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⒁ 포항 죽장 입암서원·기북 덕동마을

▲ 포항 죽장 입암서원과 기북 덕동마을 가을스케치에 나선 두바퀴로 자전거 취재단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늘 두바퀴로 문화탐방은 `가을 스케치` 여행이다. 울긋불긋 단풍길 따라 죽장 입암서원과 상옥을 돌아 기북면 덕동전통체험마을까지 달렸다.
 

기북 덕동마을, 2011년 `기록마을` 제4호 등록
고택·명승지 즐비한 여강 이씨 수백년 집성촌

노계문학 뺴어난 작품 탄생한 곳

소녀의 발그레한 볼처럼 수줍게 물이 오른 새빨간 사과 향을 맡으며 죽장 선바위 촌에 이르렀다. 포항의 오지 죽장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마저 상큼했다. 마을 입구에 큰 바위가 서 있다해 `선바위, 입암`으로 불리고 그 이름으로 인해 입암리가 됐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오지에도 서원이 세워졌다. 1657년에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토월봉 아래에 창건된 입암서원은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 70호로 지정됐다.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이곳은 임진왜란시 이 지방에 피난와서 살았던 강공 장현광(1554-1637)을 봉안하고 지방 유림인 권극립, 정사상, 손우남, 수암 정사진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입암은 월성 손씨, 한양 조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대대로 살아왔다. 감히 오지라고 부를 수 없는 선비문화가 살아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선바위 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1600년에 건립됐다고 하는 `일제당`이다. 절벽에 의지하여 높은 자연석 축대위에서 가사천을 내려다보며 날아갈 듯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많은 싯구를 남겼는데 입암이 바로 그곳이다.

문득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노계 박인로의 가사 `입암별곡`이 생각났다. 바로 그때, 문화에 해박한 박계현 (사)문화와시민 이사장이 어김없이 문화가이드를 시작한다. “당시 입암서원에 머물던 장현광 선생과 교분이 각별했던 69세의 박인로 선생은 입암의 풍광에 취하여 8차례나 죽장을 방문하였답니다. 그때 남긴 가사가`입암별곡`이며 시조`입암29곡`도 지었습니다.” 정철, 윤선도와 함께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한 지주로 높이 평가받던 노계문학의 빼어난 작품이 바로 죽장 입암에서 탄생되었던 것이다.

입암서원 옆 낮은 동산에서 수령이 꽤 되었을 노란 은행나무 한그루가 깊어가는 가을의 멋은 제 혼자 다 부린다. 이에 질세라 어여쁜 두바퀴로 선녀들이 여기서 찰칵, 저기서 찰칵, 저마다 함박웃음 한 바가지에 가을을 담는다. 한 폭의 그림이다.

가을 해는 짧다며 안성용 두바퀴로 단장이 갈 길을 재촉했다. 입암의 풍광에 취한 기분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상옥초등학교에 이르렀다. 비록 10여명 남짓의 전교생들이 머문 자리이지만 아직도 아이들의 따뜻한 체온이 교정에 남아 있다. 구불구불 제멋에 팔다리를 드리운 소나무가 빈 운동장을 지키고 섰다. 독서중인 남녀 한 쌍의 어린이 동상이 우리를 반긴다. 오늘 두바퀴로 가을 스케치는 `배움`인가 보다.

선비정신 흔적 남은 덕동마을

다음 목적지 역시 기북면 오덕리 덕동에 자리잡은 `전통문화체험마을` 이다.

덕동마을은 2011년 11월10일 국가기록원에 `기록마을` 제4호 로 등록된 문화마을이다.

덕동마을은 조선의 대유학자인 퇴계의 스승 회재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의 4대손 이강이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360 여년간 대를 이었다. 여강 이씨 집성촌을 이루며 아직도 선조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보다 규모는 작지만 애은당 고택, 사우정 고택 등이 전통미를 뽐내고 있다.

▲ 포항 죽장 입암서원과 기북 덕동마을 가을스케치에 나선 두바퀴로 자전거 취재단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기북 덕동마을 용계정의 수백년된 은행나무.

두바퀴로가 도착하자 마을 입구에서부터 벌써 선비의 정신이 살아있는 듯 남다른 기품이 느껴진다. 덕동은 예부터 덕(德)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덕동(德洞)마을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덕동마을은 오덕리라고 부릅니다. `선관오덕`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문화와시민 박계현 이사장이 문화적 해설을 시작한다. “오덕은 매미의 `선관오덕`에서 왔습니다. 왕이 정무를 볼 때 곤룡포를 입고 익선관(翼蟬冠)을 쓰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익선관은 매미선(蟬)을 써서 매미의 날개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는 매미가 지녔다는 그 오덕(五德)에 기초한 거랍니다. 즉, 첫째 매미의 곧은 입은 선비의 갓끈과 같이 곧아 학문에 뜻을 가진 선비와 같고, 둘째로 사람이 힘써 가꾼 낟알을 먹어 축내지 않으니 염치가 있으며, 셋째로 집이 없으니 검소하고, 넷째는 때맞추어 가을에 죽으니 신의가 있고, 다섯째는 아침 이슬만 먹고 사니 맑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덕리`는 바로 선관오덕에서 나온 지명이다. 文, 廉, 儉, 信, 淸을 닮고자 하거나 명심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덕동은 많은 문사들이 배출됐다.

덕동은 조선후기 문중 사당을 이해하는데 여주 이씨 가문의 세덕사 관련 자료 및 마을의 경제적 이면을 이해할 수 있는 18세기 고문서 등이 소장되어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덕동, 오덕리 일대는 `삼기(三奇)`, `구곡(九曲)`, `팔경(八景)` 등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명승지가 널려 있다.

1546년에 지어진 용계정

덕동에는 애은당(愛隱堂)과 사우정(四友亭), 여연당(與然堂), 용계정(龍溪亭) 등 경북도 지정 유형문화재와 민속자료들이 동네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중 덕연(德淵)구곡의 제5곡에 1546년에 건립된 용계정이 위치하고 있다.

용계정은 임진왜란 때 북평사를 지낸 정문부가 별장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후손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정자원림을 경영해 왔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별서이다. 용계정은 용이 머문다 하여 `용방`, `용계`라고도 한다.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숲과 연어대, 합류대, 와룡담 등 자연계류가 잘 어우러진 역사문화 명승지이다.

용계정은 고풍스런 고택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와 향나무에 둘러싸고 있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겨우 지붕만이 살짝보일 뿐이다.

용계정은 1868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자 이것을 지키기 위해 밤새도록 용계정 외부에 담을 쌓아 오늘에 보존되고 있었다. 용계정 건너편 늠늠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가 있다. 나무마다 주민들이 이름표가 붙여있는데 그 나무의 관리자 이름이다.

용계정 숲 왼쪽에 연못이 하나 있다. 이 연못을 호산지당이라 부른다. 재미난 유래가 있었다.

덕동마을은 산세가 강하고 물이 적어서 인물이 배출되지 않아 물을 가두어 두어야만 주위의 경관도 살리고 우수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공 못을 만든 것이다.

`호산지당`

상강수약축사지(山强水弱築斯池)

산이 강하고 물은 적어서 못을 만드니

동학풍광부유기(洞壑風光有奇)

동리의 경치가 다시 또 기이하구나!

적제경영성숙지(積歲經營成宿志)

오랜 세월 경영한 뜻을 이루니

장래여경야응기(將來餘慶也應期)

장래 남은 경사를 또한 기약하리라

◇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 문화가이드:박계현 문화와시민 이사장
◇자전거 협찬:서일주 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 취재동행:이명희, 이영숙, 이선덕, 김효은, 노경훈,
◇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 기북 덕동마을 용계정의 수백년된 은행나무.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