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결국 물러났다. 38일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관진 국방부장관을 유임시키는 선에서 물러섰다. 그러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무너뜨렸다. 정치철학을 달리하는 이명박 정부 각료와는 함께 일 할 수 없다며 이용걸 차관을 국무회의에 출석시켰던 박 대통령이었다. 이쯤되면 박 대통령도 스스로의 인사스타일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과 야당의 충고를 반영해야 한다.

벌써 6번째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두 아들의 병역비리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지명 닷새만에 사퇴한 데 이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그리고 성접대 파문으로 물러난 김학의 법무부차관 후보자,여기에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까지. 하나같이 임명 전 검증 단계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못한 때문이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물러난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격을 놓고 야당뿐 아니라 막판에는 여당에서도 부정적 견해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그런 위인을 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야당의 의지가 세를 얻어가면서 김 후보자를 장관으로 앉혀야 하겠다는 청와대의 부담도 커졌다. 무기 로비 등 30가지도 넘는 의혹으로 청문회 결과 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진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당시 부인한 주식 보유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더구나 그 주식은 복역중인 전 정권의 실세가 개입돼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KMDC 주식이었다.

그런데 38일이나 버틴 데 비하면 “본인으로 인하여 국정운영에 부담을 줘서 심적 부담이 컸다”는 사퇴 명분이 우습다. 또 “정치적 논쟁으로 시간을 지체하기에는 국가의 안위가 위급한 상황”이라는 대통령 인식도 국민의 정서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는 국정 아닌 개인적 명분으로 버텨왔다는 말인가. 아직도 김 후보자에 대한 자질 시비가 정치적 논쟁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여당에서도 그렇게 청와대 눈치만 보고 바른 소리 하는 국회의원이 없어 국정운영이 지리멸렬해졌다는 언론 지적에는 무어라고 변명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후보 당시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장담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어느 정권에도 없는 지연 출발을 하고 있다. 정부 조직법이 그렇고 장관 임명이 그렇다. 이래서는 수많은 공약들을 과연 임기 내 해결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의심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실천에 옮길 각료들이 최전방에 자리를 굳혀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측근들을 곁에 두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만큼 국민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을 차지하고 있으면 개혁은커녕 대통령의 자리마저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라고들 그런다.

지금 국민들은 피곤하다. 이제 더 이상 잘 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잘 하길 바랄 뿐이다. 정치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는 쌓일 대로 쌓였다. 서민들을 위한다는 대통령도, 경제 전문가라던 대통령도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고 국민들은 평가한다. 정말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펴겠다면 먼저 국민들에게 인사로 신뢰를 심어 줄 일이다.

이제 겨우 대통령 취임 한 달. 어제는 방송통신위원장에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 8명의 차관급을 임명했다. 앞으로도 대통령은 수많은 자리들을 결정해야 하고 여러가지 정책과 가치 판단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대통령의 중심이 분명히 서야 국민들의 혼돈이 가셔질 것이다. 존경과 믿음을 주는 측근들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국민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