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⑼ 칠포리 암각화… 바위에 새겨진 선사인류

▲ 모성은 교수와 문화와시민 박계현 이사장을 비롯한 두바퀴路 취재단이 최근 칠포리 암각화를 찾아 포항 역사의 시원(始源)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8월의 뜨거운 열기다. 지역문화 탐방을 위한 두바퀴路 취재단은 칠포리 암각화를 찾아 출발의 깃대를 높이 올렸다. 이번 탐방지는 선사인(先史人)의 숨결이 녹아있는 곳이다. 포항 역사의 시원(始原)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칠포리 바닷가 사이 길로 접어들었다. 주변 전경과 어우러진 숲 속에 마치 한 마리 거북이가 납작 엎드린 것 같은 바위위에 돌칼모양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천여 년 전 선인들이 분주히 바위를 쪼는 모습과 시끌벅적한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포항지역 암각화·고인돌 등 유적 다양한 분포
창조적 문화창출 위한 새 원천으로 활용 필요



포항의 시원(始原), 칠포리 암각화

문화길라잡이 박재환 회장이 해설을 맡았다. “칠포리 암각화는 포항 흥해읍 칠포리 곤륜산을 중심으로 청하면 신흥리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넓게 분포합니다. 곤륜산에서 발견된 검파형 암각화는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조사된 유형중 최대 규모입니다.”

칠포리 구릉지 상두들 농로를 따라 여러 기의 고인돌이 보인다. 그 중 5기에는 암각화나 바위구멍, 선각이 새겨져 있었다. 북두칠성형과 윷판형 암각화 그리고 제단형식의 구조를 지닌 바위도 있었다. 바위에는 많은 구멍이 있고, 그 구멍들은 서로 선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다.

청하면 신흥리 마을 뒷산에는 이름도 재미난 오줌바위 암각화가 있다. 옆으로 길게 누운 바위에는 선각으로 연결된 별자리형 바위구멍이 나 있다. 전경희 해설사의 설명이다. “이 바위구멍은 W자 형태인데 한 가운데에 있는 원 속의 바위구멍은 북쪽 하늘의 카시오페아자리이고, 원으로 둘러싸인 바위구멍은 북극성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4점의 윷판형 암각화도 있습니다.”

풍요와 다산 기원 의미 담겨

암각화 전문가인 이하우 박사가 설명한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암각화라 합니다. 바위에 형상을 쪼아서 새긴 다음 그 각선에 따라 단단한 도구로 가볍게 갈아서 제작합니다. 암각화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암각화는 명칭도 다양하다. 인면(사람얼굴)형 암각화, 방패형 암각화, 검파형 암각화, 패형 암각화, 신체문 암각화 등이 있다. 그 중에 포항 기계 인비리와 칠포리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석검(돌칼) 형상을 하고 있어서 석검형 암각화라 한다. 이러한 칠포리형 암각화는 석검의 손잡이 모양, 즉 검파형 기하무늬를 하고 있다하여 검파형 암각화라 한다.

신화중 문화해설사가 덧붙인다. “석검의 손잡이에서 여성 신체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검파형 기하무늬는 지모신상으로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합니다. 여성의 생식력과 땅의 번식력이 재생성이라는 동질성을 지니고 있어서 기원의 의미가 담긴 주술성을 띱니다. 특히 검파형 암각화와 윷판형 암각화는 우리 한반도에서만 발견됩니다.”

문화와 시민 김효원 이사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질문한다. “왜 검파형이라고 지칭되며 포항 영일만에 많이 나타납니까?

문화와 시민 박계현 이사장이 간밤에 암각화 공부를 예습했다면서 자신 있게 대답한다. “석검 유물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 진 것입니다. 포항 지역은 동남쪽 구석에 치우쳐 문화적 발전이 늦어 청동기 제련기술이 없었습니다. 한반도 선조들은 비파형 동검을 모방하여 석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돌에 구멍을 뚫기 어려운데 석검의 손잡이에 구멍을 내고 검에는 골까지 팠지요. 이런 문화가 형산강 수계에서 발견되었고 영남지역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이상령 문화길라잡이 전회장이 부가 설명한다. “원래 검(劍)은 찌르는 도구인데, 당시의 석검은 거의 의장용, 의식용 이었습니다. 손잡이는 모두 구멍이 있어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상징적 도구였습니다. 검(劍)은 유라시아에서 천둥 번개를 의미하는데 비오기전에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은 농경생활에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비파형 동검 손잡이에는 남녀 나신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암각화는 선사인들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두바퀴路 취재단이 칠포리 암각화 취재를 마친 뒤 기념촬영 했다.

포항미술사 시작으로 봐야

세계의 미술사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로부터 시작하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다. 따라서 포항 주변의 산재된 암각화를 포항 미술사의 시작으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미술사학자 이나나 박사가 한마디 한다. “암각(岩刻)은 새기는 것이며, 화(畵)는 그림입니다. 암각화는 최초의 그림 이라는 미술사적 의의를 갖습니다. 포항 미술의 시원도 이미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촬영에만 열중하던 황종희 작가가 질문을 했다. “우리 포항도 이런 역사적 자원이 있었나요? 사실 저는 우리 지역엔 고대사 관련 자원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알지 못했던 포항의 역사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 포항도 암각화와 고인돌의 분포가 높습니다. 포항시 중심으로 암각화 역사박물관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포항 시민의 큰 자긍심이 될 것입니다.” 장재향 학원장이 센스 있게 한마디 한다.

옳은 말이다. 울산의 경우 울산암각화박물관을 건립하여 반구대 암각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영일만 일대 칠포리 주변의 암각화나 고인돌만 해도 박물관 건립은 충분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마음사랑후원회 권기봉 회장도 흥분한다. “맞습니다. 우리 포항에도 암각화, 고인돌 등 선사 유적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 분야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자료 수집과 발굴이 뒤따른다면 새로운 문화 창조의 콘텐츠로 활용가치가 높을 것입니다.”


선사인류의 숨결로 창조도시를

암각화 주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암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그들이 남겨준 그 시대의 이야기가 느껴진다. 선인들이 남긴 것을 잘 보존하고 새롭게 가꾸어 이 시대의 문화로 재창출해야 할 것이다. 즉, 암각화의 역사성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오늘날 새로운 문화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천 년 전의 유적이 오늘날 창조경제의 모티브로 활용된다. 특히 미술분야에서 암각화의 단순한 조형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기도 한다. 칠포리를 중심으로 영일만에 산재한 암각화는 이 천 여년의 시공간을 훌쩍 넘어 디지털 문명에 새로운 지평과 콘텐츠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두바퀴路가 꿈꾸는 도시의 환경은 사람과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다. 바위에 새겨진 선사인류의 숨결이 오늘날 포항 문화의 새로운 원천으로 되살아나길 기대해 본다.

△집필책임:모성은 교수
△문화특강:이하우(암각화 전문가) 박재환, 전경희, 왕승호, 신화중(KYC 문화길라잡이)
△사진촬영:안성용, 황종희
△집필지도:이나나, 신일권
△동행취재단:박계현, 김영숙, 장재향, 김효원(문화와시민) 권기봉, 박중환, 박창교, 정경식, 이길호, 김영미(한마음사랑후원회)
△어린이취재단:박찬희, 신중규
△제작책임:사단법인 문화와 시민

▲ 두바퀴路 취재단이 칠포리 암각화 취재를 마친 뒤 기념촬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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