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⑾ 영남지역 최고의 역사 자랑 포항 `죽도시장`

▲ 두바퀴로 기자단이 죽도시장 수협 위판장을 찾아 개복치 이야기를 듣고 있고 모성은 교수가 건어물 가게에서 취재하고 있다.

“오늘은 죽도시장을 탐방합니다. 영남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입니다.”

`두바퀴로`호의 새로운 선장 포항예술문화연구소장인 사진작가 안성용씨가 지휘봉을 잡았다.

죽도시장은 평소 출발지점인 중앙아트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다.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포항의 도심, 인체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포항경제의 심장 죽도시장

죽도시장은 포스코가 있기 전 포항경제의 근간이 된 곳이다. 포항시 북구 죽도동 한복판에 장이 섰다. 부지면적 14만8천760㎡, 점포수는 약 1천200개에 달한다. 매일 5만명 가량의 사람들이 찾는 영남권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이다.

1950년대에는 갈대로 무성한 늪지대였다. 포항 내항이 연결되어 있는 곳에 노점상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자연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과거부터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 및 강원도 일대의 농수산물 집결지인 동시에 유통의 요충지였다. 1969년 10월 죽도시장번영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1971년 11월 포항죽도시장의 개설허가가 이루어졌다.

죽도시장의 배치

동쪽 포항내항을 바라보며 가장 가까운 곳에 수협 위판장이 형성되었다. 그 가까이에 200여개의 횟집이 밀집되어 있는 회센터, 어시장, 건어물거리가 위치한다. 또 의류거리, 식품거리, 이불거리, 한복골목, 그릇집, 가구거리 등이 구역별로 조성되어 있어서 편리하게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

최근의 일이지만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으로 700여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12개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수산물시장이다. 새벽5시가 되면 벌써 수협 위판장은 시끌벅적하다. 연근해에서 방금 잡은 생선으로 가득 채워진 만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새벽에 시작된 경매는 일반적으로 오전 8시면 거의 끝나게 된다.

 

살아있는 수협 위판장

갑자기 위판장이 시끌벅적해 졌다. 문어가 경매물건으로 나오자 수산물 중매인들의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엄청난 크기의 살아있는 문어가 33번 중매인의 15만원에 낙찰 되었다. 또 다시 방어와 미주구리가 나왔다. 손놀림이 빠른 45번 중매인에 의해 방어는 한 마리 5만원에 낙찰되었고 미주구리는 상자당 12만원에 팔렸다.

죽도시장 위판장 지정중매인은 47명이며 중매대리인까지 포함하면 약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수 백t의 고깃배를 통해 포항 내항으로 들어오는 연간 600억원에 달하는 물량들은 바로 이들에 의해 전량 소화된다.

이때 기자단의 눈에 고래만한 크기의 물고기가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의 초대형 병어나 복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괴물 물고기인가. 해맞이 포럼 노경훈 부대표가 “이 고기 이름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해체작업을 지휘하던 태영수산 박정자 대표가 “개복치!”라고 소리친다.

몸통에 비해 주둥이가 너무 작아 기이하게 생긴 물고기였다. 해체한 물고기의 뱃속 살은 하얀 연두부같이 허물허물하게 생겼다. 그러나 이것이 포항지역 상가 집에 제공되는 필수음식이다. 하얀 묵같이 생긴 개복치 고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일미란다.

군침이 도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먹자골목`이 떠올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죽도시장에선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떡과 분식은 물론이거니와 단돈 2천원이면 맛볼 수 있는 따끈따끈한 수제비는 역시 일품이다. 옛날식으로 푸짐하게 차린 1인분에 4천500원 하는 영양식당의 고등어 정식도 유명하다.

죽도시장 상인협동조합 이창혁 대표가 “맛있는 죽을 먹으러 갑시다” 제안하더니 할매죽집을 향해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 죽도시장 배치도

먹자골목 할매죽집

골목을 따라 두 번 정도 방향을 꺾으니 할매죽집이 나타났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며느리인지 딸인지 세 여인이 나란히 죽을 끓이면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죽의 종류도 호박죽, 녹두죽, 팥죽이 전부였다. 죽 값도 너무 저렴하다. 한 그릇에 단돈 3천원이다. 시골할머니의 인심처럼 그것도 대접에 넘치도록 담아 준다. 죽이 얼마나 맛있는지 순식간에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죽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인심 좋은 할머니의 미소 띤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 이 맛있는 죽을 3천원에 팔아 이문이 어디 남겠습니까?” 그런데 할머니는 웃기만 하시고 대답은 없다. “…. ”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장사를 하셨나요?”

묵묵히 대답 없는 할머니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다가 한 참후에 이야기 보자기를 풀어 놓으셨다.

할머니는 27세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막내딸을 낳은 지 90일 만이었다. 강원도 태백 소재의 대한중석에 다니던 남편이 산업재해로 1969년 사망했기 때문이다. 보상금도 받지 못하고 살길이 막막해 4남매를 데리고 친척이 있는 포항으로 이사를 왔다. 그것이 1970년도였다.

남의 집 창고살이도 했고, 4평짜리 달셋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죽도시장 난전에서 메밀묵을 팔았다. 그러다가 노점 1평반 공간에서 수제비와 죽을 쑤어 팔기 시작한 이후로 벌써 43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한 그릇에 5원, 50원, 500원 받던 것이 이제 3천원까지 올려 받게 되었다며 미안해하는 할머니의 표정이 마치 보살이다.

막내딸에 의하면 죽을 쑬 때 연탄가스 중독으로 할머니는 수 십 차례 실신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폐가 나빠 기침을 많이 하신단다. 큰아들은 삼성그룹의 부장출신이고, 둘째아들도 경북대학에 보냈다. 그리고 딸 둘은 오빠들 때문에 대학을 보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함께 포즈를 취해 달라는 부탁에, 굽어진 허리를 잡고 일어서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 졌다.

지역문화와 삶의 터전 거듭나야

죽도시장은 이렇듯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리고 포항의 근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60년이나 된 장기곰탕집도 있고, 87세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목점 형제주단도 있다.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가게를 다시 개축한 3대째 내려오는 건어물 도매상 동일상회도 있다.

최일만 죽도시장 번영회장이 말을 이었다. “포스코가 세워지기 전 당시 포항경제는 죽도시장에 달려 있었습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죽도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죽도시장은 포항경제를 움직이는 근원지였다.

시장은 경제적 기능 외에도 사회·문화적 기능, 특히 지역주민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양식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제 두바퀴로 기자단의 눈에 죽도시장은 다르게 비춰진다. 죽도시장의 경제적 기능과 사회·문화적 기능이 보인다. 포항경제를 위해서라도 죽도시장의 경기는 활성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창조도시의 구현을 위해서라도 시장의 사회·문화적 기능을 제고해야 한다.

모성은 교수가 한마디 곁들인다.“포항의 재래시장은 수원의 못골시장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은 아케이트나 주차장을 설치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다. 경영방식이나 서비스 기법을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문화를 창달하는 터전으로 상인들의 삶의 터전으로 죽도시장이 거듭나야 한다.

 

▲ 죽도시장 배치도

◇ 대표집필:모성은 교수

◇ 문화가이드:최일만(죽도시장 번영회장), 백남도(죽도시장 농산물협동조합 회장), 이창혁(죽도시장 상인협동조합대표) 김외준(죽도수산시장상인회 사무국장)

◇자전거 협찬:서일주(포항녹색희망자전거사업단 단장)

◇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 취재동행:박계현, 권기봉, 이영숙, 노경훈

◇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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