 1천구, 1만구까지 연이어지는 렝꾸(連句)로 였다. 첫 사람이 5-7-5조의 17자로 제1구를 지으면 둘째사람이 이 발구에 영감을 얻어 7-7조의 14자의 협구를 짓는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협구에서 영감을 얻어 17자의 3구, 연이어 14자의 4구를 지어 영감의 게임을 이어간다. 바쇼 이전에는 발구가 `렝꾸의 시작`이라는 의미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는데 이 발구가 단일구로서 독립적으로 `하이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바쇼에 의해서 제1구인 발구는 `오쿠노호소미찌`에서 단일구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중 그의 대표적이 하이쿠인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소리네`라는 구는 동북기행 중 야마가타 번의 영내에 입석사라는 산사에서 지은 시다. 뜻을 옮겨보면 `온산은 매미소리로 가득한데 그 소리가 사방의 기암 괴석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니, 한 여름의 산 속은 더욱 고요하고 유현하기만 하다`쯤이다. 즉 매미소리가 산중의 정적과 유현을 깨기는커녕 이를 더 한층 깊게 하고 있다는 뜻으로 `소리가 스며드는 바위`라는 투명한 질감과 `스며드는 매미소리`라는 부드러운 감각이 조화를 이뤄 우주의 법칙을 표현하기라도 한 듯 정제되고 고양된 환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오쿠토호소미찌`에는 50여구가 기행문과 함께 실려 있고 모두 고행으로 얻어진 값진 깨달음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여백의 미를 살려낸 절창들이다. 그중에 있는 것은 아니나 바쇼의 하이쿠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는 역시 다음의 하이쿠다.

`옛 연못에 개구리 뛰어 드는 물소리`

바쇼의 나이 43세 되던 해 1688년 봄에 지은 구인데, 파쇼의 문인들이 스승에게 에도의 후카가와 강변에 지어준 파초암에서 씌어졌다 전한다. 주변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연못이 주변에 있었다. 어느 날 바쇼가 방에 조용히 앉았는데 연못 쪽에서 퐁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작은 개구리 한마리가 크고 넓은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정적이 깨어졌다가 다시 고요함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정경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도 하고 또 일설에 의하면 에도의 장경사에서 불정 스님과 선문답중에 만들어진 구라고도 한다. 불정 스님은 바쇼에게 좌선을 전수했다고 한다. 시각과 청각의 감각적인 이미지가 결합되고 옛과 현재 그리고 고요와 파문등 여러 세계가 만나는 깊이를 드러낸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은 `옛 연못`이 상징하는 `전통적 일본정신`을 `개구리`로 상징되는 `예술가로서의 바쇼`가 비장한 예술적 결의로 뛰어들어 그 예술을 새롭게하며 영원히 공명시킨다는 뜻을 가진다고도 했다.

이 정도로는 바쇼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 깊이 이해해 보기 위해 읽어볼 책은 앞서 적은 이어령 교수의 작품과 `음유시인 바쇼의 동북일본 기행-이만희`,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유옥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