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기자단의 두바퀴路
⑷ 신라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오어사(吾魚寺)

▲ 신라 정신문화의 뿌리를 간직한 오어사를 찾은 자전거 기자단.

“초파일을 앞두고 오늘은 포항 운제산 오어사를 탐방합니다.”

두바퀴路 네 번째 문화탐방은 청림초등학교 집결에서 시작되었다. 이번에 특강을 맡은 포항청년연합(KYC) 문화길라잡이 회원들과 한마음사랑후원회의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5월의 햇살아래 `아프로디테(포항여류화가모임)` 5인방의 아름다운 미소는 봄날의 싱그러움을 더해 주었다.

“아~! 이번에는 비교적 고도가 높은 곳을 탐방하는 관계로 승합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문화와 시민 박계현 이사장의 구수한 말솜씨로 취재단은 전용차량에 탑승을 하였다.

신라 `四聖` 원효·혜공·의상·자장 머문 곳
비경의 천년고찰 곳곳엔 고승들 설화 얽혀


신라 사성 머물렀던 그 길 위에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579-632)때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입니다. 신라 정신을 이끈 원효·혜공·의상·자장 등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천년 고찰이기도 합니다.”

문화길라잡이 박재환 회장의 설명이었다. 주변의 비경도 뛰어나지만, 이들 고승들에게 얽힌 설화들도 흥미진지하다. 원래 운제산 북쪽에는 자장암, 그 아래 혜공암, 서쪽에 의상암, 남쪽에 원효암이 있었단다. 그러나 지금은 원효암과 자장암만이 1천여 년 세월을 꿰어내고 있다.

사성들이 오르내렸다는 운제산 구름다리, 오어지(吾魚池) 입구에 들어서니 연초록빛 수목들이 싱그러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잠깐! 차를 멈추고 모두 내리세요. 여기서 모두 배를 타고 오어사 일주문 앞에 도착할 것입니다”

이상령 KYC 문화길라잡이 전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깜작 놀라 모두 차에서 내렸다.

현재의 오어지(池)는 운제산 계곡을 막아 만들어졌고, 지금의 저수지 자리에는 오어사가 있었다고 한다. 오어사가 옮겨진 뒤 초기에는 길이 없어서 배를 타고 오어사를 왕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포항, 신라 정신문화의 뿌리

어디선가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운제산 계곡을 뒤덮고 있다. 두 선승의 모습이 계곡의 상류에 있는 반석 위에 보인다. 이들은 그동안 수도한 법력을 겨루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노는 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먹고 그것을 다시 살려내는 내기였다. 이들은 즉시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는 각기 변을 보았다. 그런데 물고기는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물고기는 물살을 가르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금방 바윗돌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두 선승은 서로 `저것이 내 물고기`라며 목청을 높인다.

이들이 바로 원효와 혜공이었다. 삼태기를 메고 저작거리에서 뛰며 놀며 민중과 고락을 함께 했던 호기넘치는 시절이었다. `내 고기` 사건의 시대적 배경은 원효가 당나라 유학길 해골 바가지 물을 마시기 전의 일이다. 즉, 원효가 유학을 포기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불교를 펼치기 시작한 이전의 일이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래 이름이 항사사(恒沙寺)였다. 그러나 원효와 혜공의 `물고기` 법력 경쟁이후 `내 오(吾)`, `고기 어(魚)`를 써서 `오어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해강 김규진의 친필 일주문 현판 `吾魚寺` 글귀는 서로 시비하는 승려들을 비웃듯이 힘차게 꼬리치며 도망가는 물고기 형세를 하고 있다.

“방금 구름다리 밑에서 보았던 물고기 중 한 마리가 바로 그 물고기는 아니었을까?”

오어사는 그 자체가 신라정신의 근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대업은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하였다. 그 시기 전후로 의상과 자장은 왕실귀족불교를, 원효와 혜공은 민중불교를 융성시켰고 이들 사성 모두가 이곳 오어사에서 불도를 닦았기 때문이다.

“이 네 분의 고승들이 모두 운제산에서 법력 공부에 힘썼던 만큼, 포항은 신라 정신문화의 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아프로디테 장미화 선생은 특유의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한마디 던진다.

한마음사랑후원회 권기봉 회장은 “우리 고장에도 이렇게 유서 깊은 곳이 많은데 그동안 밖으로만 눈을 돌렸습니다”라고 말했다.

박계현 이사장도 덧붙였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포항의 역사를 살려내고 계신 KYC 문화길라잡이 회원님들의 노력에 새삼 머리가 숙여집니다. 저 역시 포항 문화 찾기에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두바퀴路의 열정은 점점 담금질되고 있었다.

취재단의 발길은 대웅전에 멈춰 섰다. 조선 영조 17년(1741)에 중건된 오어사 대웅전은 문화재 자료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취재단이 눈여겨 본 것은 대웅전을 둘러싸고 있는 문살모양이었다. 문살무늬는 맨 아래 꽃봉오리가 맺힌 모습에서부터 점점 올라 갈수록 봉우리가 벌어져, 맨 위에는 활짝 핀 꽃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꽃봉오리는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장인의 세심한 불심이 돋보여 더욱 가치가 높습니다”라고 박 회장은 설명했다.

 

깨달음의 과정 그린 `심우도`

경내를 거니는 관람객들을 비집고 두바퀴路 일행은 대웅전 뒤쪽 외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로 눈길을 돌렸다.

벽화는 한 동자가 소 발자국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그 발자국을 따라 숲속에 숨겨진 누런 소의 엉덩이를 발견한다. 소의 고삐를 잡자 누런 소가 천방지축 날뛴다. 장면이 바뀌면서 소의 색깔이 점점 하얗게 변해간다. 이윽고 완전히 하얗게 변한 소의 등위에 동자가 올라타고 피리를 부는 것으로 벽화는 마무리된다. 즉, 이것도 깨달음의 과정이다.

`심우도`는 득도의 과정을 설명한 그림이다. 소는 곧 도(道)를 상징한다. 주로 불가에서 득도하는 과정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방편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심우도`는 소의 색깔 변화에서 그 의미가 파악된다. 소의 색깔이 도의 경과에 따라 누런 색에서 흰 색으로 변하는 수도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대웅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를 보고나니 눈앞에는 육중한 범종과 그 종각이 나타났다. 종각 아래에는 범종 외에도 지옥중생을 위하여 갖추어야하는 법고·목어·운판 등 사물(四物)이 있었다. 범종소리에 지옥중생들의 고통이 줄어들고, 법고소리에 축생이 제도되고, 목어는 수중생물을 제도하기 위하여, 운판은 날짐승을 제도하기 위하여 친다고 한다.

▲ 신라 정신문화의 뿌리를 간직한 오어사를 찾은 자전거 기자단. 오른쪽은 보물 1280호로 지정된 오어사 동종. 기자단이 오어사 주지 장주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 보물 1280호로 지정된 오어사 동종. 기자단이 오어사 주지 장주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오어사 최고 보물 `동종`

무엇보다 오어사 최고의 보물은 동종(銅鐘)이란다. 1216년 고려 말에 만들어진 동종은 1995년 11월 저수지 준설작업 중 78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동종은 보물 1280호로 지정되었고 종각 옆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 범종은 동종을 모방하여 만든 것입니다.”

오어사 주지 장주스님이 말씀하신다. “범종을 자세히 보면 만공월면선사의 시 `팔공산성전(八公山聖殿)`이 새겨져 있어요” 그리고는 조용히 싯구를 읊었다.

後夜雨中事(후야우중사) 깊은 밤 빗속의 일.

千聖未徹在(천성미철재) 모든 성인들조차 깨닫지 못했네.

不識也不識(불식야불식) 모르겠노라 모르겠노라.

鐘聲道得去(종성도득거) 종소리가 울려 퍼지네.

“모르겠노라(不識)!”

깨달음을 얻은 역설적 표현이다. 운제산 그림자 거꾸로 드리운 오어지에 어느 듯 어스름한 어둠이 내리고, 여운이 아직 남은 두바퀴路 취재단의 등 뒤로 오어사의 범종 소리가 들린다.

“둥(모르겠노라)!” ~ “둥(모르겠노라)!” ~.

저무는 태양에 하루를 갈무리하는 탐방단의 얼굴위에 저마다 염화미소(拈華微笑)가 번지고 있었다.

△대표집필 : 모성은 교수
△문화특강 : 이상령, 박재환 (KYC 문화길라잡이)
△한시감수 : 신일권
△집필지도 : 이나나
△사진촬영 : 안성용, 황종희
△동행취재단 : 박계현, 이선덕, 장미화, 백광자, 하은희, 사공숙, 서명호, 김재옥, 장재향, 오기준, 노경훈, 권기봉, 정경식, 오정숙, 서미경, 이길호, 김영미, 권태성, 최귀숙, 신정호, 채철원
△제작책임 : 사단법인 문화와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