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대학에 조직폭력배가 침투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폭력배들이 김천과 구미지역의 대학 총학생회를 접수하고 교비를 횡령하는 것은 물론 영세업소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양아치같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폭력배라고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폭력이 대물림되도록 대학 당국은 몰랐다는 것인가? 이런 범죄행위가 주변의 적극적 협조는 아니더라도 방조 또는 묵인한 탓은 아닌지 꼼꼼히 들여다볼 일이다.

영화 신세계에서 경찰 이자성은 기업이 되어버린 범죄조직 골드문에 위장 잠입한다. 목숨을 건 그의 조직 침투는 사실 경찰에서 범죄조직을 와해하기 위해 만든 작전이었고 그는 용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조직에서 보스의 죽음으로 벌어진 피의 후계자 다툼에서 내부의 적들을 물리치고 보스의 자리를 차지한다. 영화에서는 범죄 조직에 침투한 경찰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영화도 아닌 실제 상황에서 이자성처럼 위험한 조직에 위장 잠입한 기자가 세계적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대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해 북한 잠입 취재에 성공한 영국 BBC 방송의 존 스위니 기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런던 정경대 강사인 부인의 협조로 이 대학 역사학 전공의 박사과정 학생인 것처럼 위장하고 학생 단체관광단에 포함돼 북한에 잠입한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와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 위험하고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기자가 있었다. 스위니도 “차우세스쿠의 루마니아, 후세인의 이라크, 카다피의 리비아 등도 가 봤지만 북한은 가장 무서운 독재국가였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러나 그의 잠행은 무모했다. 종군기자는 전쟁의 참혹함과 전선의 현황을 후방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러나 스위니는 북한의 현실을 알아보기 위해 잠행했다. 그런데 그의 잠행은 런던정경대 학생들의 단체중 한 사람으로 참가한 것이었고 그의 신분이 발각됐더라면 학생들의 신변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대학 측은 그의 잠행 자체가 학생들을 속인 신분 위장이었으며 자칫 학생들을 위기에 빠뜨릴 뻔했다며 그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잠행이 언론의 취재 윤리에 어긋나는지는 나라마다 언론사마다 규정이 있으니 따지고 싶지 않다. 기자라는 직업이 남의 나쁜 점, 곤란한 점만 파헤쳐 공개하는 질 나쁜 족속들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기자라고 하면 흔히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전황을 보도하는 종군기자나 장대비가 퍼붓는 악천후 속에서 지상의 모든 것들이 씻겨가는 현장을 리포트하는 TV기자를 상상하기 쉽다. 물론 그들도 기자다. 뉴스의 인물을 찾아 며칠씩 대기하며 답변을 얻어내려는 기자도 있고 재난 현장에서 숨넘어가는 피해자에게 사고 순간을 물어보는 악역을 담당하는 것도 기자다.

세계 최강의 힘을 가진 미국 대통령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 것도 기자들의 힘이었다. 비록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처럼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존 스위니처럼 자신의 안위는 젖혀두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려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있다. 한국에도 있고 우리 지역에도 있다. 다만 그런 세계적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 기자들의 폭로 영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관습`과 `관행`, 그리고 `비밀`들을 하나 둘 양지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신분을 속이고 다른 조직이나 국가에 침투하는 것은 본인에게 엄청난 위험을 동반한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기도 하다. 신분을 위장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국가는 이미 병든 국가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안에서도 그런 신분 위장이 횡행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