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명 시인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적이라는 뼈있는 우스개 소리가 떠돈다. 이것이 옳은 이야기든 잘못된 이야기든 현재 사회상황을 반영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조부모가 상류층이 아니었으나 부모가 신분상승을 이뤄 상위계층이 된 경우에 아이가 자라서 계속 상류층으로 남을 확률은 얼마일까. 우리사회에서 한 세대에 신분상승을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검사, 변호사가 되거나 기업경영 등으로 부를 축적하고 신분상승을 이뤄 냈다 하더라도 자녀가 계속 상류층으로 남을 확률은 낮다고 본다. 영국의 경우 61%(옥스퍼드대 연구팀 발표)쯤 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연구 결과에는 심지어 부모가 몰락해도 손자는 다시 상류층에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것을 `조부모 효과`라고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개룡남` 즉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는 자취를 감췄다. 반면 할아버지의 세대에서는 그것이 비교적 쉽게 가능했던 것으로 말해진다. 사회가 불안정했고 성실히 노력하면 얻고 누리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아버지의 재력`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신분상승이 어려워졌다는 세태를 반영하는 말이다.

그러면 `엄마의 정보력`은 어떠한 세태를 반영하는가. 서울대를 나온 엄마들이 쓴 책을 읽어보면 그 엄마들도 수시로 바뀌는 입시정책과 제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정작에 그녀들이 바뀌는 입시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정보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므로 도리어 수혜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남 엄마의 정보력`이란 책을 발간한 김씨는 “상위 1% 아이들 뒤에는 반드시 발 빠른 엄마가 있다”면서 비싼 과외와 조기 교육도 똑똑한 엄마의 정보력을 이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엄마의 정보력`은 엄마들의 모임과 다양한 입시설명회 그리고 신문이나 책자, 인터넷 등 정보 매체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자신의 아이에게 잘 맞고 잘 가르치는 학원을 찾아내고, 자신의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주고 최대한 높일 수 있는 학교를 찾아 내는 일, 그리고 개인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엄마들이 지역모임이나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유통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적인 활동으로 드러난 것이 `치맛바람`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맹모삼천(孟母三遷)으로도 설명되는 우리나라 교육열의 진원지이다.

마지막으로 `아빠의 무관심`은 유머의 반전을 위해 만든 마지막 꼬리 비틀기였겠지만 절묘한데가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4학년 정도 될 무렵 아내와 나는 자녀 교육 문제를 두고 상당히 다툰 기억이 난다. 주변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그랬단다. 대체적으로 아버지의 자녀들에 대한 관대함이 문제였다. 한때 이런 CF문구가 있었다. “공부를 못해도 좋다. 착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문구였다. 이런 문구에서 봐도 아버지의 자녀 교육의 입장은 관대하다. 그러므로 `엄마의 정보력`과 교육열에 반해 아빠는 언제나 방해꾼 정도로 여겨진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너무 자기주장만 한다고 아내의 반발을 사다가 점차 시간이 흘러가면서 무관심해져간다. 그리고 “나는 잘 모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로 마무리하고야 만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아빠는 처음부터 무관심해야 옳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의 장래에 도움이 될지 안될 지는 모르겠지만 명문대 진학에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엄마의 정보력`을 사사건건 막을 것이므로 말이다.

이 세 가지의 우스개 말에다가 덧붙인 새로운 근원도 모르는 버전들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둘째의 희생`, `아줌마의 사랑` 이런 우스개 말들인데,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의 명문대 진학에 목멘 것이 이런 우스개가 나오는 배경이라 씁쓸한 데가 있다. 그런데 `둘째의 희생`은 알겠지만 `아줌마의 사랑`은 뭘까. 알고 보니 엄마는 정보력으로 승부하는 존재일테니 자녀는 엄마의 사랑이나 관심 따위는 바라면 안된다. 즉 사랑은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에게나 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명문대생이 된 아이는 제대로 된 인간일까, 괴물일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