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산골마을 청송의 한 초등학교에서 주차장을 만들어놓고는 학교 통학버스로 주차장 입구를 꽉 막아버렸다. 학교 통학차량과 교직원만 이용토록 하기 위해서란다. 특히 야간에는 통학버스 4대만이 덩그러니 주차장을 지키고 있는데도 주민들의 주차장 이용을 막아 교육기관답지 않은 용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난도 사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 롯데호텔에서는 입구에 주차한 60대 제빵사 회장이 간 크게도 차를 빼달라는 호텔 지배인의 뺨을 지갑으로 때렸다나 어쨌다나.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그는 사과하고는 빵 공장 문을 닫아 버렸다. 졸지에 종업원들만 실직자가 돼 버렸다.

차만 세워두면 주차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골이나 도시 할 것 없이 주차 문제는 이제 모든 장소 입지 조건의 첫 번째가 됐다. 사무실 근처 도심의 이면도로는 주차된 차량들로 아슬아슬하게 통행해야 한다. 인근 주차장은 텅 비어 둔 채. 어쩌다 교통량에 비해 넓은 도로가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주차장이 돼 있다. 밤이면 대형 트럭에서부터 버스, 승용차 등으로 도로가 졸지에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다. 자기 집 앞에 쓰레기통이나 벽돌 등으로 다른 차를 세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건 더이상 별나지 않다.

포항 산불 이후 백화점 인근 대로변에 커다랗게 현수막이 내걸렸다. 백화점 고객들의 불법 주정차로 소방차 진입이 막혀 진화가 늦어졌으니 백화점이 피해를 보상하라는 주민들의 주장이다. 마침 이 골목에는 초등학교도 있는데 학생들의 등하교때면 차량과 학생들이 뒤엉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어르신 교통봉사대들이 학생들의 등하교 지도를 하고 있지만 차량들이 어디 눈이나 깜짝하나.

깊은 밤, 요란한 자동차 경보음이 신경을 거스른다. 누군가가 주차하다가 도난 경보장치를 해 둔 남의 차를 접촉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수백명이 함께 생활하는 아파트에서 차량에 경보장치까지 달아놓고 차는 통행에 지장을 주건 말건 통행로에 버젓이 주차해놓는 강심장을 보면 어느 나라 운전면허인지 궁금해진다.

소위 선진국은 주차 문제부터 다르다. 이웃 일본만 해도 그렇다.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 지역을 가 봐도 차량은 어김없이 주차장에 주차돼 있다. 기차를 타고 농촌 지역을 지나면서 드넓은 벌판에 드문드문 농가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그곳에는 반드시 차고가 있고 차들은 어김없이 차고에 주차돼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심은 물론 차를 함부로 세울 수 없다. 주차장이 없으면 차를 갖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승용차에서부터 버스나 대형 화물차까지도 어김없이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도심 공연장이나 쇼핑센터, 음식점 같은 곳에는 반드시 주차장이 있었고 모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유럽이나 홍콩만 하더라도 불법 주차는 꿈도 못 꾼다. 잠시라도 불법 정차할라치면 엄청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주차장에서만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차량이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정차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하도록 제도화 돼 있다. 호텔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차 빼라 한다고 뺨을 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왜 유료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도로는 차가 다니기에 불편하도록 불법 주차가 판을 치나?

우리도 모든 차량은 차고지를 의무화하면 어떨까. 지금 영업용 버스나 택시 트럭들도 차고지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도로를 주차장 쯤으로 쓰고 있는 회사들이 많다. 도로 불법 주차에 범칙금을 왕창 매기면 어떨까. 예전에 차고가 없으면 차를 살 수 없도록 차고지증명제를 시행하려다 그만 둔 것으로 기억한다.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한다면 자동차 메이커에서 반대를 할까? 집 없는 사람들이 반대를 할까?

이젠 지방자치단체도 나서서 무료 주차장 확보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차고 없는 불편 또한 집 없는 설움 못지않다. 더 많은 주차장을 확보하고 차는 주차장에 세우는 것을 생활화할 일이다. 이런 것도 법으로 규제하고 캠페인을 벌여야 하는 선진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