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명 시인

컴퓨터 활용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거나 심각한 오류를 잘 판단하고 고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약간 존경의 뜻을 담아 `컴퓨터의 고수`, 줄여서 `고수`라고 부른다. 요즈음 업무를 대부분 컴퓨터로 하다 보니 이곳 저곳에서 이 고수들에게 문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고수들은 자신의 업무를 놓아두고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도와줘야 할 때가 많다보니 괴로움을 호소한다. 급하다고 하니까 쉽게 싫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바쁘다고 핑계를 대어도 다급하니 막무가내로 애원 반 강요 반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문제를 다 해결해 주고 나면 “이건 왜 그렇죠”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컴퓨터에 대한 교육의 의무까지 내게 있나?`란 의문이 들 때도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상냥하게 `이건 이렇고요, 저건 저렇고요`라고 설명해줘도 그때 뿐일 경우가 많다. 결국 똑같은 상황에서 다시 부름을 받는다. 그래도 이 재주를 갖고 싶은 것은 타인의 존경과 말 할 수 없는 문제해결의 기쁨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고수`는 타인을 도와주지도 않지만 가르쳐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자꾸 도와주도록 압력을 넣고 어렵게 만들면 “이거 내가 알기위해 무척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인건데 당신도 돈, 시간 좀 들여라” 하고 매정하게 끊어버린단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겠나만 결국 `좀 아는 것이 죄`가 되는 이런 희한한 경우가 요즈음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애매하게 사역하는 경우가 되겠는데 요즈음 컴퓨터 활용능력, 이것은 기본능력이어서 어느 조직에서나 특별히 대우 해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괴로워도 상냥하게 받아주고 도와주면 물론 좋은 일로 되돌아 올테지만 그것 때문에 `잘 받아주더라`는 인상을 받고 나면 사소한 문제에도 부름을 받게 된다. 직장 상사라면 더더욱….

`장자(莊子)`에 이런 글이 나온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여기저기 많이 불려다닐 것이고 영리한 사람은 앞일에 대해 이것 저것 재는 것이 많아서 생각이 많으며 근심 또한 많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같은 현상인 모양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특별한 재주도 아닌 컴퓨터 활용능력 정도를 가지고 보상을 요구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이나 노력을 무상으로 계속 타인에게 공여하기도 아까운 일이다. 게다가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반복 되는데다가 자신의 일은 놓고 사역을 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매우 언짢은 일이 된다.

한글 워드프로세서에서 표 크기를 줄이고 늘인다든지 문단모양이나 글씨모양을 바꾼다든지 페이지 번호가 잘못된다든지 하는 사소한 문제는 그래도 한 수 가르쳐주면 금방 배워서 해결되는 일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패스워드를 잊어버렸는데 컴퓨터를 못켜겠다든지 블루스크린이 계속 떠서 사용을 못하겠다는 등의 중요한 문제는 방법이 없다. 스스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고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사실 이런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서 개인에게 스스로 대처하라고 하는 것은 도가 넘은 일이기도 하다.

이런 중대한 오류들에 대해서는 `더 높은 고수`가 필요하다며 회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수`들은 은근히 오기가 발동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내가 한 번 고쳐줘서 실력을 발휘해볼까`하는 교만도 얼굴을 들기 때문이다. 이런 교만 때문에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망할 때가 종종 있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났다. 한 사람은 재주가 많아 그 재주를 뽐냈던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별 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 재주가 없는 사람은 `이크 곰이다. 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야지….`하고 나무위에 올라 곰을 피했다. 그러나 재주 많은 사람은 `아, 내가 어떤 방법으로 저 곰을 피할까? 죽은 척 할까? 나무위로 올라갈까? 벽을 탈까?` 하며 자기 재주만 믿다가 결국 곰을 피하지 못하고 말았다. 재주 많은 사람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